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는 신문이 필요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신문이 필요합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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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화 한미안보연구회 이사 · 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쯤이었다. 김상철 회장이 좀 만나자고 해서 프레스센터에서 차를 같이 했다. 나라가 이대로 가면 망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면서 지식인들이 일어나야 하는데 문제는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할 수 없으니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여러 번 김 회장을 만나 신문 만드는 일을 논의했는데 번번이 의견 충돌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졌다. 신문은 조건이 있어야 하고 체제가 있어야 살아남는 것이며 그런 조건과 체제를 갖춘 매체를 만들어 전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었다. 김 회장은 그런 정통적 사고방식과 체계를 갖고 신문을 시작했다가는 어느 세월에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고 그러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좌파는 안 된다는 직설적인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언론이 역사를 모르고 국제관계를 등한시해 독선과 위선이 흐르고 있다면서 이를 잘 인식하는 신문을 만들면 신문도 살고 건전한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문화나 국제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당장 나라를 어지럽히는 좌파들의 허구성을 드러내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좌파는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안에서 온갖 혜택은 다 짜내 가면서 국가체제를 허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미 사회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무서워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기가 죽어 있다. 이런 어둠의 그림자가 허상이고 위선이라는 것을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것이 새로 만들 신문의 역할이다.”
 
기독인의 사명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눴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잃고 일제하의 캄캄한 어둠속을 헤맬 때 기독인들이 죽음을 무릅쓴 용기를 갖고 일제를 향해 “우리는 자유인이며 독립국가이다”라고 외쳐 민족에게 용기를 주지 않았느냐, 기독인들은 다시 그런 용기를 갖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독립신문이나 한성순보에도 정치기사가 있고 경제 사회 문화 기사가 있고 국제기사가 있어 구색은 갖춰 대중 앞에 나타난 것처럼 “좌파 물러가라” “대한민국은 위대하다”라는 말만 외치는 것은 정당의 선전지나 지하운동단체의 전단지에 불과한 것이니 기왕 신문을 만들 것이면 보석처럼 갈아서 빛이 나게 하자고 했다.
 
김 회장은 마침 서울의 부장급 이상 간부 언론인들로 구성된 기독언론인클럽(CJCK)의 사명을 여러 번 강조했다. 여기에 모인 간부급 언론인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며 클럽의 총무이던 나부터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정통 언론의 길을 벗어나면 혁명으로 가지 않는 한 언론인의 본래 사명을 벗어나는 길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김 회장의 주장에 백번 동의하면서 신문 만드는 일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해서 일을 도울 결심을 하고 수차례 역삼동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주장이 틀리고 접점이 멀어지곤 해서 그냥 나오곤 했다.
 
김 회장은 미래한국을 창간하고 맹렬한 반좌파운동의 불을 지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의 애국단체 데모에는 김 회장이 직접 나와 찢어질 듯한 높은 음성으로 대한민국은 위대하다고 외쳤고 그 현장에는 좌파 타도 내용을 굵은 제목으로 뽑은 기사가 가득 실린 미래한국이 나눠지고 있었다. 그의 외치는 목소리와 미래한국은 캄캄한 밤길을 걸으면서 공포에 질린 채 숨죽인 나그네들에게 용기를 줬다.
 
두려움 없는 외침의 소리
 
좌파는 별것 아니다, 좌파는 허구이며 허상이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단숨에 어둠을 풀어헤치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뒤에 들은 얘기이지만 어느 대학 교수는 강의시간에 공산주의자들의 허구성을 말했다가 밤중에 어떤 자가 전화를 걸어 “당신 죽고 싶어”라는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 전화를 받고 나면 평상심이 위축돼 괜히 어둠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시청 앞 광장에서 좌파는 허구이며 허상이라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때 그런 공포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미래한국의 1기 편집위원의 임기가 끝나고 2기 편집위원을 선임할 때 나는 편집위원으로 들어갔다. 박용옥 송대성 문용린 황의각 한춘기 등 기라성 같은 자유민주주의자들과 함께 미래한국을 편집하는 데 약간의 보탬이 될 수 있었다. 편집위원들은 편집회의에서 주요 쟁점을 토의한 후 누가 어떤 문제를 어떻게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집필을 담당하기로 한 위원이 대쪽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중간쯤에 ‘아는 것과 다른 맥아더의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해 줘서 1년 이상 연재했고 뒤에 책으로 출판해 그런대로 인정을 받았다.
 
미래한국에 참여한 기자들도 참으로 훌륭하고 용기 있는 청년들이었다. 도무지 겁이 없었고 자료를 찾고 관계 인사를 만나는데 고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용기와 노력은 대단했다. 기자들은 외출할 때 등산 백 같은 것을 메고 다녔는데 농담 삼아 “안에 방어무기가 들어 있느냐”고 물으면 씩 웃곤 했다. 좌파 위협의 어둠이 드리운 환경에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내막을 파헤치는 기사를 쓴다는 것은 결코 보통 각오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2004년 편집위원들은 이런 기자들을 보면서 위원들이 기금을 내고 김상철 회장이 매칭 펀드를 마련해 기자를 격려하는 ‘자유의 기자상’(MEDAL of Faith & Freedom Journalist)을 제정하고 1회 수상자로 김성욱 기자를 선정하는 등 그 해 가장 활동적인 기자를 선정해 시상했다. 나는 편집위원 중에서 선정된 수상자 심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이들에게 상패와 상금을 전달했는데 축사에서 신앙과 자유의 기자상은 퓰리처상에 맞먹는 상으로 널리 인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은 김 회장이 얼굴이 핼쑥해진 모습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기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산 기도에 간 얘기를 해줬다. 어려우면 늘 기도원에 들어가 철야기도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엄청난 도전을 받고 정말 사력을 다해 싸웠다고 했다. 꿈이었는지 아니면 기도 중 환상이었다고 말했는지는 기억되지 않지만 그는 총을 든 공산군에 의해 둘러싸였고 맨손으로 이들과 싸우고 또 싸우면서 용하게 살아났는데 그길로 공산당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얼마나 기도 중에 외쳤는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김 회장은 대한민국 땅에 검게 드리우고 있는 좌파 그림자를 통째로 상대하면서 이 그림자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매달렸을 것이다.
 
김상철 회장은 언젠가 이승만 대통령을 말하면서 이 대통령의 위대함은 기도하는 대통령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에 의하면 6‧25가 터져 사방에 인민군이 활개치고 있고 국민은 전쟁과 가난과 죽음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이승만은 새벽에 일어나 “오 주여, 이 나라를 살려 주시옵소서. 백성을 돌봐주시옵소서. 공산당을 쳐부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새벽에 일어나보면 이승만은 벌써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우리는 3‧1운동과 건국과정 그리고 6‧25전쟁 과정을 통해 이름 없이 빛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 기도가 하늘을 움직여 카이로선언이 선언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으며 그 독한 6‧25전쟁도 세계가 도와 이길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 10대강국이 돼 있는 것도 아마 그런 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회장은 어둠의 그림자를 누르고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당당히 외쳤고 대중 연설과 언론으로 그 파장을 널리 퍼지게 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자유 대한민국의 영원함과 함께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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