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함께한 빛나던 시간들
독일에서 함께한 빛나던 시간들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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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부 책임연구원
최근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서울대 암병동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중 김 변호사님의 사모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다. 내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는 말과 함께 가능하다면 김 변호사님에 대한 추모의 글을 부탁한다고 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추모의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던 1980년 초 김 변호사님이 독일 킬(Kiel) 소재 법원으로 연수 오셨을 때 나는 그분과 처음으로 만났고 그 당시 나는 킬 대학에서 유학중이었다. 그 당시 유학생 및 교민 사회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에 대한 규탄 서명이 불꽃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김 변호사님은 현직 판사로서 개별적으로는 반대 서명을 할 수 없는 점에 양해를 구하며 한국에 귀국하면 판사직을 그만두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도 김 판사님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한 바대로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을 위하여 촌음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사와 변호사 개업 등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셨다.
 
김 변호사님과 사모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스칸디나비아 여행을 통해서였다. 800여 마르크를 주고 산 폭스바겐을 타고 킬에서 코펜하겐을 경유해 스톡홀름까지 약 열흘간의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됐다. 여행 내내 김 변호사님은 사모님의 충실한 기사이자 자상한 남편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일에서의 추억
 
사모님은 현지 재료로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만능 요리사였으며 또한 다양한 레퍼토리의 생음악으로 여행하는 내내 우리를 즐겁게 해줬다. 또한 김 변호사님과는 FKK(나체 해변)에도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수영복을 끝내 벗지 못한 김 변호사님으로 인해 우리는 나체에 무관심한 유럽인들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우리 유학생들은 김 변호사님 댁을 “사랑방”이라고 불렀다. 사모님은 우리 독신 유학생들이 방문할 때마다 따뜻한 마음으로 쌀밥과 김치, 생삼겹 수육 등으로 우리의 배와 영혼을 배부르게 해줬다. 독일 속담에 “사랑은 위장으로부터 나온다(Liebe kommt aus Magen)”라는 말이 있는데 사모님에게 어울리는 속담인 것 같았다.
 
김 변호사님과 사모님의 소탈하고 검소함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은 ‘고양이 오줌 냄새 나는 카펫’ 사건이다. 주말 벼룩시장에서 꽤 괜찮은 거실용 카펫을 고양이 오줌 냄새 때문에 10마르크로 저렴하게 구입했다며 아주 좋아하셨다. 그 카펫을 세탁해 거실에서 사용한 후 귀국할 때 소중히 챙기시는 것을 보고 카펫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유럽의 추억과 문화를 간직하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느낌은 1985년 귀국 후 농가를 유럽식으로 리모델링해 입주하신 김 변호사님의 우면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재확인할 수 있었다.
 
김영삼 정권 출범 후 김 변호사님은 서울시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우면동 자택의 불법증축 및 호화주택 시비에 휩쓸려 3일 만에 서울시장직을 물러나게 됐다. 그 당시에는 호화주택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거대한 편견의 물결 속에서 역부족이며 오히려 매도당할 뿐이라는 두려움 속에 그 어떤 말도 용기 내 발설하지 못했다.
 
이제 김 변호사님이 소천하신 지 1년이 흘렀다. 하늘나라에서 김 변호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욕심, 애착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한 마음으로 독일 유학 시절과 스칸디나비아 여행 때처럼 즐겁게 교제의 시간을 갖고 싶다.
김 변호사님, 보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세요!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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