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있던 큰 일꾼
의리 있던 큰 일꾼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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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MCB 회장 · 前 펩시콜라 한국 사장
김상철 변호사와는 서울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는 키 크기가 달라서 자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내가 반장을 하고 그가 부반장을 하면서 친하게 됐다. 그때까지도 나는 서울대 상대를 지원할지 법대를 지원할지 결정을 못했는데 그는 벌써 법대로 가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억력과 요령 있는 기술의 접합이라고 생각해 시험 때면 당일치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그는 공부를 제대로 했다. 그래서 내가 삼각지 부근에 있었던 그의 집에 놀러 가고 그가 신촌에 있었던 우리 집에도 놀러오곤 했지만 공부를 같이 한 적은 없었다. 고3이 되면서 나는 상대로 가기로 결정했고 그는 법대로 가면서 서로 자기의 생활에 빠져 들어갔다.
 
그가 사회에 나와 판사가 되고 그 뒤 변호사가 되면서 우리가 만나면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해, 그리고 그의 활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당시 다국적기업의 북아시아 책임자로서 그가 활동하는 세계와는 많이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이 같은 삶의 차이는 서로에게 조언을 구하고 또 조언을 해주는 관계로 자연히 발전했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면 같이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는 판사 시절 독일에서 수학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 이상으로 빼어난 국제적인 감각과 이해가 있었다.
 
김 변호사가 정의당을 만들어 강남에서 출마했던 때의 이야기다. 선거가 끝나고 친한 친구 셋이 모여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같이 있던 친구가 김 변호사에게 “너는 이번 선거에 정말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그가 최선을 다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질문이 엉뚱하게 들렸다. 질문한 친구는 이어서 “너 그 집까지 팔았어? 안 팔았으니까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선거에는 돈이 많이 든다고 들었지만 김 변호사가 돈으로 선거를 치르려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정한 정당이름에 ‘정의’가 들어 있으니 집을 팔아서까지 선거자금을 써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집’이 나중에 김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되고 그 이후 더 큰 자리로 나아가는 길에 결정적 걸림돌이 됐으니 그 친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예언자적인 귀띔을 했던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앞으로 나를 많이 좀 도와줘!”
 
김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취임해 서울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축하식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지금도 당시 그의 행동거지와 얼굴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는 돌아가며 악수를 하다가 내 앞으로 오면서 “앞으로 나를 많이 좀 도와줘!” 라고 말했다.
 
당시 내 생각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후계문제에 관해서 일찌감치 선발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서울에 김상철, 경기에 이인제를 경쟁시키고 그들에게 행정 경험을 쌓게 해서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부상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나는 그가 서울시장 재임 중에 해야 할 일 우선순위를 전략적으로 잘 선정해서 길게 보고 활동해야 한다고 조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김상철 변호사가 시장직을 사임하면서 유능한 젊은이 둘이 모두 기회를 놓치게 된다. 아마도 그 구도로 나갔다면 두 사람이 경선을 거쳐 김 변호사가 대통령 후보로 나가게 됐을 것이고 그 뒤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이겼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훌륭한 대통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 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학교 은사이자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조순 총재의 비서실 운영을 맡게 된다. 당시 손학규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모시고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옆에서 도왔던 이광재 국장을 초빙해 좋은 비서실 체제를 갖췄는데 얼마 안가 이회창 후보의 낙선과 곧 이은 총재 복귀로 조순 총재는 명예총재로 밀려나고 탈당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후 조순 총재가 신당에서 전국구 출마를 계획하자 나도 그동안 지구당을 맡아 왔던 지역구에서 출마를 강행해 몇 표라도 모아드릴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쓰는 이유는 김상철 변호사가 이길 가망성이 조금도 없는 나의 지역구에 와서 가두연설을 해줬기 때문이다. 내가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을 할 때에는 많은 사람이 주위에 모였었지만 그 무렵엔 모두 떠나가 버리고 아무도 없었다. 3년간 매일 얼굴을 보며 밥을 같이 먹었던 지역구 분들이 마치 가을바람에 가랑잎 쓸려가듯이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선거 기간 내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김상철 변호사가 찾아와 줬다. 잘 나갈 때는 그럴 수 있어도 당선 확률이 전혀 없는 친구를 위해 여러 번 가두연설을 해준 의리 있는 친구였다. 홀로 외롭던 그때의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에 안타깝다.
그 후 나는 비즈니스로 다시 돌아와서 바쁘게 되고 김 변호사는 시청 광장에 수만 명을 모아 대중연설을 하는 대중지도자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이제 그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때가 왔는데 그는 홀연히 가버렸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지만 이 또한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섭리일지 모른다. 그가 떠난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모임을 왕성하게 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서 드넓은 밀밭을 이루는 기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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