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前 KBS PD
김상철.
나는 그 분의 이름 석 자를 몰랐다. 92년부터 KBS에서 교양PD로 10여 년간 일하면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기간에 주로 해외 프로그램 제작을 하느라 국내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한국 언론이 중심적으로 다루는 영역에 있지 않았다.
그런 김상철 회장을 나는 2008년에 처음 만났다. 그가 이끌던 ‘미래연구원’에서 주최한 이승만 콜로키움에서였다. 작은 키, 큼직한 안경,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 김상철 회장은 전형적인 보수인사의 풍모를 풍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사회 보수인사들에 대해 별로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다. ‘꼴통’이라는 이미지. 그것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 인상의 김상철 회장이 어느 날 한국다문화센터의 공동발기인 대표를 맡으면서 이 기관의 법인수립 과정을 논하는 입장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판사 출신이었고 정치적 음모에 휘말렸던 ‘7일간의 서울시장’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구나 그가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성향의 인사라는 것과 故김근태 의원의 고문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던 인권 변호사였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는 어느 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하던 운동권으로부터 종북의 낌새를 알아챘고 이에 반대하면서 자타가 인정하는 보수인사가 됐다고 고백했다.
김상철 회장을 두 번째 만나 북한인권운동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그와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쓰러졌고 회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상철 회장이 남긴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온통 휘저어 놓았다.
“보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싸움을 하다보면 입술도 터지고 해서 흉하게 보이는 것이죠.”
보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니…. 그 분의 말로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보수’의 정체성에 관심이 생겼다. 진짜 보수는 ‘내가 아는 그런 보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상철 회장이 직접 쓴 ‘미래한국’ 창간사를 곰곰이 읽고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가치를 경시하거나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 교류를 억제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다.’
김상철 회장의 이러한 창간 이념은 보수인사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사랑으로 화합하자’
‘역사에는 주관자가 있다’
‘모든 것이 존귀하나 그 가운데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나는 김상철 회장의 이러한 생각이 다름 아닌 한국에는 그 대중적 철학의 뿌리가 없는 ‘보수주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한 김상철 회장의 보수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애국보수 그 이상의 철학적,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김상철 회장이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진보적 이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보수주의 전통이 견지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인도돼서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랑의 보수주의는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 이념과 종북의 민주화를 거부했고, 그를 탈북자들 인권과 북한인권운동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전쟁
김상철 회장은 한국의 좌파이념이 결국 북한체제로부터 기인함을 가장 먼저,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았던 장본인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자유주의적 철학의 배경은 인간 이성을 만능으로 여기는 프랑스혁명의 카르테시안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계몽주의 전통을 이은 성찰적 자유주의, 공동선에 입각한 자유주의였다.
한국에서 그 전통의 시작은 사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기에 김상철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제대로 알아 본 국내 보수인사로서는 드문 지성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아마도 이승만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21세기 당대의 인물이 바로 김상철 회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김상철 회장은 보수운동가 이전에 진정한 보수주의 철학의 이해자였으며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참 지성인이자 동시에 실천하는 행동주의자였다. 그러한 인물은 사실 오늘의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그 배경은 결국 사랑(Amor) 때문이 아닙니까.”
나는 김상철 회장께서 살아계신다면 그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으로부터 ‘그렇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김상철 회장은 그 진리와 소명의 말씀을 몸소 실천했던 분이었다. 그의 투쟁은 바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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