미래한국 미주판이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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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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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찬 前 미래한국 뉴욕지사장 · 대뉴욕지구광복회 회장

작년 말 김 회장님의 서거 소식을 접한 우리 뉴욕 식구(미래한국 뉴욕지사)들, 김남수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큰 별이 떨어졌다고 슬퍼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주기가 돼간다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빠른 세월의 흐름이 야속할 뿐이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본인이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가을 훌러싱 한식식당에서입니다. 김남수 목사님의 주선으로 미래한국신문 뉴욕후원회를 조직하는 모임에서였습니다. 고인은 워싱턴에 가는 길에 뉴욕에 들렀습니다. 뉴욕후원회 조직은 고문 김남수 목사(푸로미스교회 담임목사), 회장 한진관 목사(퀸즈한인교회 담임목사), 부회장 정진홍 목사(고인과 서울법대 동기), 부회장 석창호 박사(의사. 서울고. 서울대 동창), 부회장 이용찬(뉴욕한미장학재단 이사) 등으로 조직됐지만 별로 뚜렷한 활동은 없었습니다.

회장 한진관 목사님은 은퇴 목사로 거의 활동이 없고 부회장 정진홍 목사님은 맨하탄 시내에서 목회를 하는데 너무 바빠 후원회활동이 소홀했으며 다른 부회장 석창호 박사도 위장내과 개업의로 후원회에 참여를 거의 못했습니다. 평신도 부회장인 나도 역부족임을 절실히 느꼈을 뿐입니다.

초면인 고인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조용하며 품위 있는 신사였습니다. 말씀은 차분하고 조용했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주제는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미래한국신문의 발행 목적과 사명을 설명하며 ‘애국심’ ‘평화통일’ ‘좌파척결’ 어휘를 언급할 때의 어조는 강하고 단호했습니다.

좌파 성향의 정권이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까지 10년째 되면서 간첩을 포함한 좌파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반미와 친북을 외치며 날뛰는데 좌시할 수 없기 때문에 또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미래한국신문이 사명의식을 갖고 매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인의 역설에 공감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2006년 초가을 김 회장님이 미래한미재단 설립을 위해 워싱턴에 가는 길에 뉴욕에 들렀는데 내 승용차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드렸습니다. 김 회장님을 수행한 젊은 분이 운전을 했는데 김범수 사장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 번째 만남은 2007년 말 대선 선거전이 여당인 열린우리당 정동영 후보와 야당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뜨겁게 달아오를 때인 대선 투표일 1주일을 남긴 12월 12일이었습니다. 고인은 대뉴욕지구 교회협의회가 주최한 구국기도회에 주강사로 참석하셨습니다. 장소는 뉴욕푸로미스교회(옛 순복음뉴욕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대회의 명칭을 시국강연회로 할 예정이었으나 개최하는 장소가 교회였기 때문에 구국기도회로 변경했습니다.

주강사인 김상철 회장님의 시국 강연을 듣는 중에 혹시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습니다. 종북좌파들의 활동을 설명하며 이념에서 좌우를 설명할 때, 즉 좌는 공산주의이고 우는 자유민주주의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좌우는 절대로 타협하거나 통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성경 구절을 예로 들며 성경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25:32~33 이었습니다.

단호한 어조, 명쾌한 논리

이처럼 양과 염소는 생김, 성격, 색깔이 확연히 구별되는데 이들이 한곳에 섞여 있다고 해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듯이 좌와 우의 통합은 절대로 이룰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박사께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과는 절대로 타협할 상대가 아니라면서 그들의 주장을 단호히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구국기도회가 끝난 후 다과시간에 김남수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목사님들이 이명박 후보의 국가관이 분명치 않아 염려된다고들 하니 고인도 그들의 염려에 동의하면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실제로 고인께서는 시애틀을 경유해 서울로 가서 바로 18명의 보수단체장을 모아놓고 이명박 후보를 초청해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관을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후보는 18명의 보수단체장 앞에서 확고한 보수임을 천명했고 18명 보수단체장들은 도하 모든 신문 전면에 이명박 후보 지지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부동표를 끌어 모아 이명박 후보 당선에 역할을 했기에 고 김상철 회장님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 감히 주장합니다.

네 번째 만남은 200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절 63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고국을 방문했을 때 파주시에 미래한국신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독립유공자 박학수 열사께서 독립유공자로 정부의 포상을 받은 경위에 관한 인터뷰를 가졌을 때였습니다.

다섯 번의 만남, 그리고 이별

故박학수 열사는 1943년 늦은 여름에 아베 총독 암살 음모라는 죄목으로 정식 재판이나 판결을 받지도 않은 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굶주림으로 아사 직전인 1945년 8월 13일 피골이 상접한 채 석방됐습니다. 광복의 기쁨이나 정부수립도 못 본 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어린 두 딸을 남겨놓고 45년 9월 13일 27년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 열사는 선산에 안장됐으나 두 번째 지주가 나타나 도시계획상 개발을 한다고 속히 이장을 하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2000년 5월 초 행안부 초청 이북5도민 모국방문단(당시 내가 대뉴욕지구이북5도민연합회 회장 역임)을 인솔해 서울에 가는 길에 화장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울에서 이곳 저곳 방문을 하는데 행안부 초청행사가 끝나는 날 전쟁기념관을 방문 관람하던 중 젊은 장병들 흉상 앞에서 묵념을 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집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기에 왜 잠을 못자느냐고 물었더니 “군복무는 국민의 의무인데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다 죽은 사람도 흉상을 세우고 추모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하다 일경에 잡혀 모진 고문을 받아 돌아가셨는데 누울 자리가 (조그마한 땅) 없어 화장을 해야만 할 처지가 너무 억울하고 마치 내 몸 반쪽이 잘려 나가는 것 같이 쓰리고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즉흥적으로 “독립운동 공적을 찾읍시다. 바로 파주에 전화 걸어 내일 화장계획 취소한다고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호텔을 나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방문해 박학수 열사에 대한 기사(일경에 체포시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생활 장례식 등)가 있을까 해서입니다. 두 신문은 공히 일제에 억압으로 40년에 폐간되고 45년 10월에 복간이 됐다고 해서 맥이 풀려 돌아섰습니다. 국가공문서 보관소, 서대문 형무소, 대법원 도서관, 대검 도서관, 국립도서관 등 1주일을 헤매다가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주 산소에 들러 故김재준 박사가 쓴 비문을 읽고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2000년 12월 하순 독립유공자 신청서를 보훈처에 제출한 후 자료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습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뉴욕과 서울을 8~9회 왕복으로 오고 갔습니다. 결국 2007년 11월 17일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아 화장하려 했던 박학수 열사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자리를 시내 음식점으로 옮기고 오찬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고인은 주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 박사의 건국이념, 6‧25 전쟁 때 UN의 참전, 휴전 전의 반공포로 석방, 한미방위조약체결 등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애국심과 훌륭한 리더십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만남은 2009년인가 여름에 김범수 사장의 안내로 집사람과 병원으로 문병한 것이 생존 시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상에 누워 한마디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리시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할 수 없는 처지를 답답해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편히 쉬지만은 않으시고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고 김상철 회장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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