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판 사드 논쟁의 교훈
독일판 사드 논쟁의 교훈
  •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5.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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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위기는 높아지는데도 한국은 먼 산 불보듯  1983년, 서독은 소련에 맞서 美 미사일 배치로 통일까지 얻어

트럼프 집권과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 강행. 일종의 군기잡기로 트럼프 정부의 첫 외교무대가 난항이다. 북한은 올해 이미 미사일 5기를 발사했다. 동맹인 한국은 5월 9일 대선을 통해 문재인 후보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해외 언론이 트럼프의 실패를 쏟아낸다. 독일의 디벨트는 3월 10일, 헌재의 탄핵 선고가 있던 날,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탄핵으로 좌파 정권의 집권이 유력하며, 좌파 대통령은 중국과 힘을 합쳐 트럼프에게 저항할 것이다. 사드는 철회될 것이고 트럼프는 김정은을 초청해 골프 파티를 열어줄 것”이라는 비아냥이다. 김정은의 ‘핵 벼랑끝 외교’의 성공을 점치기도 한다. 즉 새 정부의 첫 아시아 외교는 트럼프 패배-김정은 승리라는 뉘앙스다.(미래한국 545호) 뉴욕타임스나 윌리엄 페리 등도 맥을 같이 한다.

테오 좀머는 독일의 대표 언론인이다. 그는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대화 모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핵은 김정은의 생명보험’인데 핵 전쟁까지 거론하며 이판사판 달려드는 김정은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북 대치 상황을 치킨 게임으로 비유하며 ‘누가 담력이 큰가’가 핵심이라는 방송도 있다.(N24, 2017.4.14.)

4월 19일 호주 TV는 펜스 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전하며 한국을 중국, 북한과 함께 적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내보냈다.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 있다는 언질도 있었다.

이런 안보 위기 상황에 정작 대한민국은 뒷전이다. 탄핵 정국 하에서 중국-한국이 한 편을 먹고 미국을 상대한다는 정도다. 트럼프의 담력이 커도 역부족이다.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 핵심이다. 동맹국이 전쟁하면 함께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평화 모드다. 북한의 연이은 핵과 미사일 도발에도 무감각하다. 오히려 자중지란이다. 좌우가 진영으로 나뉘어 싸움질이다. 언론이나 대선 후보나 대동소이하다. 한반도가 아니라, 태평양 어느 섬나라 전쟁 이야기 같다. 트럼프의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독자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발언을 듣자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좌파세력의 평화 코스프레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어떤 존재인가? 광우병 파동이나 미선.효순이 사건은 우리의 반미정서를 대변한다. “북한은 핵개발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북한 편을 드는 정치인도 많다. “어떤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전쟁관이 대세다. 사드 문제로 중국의 편에 서는 자들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별로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배치를 거부하거나 철회해야 한다고 명백하게 발언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주장을 한 적도 없다. 대통령이 된 이후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사항 중의 하나다.

대한민국의 대북관과 안보관 및 반미정서가 이 정도라면 한미동맹도 무의미하다. 베트남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한국 언론의 반 트럼프 정서는 세계 최고란다. 이런 한국을 굳이 미국이 나서서 보호할 이유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은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만 저지하면 그만이다. 통미봉남에 ‘벼랑끝 전술’을 포기하지 않는 김정은을 초청해 밥 먹고 골프 치고, 반대급부로 핵동결 및 ICBM을 중단시키면 그만이다. 이른바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 한미동맹도 끝이다. 베트남을 포기했지만 통일된 베트남은 친미국가가 되었듯이 김정은을 친미주의자로 만들면 그만이다. 김정은의 유일한 목표는 권력이지 않은가. 권력 대 핵, 미사일의 바터다.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좌파세력의 전쟁관과 대북관은 다음과 같다. “어떤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

이런 인식이 2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운데 김 씨 부자는 마음껏 핵과 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도 거리낌 없었다. 세뇌된 평화 프레임의 위력이다. 이제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코앞이다. SLBM에 이어 ICBM까지 만들어 미국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런데도 좌파 인사들의 평화 코스프레는 여전하다. 좌파 정권 때 안보가 튼튼했다고 한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인지. 정말 국민은 바보다.

다음 차례는 미국이다. 핵보유국 북한이 사거리 1만km에 달하는 ICBM으로 미국을 위협한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손을 떼라는 메시지다. 트럼프는 강경 대응하고 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며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동원해 대북 압박에 나섰다.

북한은 결사항전을 선포했고, 북한의 동맹국 중국의 반발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동맹국 남한마저 ‘소 닭쳐다 보듯’ 한다. 동맹국을 지원하지 못할망정, 또 다시 평화 코스프레다. 북한에 선제공격이라도 가하면 ‘반전운동’이라도 펼칠 기세다. “야단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딱 지금 상황이다. 차라리 한미동맹을 깨라! 김정은이 쳐들어올 때 굴복하면 평화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의 수순

트럼프의 행보가 눈에 띈다. 아베와의 정상회담으로 미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4월 6일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협상의 달인’다운 면모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독자 해결하겠다”며 시진핑을 몰아 세웠다. 정상회담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시리아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부었다. 13일에는 아프간 IS 기지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고 하는 모아브(MOAB)를 투하했다.

대북제재 시늉만 내던 시진핑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중국에 대해서는 “북핵 해결에 도움을 주는데 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느냐”며 얼러댔다. 중국의 대미 흑자 규모는 3500억 달러에 달한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유보한 대신 얻은 모종의 대가는 북핵 옥죄기일 것임이 틀림없다.

펜스 부통령의 “미국의 힘과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 속에는 미국의 단호함이 묻어 있다. 이제 트럼프의 북핵 폐기 수순이 읽혀진다. 1순위는 중국을 지렛대로 북핵 폐기에 나서는 것이고, 2순위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두고 효과가 없을 때 직접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물론 6차 핵실험이나 ICBM의 도발이 있을 때는 즉각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독재테러국가가 소형화와 경량화된 핵탄두를 ICBM에 실어 미국을 타격할 실력을 갖추기를 기다릴 수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IS나 중동 테러집단에 유입되는 것도 방관할 수 없다. 대화에 매달려 ‘돈 주고 뺨을 맞고도’ 반성하지 않는 우리나라 좌파 정권과는 다르다.

사드 배치도 분명하다. 사드는 우리 안보에도 중요하지만, 주한미군 2만8000명과 미군가족 23만여 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중국 편들기에 나서는 한국의 행동을 보면 어떨까? 최고의 통일 전문가 행세를 하는 한 원로 언론인은 저서에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1세트에 2조 원에 달하는 사드를 네 세트까지 강매하기 위해 배치를 강요한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독일판 사드 논쟁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서독은 소련제 핵미사일 SS-20의 배치로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판 사드 논쟁이었다. 논쟁은 1979년 12월 12일, 나토가 슈미트 총리의 제안에 따라 이중결의안을 채택하며 촉발되었다. ‘나토 이중결의안’은 “소련이 동유럽에 현대화된 핵미사일 SS-20을 확대 배치하려면 나토와 협상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서유럽은 미국의 핵미사일 퍼싱 II와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소련은 최신예 핵미사일 SS-20을 동독 및 동유럽 전역에 확대 배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토 이중결의안은 세계적인 사회운동이었던 ‘평화운동’과 정면 충돌했고 서독 정치권에서도 녹색당이 결성되는 등 군비 확장과 반전 운동이 거셌다. 심지어 사민당 내에서도 반 슈미트 그룹이 형성되기도 했다.

1981년 6월 20일, 함부르크 개신교의 날 행사가 열렸다. 8만여 명의 군중이 결집해 전쟁 반대, 핵미사일 배치 반대를 외쳤다. 참가자 중에는 교사, 언론인은 물론 전역 군인들도 있었다.

1981년 10월 10일에는 수도 본에 전후 최대의 평화운동이 열렸다. 전국에서 버스 3000대, 41편의 특별열차가 동원되었다. 기독교인, 평화운동가, 노조, 사회주의자, 학생, 청년 등 30만 명이 집결했다. 슈미트의 결정을 비난하며 “평화는 무기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쳤다.

‘평화운동’에는 좌우 구분이 없었다. 동독의 자칭 평화운동과의 연합도 이뤄졌다. 그 해 12월, 동베를린의 한 호텔에 동서독 평화운동가들이 모였다. 동독과 서독의 작가 100명을 비롯해 예술인, 학자 등이 만남을 갖고 ‘평화’, ‘군비축소’, ‘반전’을 의제로 공동전선을 폈다. 이른바 ‘베를린 만남’(Berliner Begegnung)이었다. 이념으로 무장된 ‘평화운동’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 시기는 서독에서 좌파 무장단체인 ‘적군파’의 암약도 거셌던 때였다.

1983년 10월 22일 평화운동에는 전국에서 150만 명이 집결해 미국산 퍼싱 II와 크루즈 미사일의 서독 및 유럽 배치를 강력 반대했다. 109km에 달하는 인간 띠가 이어지기도 했다. 사민당 내 평화주의자 오스카 라퐁텐, 에곤 바와 같은 정치인들이 연단에 올라 슈미트를 규탄했다.

이런 국내외의 평화 공세로 서독은 소련과 7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타협에 나섰다. 하지만 SS-20은 동독에 배치되었고 신임 헬무트 콜 총리는 미국제 퍼싱 II와 크루즈 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연방하원은 1983년 11월 22일, 찬성 286, 반대 225로 이를 승인했다. 대화론자 에곤 바는 ‘왜곡된 사고의 상징’이 빚어낸 참사라며 콜이 “전쟁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2009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행사에 콜 총리가 연사로 나섰다. 그는 “나토 이중결의안이 없었다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지도, 1990년 독일통일도 없었을 것이었다”며 지도자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2017년 봄, 서독에서 40년 전에 있었던 장면이 대한민국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더욱이 미북 대치는 탄핵 후 탄생할 정권에 따라 어떻게 전개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동맹과 한 편이 되어 김정은의 버릇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시누이 코스프레를 재연할 것인가? 문재인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과연 이 안보 위기를 어떻게 헤쳐 갈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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