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제2의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우려한다
美·中 제2의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우려한다
  • 고성혁 군사전문저널리스트
  • 승인 2017.05.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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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한국의 주변 정세, 새 정부는 대처 의지 있는가

# 장면 1

2015년 9월 3일 박근혜 前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천안문 망루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중국군의 열병식을 사열했다. 외교전문가들은 경악했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반일노선의 결정판과도 같았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대립각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베 일본 총리와는 임기 중 한번도 일본을 국빈방문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2016년 일본에서는 ‘북핵’해법을 모색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26~27일)이 열렸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스케줄이 겹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했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해 미국도 언짢은 시선을 보낸 바 있다. 2013년 12월 6일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 역시 우회적이긴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반일외교정책에 대해 꼬집은 바 있다.

▲ 중국은 그동안 한국에 많은 공을 들였다. 중국의 전승절까지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중국은 마치 한국을 한·미·일 연결고리에서 이탈시킨 듯 행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2015년 2월 27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그는 한·일간 갈등에 대해 “민족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이는 진전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한.미.일 동맹)에서 마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 장면 2

2014년 미 의회는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을 청문회에 불렀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3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위협이 집중 거론되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당시 주한미군 자산으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방어 능력이 없다고 증언했다. 미 의회는 경악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의회는 즉각 국방예산에 반영토록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협의된 바 없다고 하면서 사드 배치를 부인했다. 미국 MD에 편입된다는 좌파의 주장에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사드배치는 급물살을 탔다. 우여곡절 끝에 성주 롯데 골프장으로 사드 배치 부지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물자를 실은 미군 차량은 주민들의 시위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미군 운전병은 시위대가 던진 물병에 얼굴을 맞기도 했다. 결국 미군은 헬기로 주요 물자를 실어 날라야 했다.

# 장면 3

 중국은 한국에 많은 공을 들였다. 중국 전승절까지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중국은 마치 한국을 한.미.일 연결고리에서 이탈 시킨 듯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을 겁박(劫迫)했다.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를 통해 “사드를 배치하면 한국은 독립을 잃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 대해선 그렇게도 강하게 나오던 한국은 중국에 대해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 지난 대선기간 중 북폭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뉴스에도 오를 정도였으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핵문제를 미국이 무력으로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인이 피를 흘리지 않는 한 미국은 남의 일에 먼저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미 행정부에 맞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오히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7명은 지난 1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중국을 편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드 배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앞으로 사드 관련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와 충돌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 장면 4

4월 7일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은 마주 앉았다. 북핵 문제는 두 정상 간의 첨예한 교차점이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난데없이 역사 강의를 했다.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는 수천 년 세월과 많은 전쟁이 얽혀 있고,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다” 이 내용은 미.중 정상회담 후 4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시진핑은 “한국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not North Korea, Korea)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즉,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 장면 5

구한말 조선 조정(朝廷)은 동학난을 진압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조선은 청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그러나 텐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자동개입하게 되었다. 결국 청.일 양국은 한반도에서 맞붙었다. 1894년 7월 25일 일본 해군은 청나라 해군을 아산만 앞바다에서 궤멸시켰다. 그리고 육군은 평택 성환 전투에서 청군을 패퇴시켰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는 패배했다. 그 결과 맺어진 조약이 시모노세키 조약이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였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청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수천 년간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영향권에서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역사의 데자뷰 ‘1894년’이 한반도에서 재현되는가?

현재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는 1894년과 거의 흡사하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줄’을 잘 잡았다.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서 영.일 동맹을 성사시켰다. 영.일 동맹의 후원자는 미국 디어도어 루스벨트였다. 영국과 미국을 배경삼아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정책을 보면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연상시킨다.

일본은 1894년의 기억을 똑똑히 하고 있다. 100여 년 전 러시아의 팽창은 21세기에 중국의 팽창으로 치환되었을 뿐이다. 이에 발 빠르게 미.일동맹을 강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아베 총리는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 반면에 중국은 ‘remember 1894’를 되새기고 있다.

트럼프 VS 문재인

1894년의 패배를 되갚겠다고 벼르고 있다. 시진핑은 북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트럼프와 흥정을 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북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사드에 대해서 중국은 트집을 잡고 무력 충돌까지 언급하고 있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 말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중국은 1894년 이전의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구축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한국의 대통령은 문재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앞선 그 어떤 정권보다 친중(親中)적일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건에 대해서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부정적 시각을 노출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대미외교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미외교보다 친중외교를 펼치고 트럼프 정부와 심각한 마찰을 일으킬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갈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이다. 그 누구보다 베팅과 딜(deal)에 능한 사람이다. 그는 절대로 손해 볼일은 안한다. 과거 역대 미 대통령이 동맹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했다면 트럼프는 동맹국일지라도 손해날 일은 안한다고 누차에 걸쳐서 천명했다. 비공식적이긴 해도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이 비용을 부담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피력한 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에 북폭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뉴스에도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 일이 없었다. 북핵 문제를 미국이 무력으로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인이 피를 흘리지 않는 한 미국은 남의 일에 먼저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미 행정부에 맞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한국이 북핵 해결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미국 역시 발을 뺄지 모른다. 대신 조건이 있다. 사드 배치도 철회되고 새 정부가 보다 중국에 기운다면 미국은 북핵 폐기 대신 북핵 동결이라는 외교적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이미 한켠에선 미.북 간에 민간인 차원에서 물 밑 접촉이 있다고 보도된 바도 있다. 외신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이 미.북 간 ‘트랙1.5 (반관 반민)’ 대화를 위해 8~9일 노르웨이를 방문한 사실을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는 미.북 간 직접 대화를 전혀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눈치 볼 것 없이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할 수도 있다.

미·중의 밀약, 제2의 가쓰라 태프트 조약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구한말 조선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러시아 편에 섰기 때문이다. 청일전쟁 직후 러시아, 독일, 프랑스는 일본을 압박해 요동반도에서 철수하게 했다. 역사에서는 이를 3국 간섭이라고 한다.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편에 섰다. 러시아에 기대서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일본은 1895년 조선에서 친러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민비를 잔혹하게 시해(弑害)했다. 역사에서는 을미사변이라고 한다. 구한말 조선은 국제정세를 너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 팽창을 막기 위한 공동의 전선을 펼쳤다. 일본은 여기에 발빠르게 가담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도 러시아 봉쇄작전의 일환이었다.

1905년 쓰시마해전에서 일본은 러시아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패권국 지위에 올랐다. 게다가 일본의 뒤에는 막강한 영국과 미국이 버티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일본을 지원했다. 1905년 7월 미국의 육군 장관 태프트는 필리핀을 방문하던 도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 타로(桂太郞)와 회담을 가졌다.

태프트와 가쓰라는 러일전쟁 이후의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안건들을 논의하고 3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로써 일본은 외교적으로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가쓰라 태프트 조약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단 밀약의 주도자가 일본 대신 중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현실로는 어떻게 다가올까? 사드 배치는 무산되고 한국정부가 완전히 친중 반미로 돌아설 경우 미국은 한반도 정책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2022년 한미연합사 완전 해체 후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면서 미·중간에 한반도를 놓고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 시나리오는 제2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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