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달빛정책에는 통일의 아침이 없다
[심층분석] 달빛정책에는 통일의 아침이 없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5.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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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정책의 이념적 기초인 ‘평화경제론’은 남북 간에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 이론, 평화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공세적인 북한 자유화가 올바른 길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시키겠다.”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공약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짧고 단호한 의지는 흔히 ‘달빛 정책(Moon Shine policy)’으로 외신들에 의해 보도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승계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구체적으로 2000만 평 개성공단 확대와 함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에 퍼주기식 정책은 국제사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 충돌하는 것이어서 대통령의 성을 딴 Moon Shine은 미국에서 밀주업을 의미하듯이 ‘암수(暗數)’나 ‘꼼수’처럼 부정적 의미로 비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 지난 14일 신형 지대지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5일 보도했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문재인 정부출범 후 첫 도발로 남한의 새로운 정권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사진은 지상에서 발사된 직후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화성-12의 모습. / 연합

16세기의 사상가인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외친 로마의 베제티우스나 마키아벨리의 견해와 충돌한다.

역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에라스무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적 대북경협과 지원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미사일이었다.

돈으로는 평화를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게 드러났으며 ‘공포의 균형’을 통해서만 적과 평화가 수립된다는 현실주의 이론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 마키아벨리를 지지한다. 그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달빛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일정 부분 안보강화라는 수정을 가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대북 포용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지난 5월 24일, 청와대는 대북 경협이 전면 중단된 5·24조치에 대해 획기적인 남북경협재개 선언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3일 전이었던 5월 21일, 북한이 ‘북극성 2형’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언론을 통해 “‘5·24 조치’ 7주년을 맞아 천안함 사태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5·24 조치는 현실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특보는 이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했다. 북한에 협력 의사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한 의도로 해석되는 부문이지만, ‘부적절하다’는 비판적 시각들이 야 3당으로부터 제기됐다.

▲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진보진영 내에 오랜 담론으로 존재했던 ‘평화경제론에 바탕하고 있다. / 지난 2016년 8월 17일 오전 10시 김대중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국회 본관 귀빈식당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경제론 발전' 세미나가 (재)김대중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세미나에는 (재)김대중기념사업회 권노갑 이사장, 박주선 국회 부의장,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한정·김현미·유은혜·정재호 의원 등 DJ계 주요 핵심인사들이 참석했다. / 유튜브 캡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선 운동 기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다분히 전략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되는 부분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잇단 북한의 핵실험과 군사도발로 그 의미가 퇴색한 때에 ‘달빛정책’이라는 이름조차도 문재인 후보로서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는 ‘개성공단 2000만 평 확대’ 공약으로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바른정당과 심지어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으로부터도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개성공단 2000만 평 공약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 규제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따라서 심도 있는 주장을 회피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달빛정책’ 대북공약은 2012년 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표방했던 ‘한반도 평화 구상’과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발표했던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에 바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둘을 묶어서 ‘대북 평화-경제 투 트랙’이라는 아젠다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대북정책의 기조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4월 23일,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던 ‘문재인의 담대한 한반도 비핵평화구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반도 비핵평화 구상에서 문재인 후보는 ‘경제공동체’, ‘동시행동’, ‘완전한 핵 폐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법제화’ 등을 강조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경제공동체’ 그리고 ‘법제화’라는 세 개의 키워드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경제공동체’는 2012년의 한반도 평화 구상과 2016년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도 주장했던 내용이다. 한반도에 남북 단일경제권이 형성되면 약 8000만 명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며, 이를 토대로 인구 6억 이상에 달하는 동북아시아 각국과 통상하는 경제의 허브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 더 높아지고, 북한의 경제발전도 가속화되어 평화통일의 기반도 마련된다는 것. 문 대통령은 이를 한강의 기적을 본뜬 ‘대동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북핵 폐기와 동시에 남북 간에 그리고 미·북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6·25전쟁에 대한 정전협정을 종전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법제화’의 부분은 이제까지 남북 지도자들 간에 있었던 회담과 합의 사항은 조약으로 승인되지 못했기에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6·15선언과 같은 내용을 의회비준을 통해 법제화하겠다는 공약이다. 그렇다면 ‘평화협정’, ‘경제공동체’, ‘법제화’라는 주요 대북 정책의 아젠다는 얼마나 성공할 수 있으며 또 어떤 가능성과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달빛정책의 이념, 평화경제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진보진영 내에 오랜 담론으로 존재했던 ‘평화경제론’에 바탕하고 있다. 평화경제론은 크게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과 교역하는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자본주의 평화론’ 두 개의 명제를 축으로 가지고 있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 개성공단 남북경협을 추진할 때 제기된 이론적 바탕이었는데, 평화와 경제를 선순환 시켜서 남북 간에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남북경제공동체로 승화시켜 실질적인 경제성장의 효과마저 도모하자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의 핵심은 ‘남북경제연합’이 된다. 2012년 대통령에 출마했던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다섯 가지 과제는 ①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재가동을 통한 ‘남북경제연합’ 실현, ②이를 위한 5개년 계획 수립, ③인구 6억 명 시장의 ‘동북아협력성장벨트’ 형성, ④북의 산업기반 구축을 위한 ‘한반도인프라개발기구’ 수립, ⑤6자회담과 남북미중 4개국포럼을 통한 평화선도 역할 등이다. 그 결과 남북협력이 가속화되어 인구 8000만 명의 한반도 공동시장이 구축되고,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하리라는 것이 청사진이었다.

이 기조는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기조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이념의 기초가 바로 ‘평화경제론’이었다. 평화경제론은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론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서독의 대동독 유화정책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었다.

문제는 평화경제론의 바탕인 민주평화론은 같은 민주주의체제 국가 간의 체제적 동질성을 바탕으로만 성립한다는 점이어서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정치집단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국가 사이에는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은 그 전제 자체가 오류라는 점이다. 그러한 오류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서해도발과 핵무기 개발이 끝내 김정일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 증명한다.

북한은 민주체제가 아니기에 ‘민주평화론’ 그 자체는 적용할 수 없는 허구였다는 점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드러난 사실이었음에도 진보진영과 문재인 정부는 그 오류를 또 다시 답습하려 한다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평화론의 모순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적과 동지’의 배치로부터 등장한다는 독일의 헌법과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성찰을 빌려보면 더 분명해진다.

슈미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모든 정치제도는 ‘외부의 적’ 때문에 등장한다. 즉 자국의 안전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치체제는 구축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제 역시 군주제와 마찬가지로 외적에 대한 방어체계로서 성립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슈미트는 민주제든 공화제든 군주제든 국가 간에는 기본적으로 적과 동지의 질서만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슈미트의 입장은 고전주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국가에는 적이 필요하다’고 했던 성찰과 맞닿아 있다. 정치학자들은 이 점에서 국가 간에 우호 선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보편적 이상주의 국제관계론자들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현실론자로 양분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대북관은 현실주의론보다는 이상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19세기 민족주의 영향이 여전히 큰 동기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에 대해 석학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은 상상적 공동체이다’라고 주장했던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민족의 개념은 개념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실제 대상이 없는 허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법치국가(State)는 보편적 규범에 의해 특수성을 내세우는 민족국가(Nation)를 극복하게 된다. 민족을 내세웠던 유럽의 19세기와 20세기 국가들이 마주했던 현실은 평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전쟁이었고 그 대표적인 민족 간의 전쟁은 다름 아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었다.

북한 자유화가 통일의 초석되어야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대북정책의 이념으로 제시하는 ‘평화경제론’ 역시 북한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는 오류라는 점은 쉽게 지적된다. 평화경제론은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peace through trade theory)’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유주의적 관점인데 국가들은 전쟁 비용과 교역의 이익을 비교해서 교역의 이익이 더 큰 경우 전쟁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화경제론은 흔히 ‘자본주의 평화론’으로 일컬어진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론적 배경 가운데 중국의 자본주의 정책과 미국의 시장경제가 교역의 이익으로부터 전쟁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 정도로 개방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며 더구나 민간이 자유로이 교역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개성공단과 같이 북한의 노동당과 남한의 기업들이 교역하는 시스템은 정경분리가 가능하지 않으며 결국 북한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남한의 기업들이 인질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종종 현실로 등장해 왔다. 그러한 평화경제론의 북한 적용 오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막대한 대북지원과 경협에도 불구하고 끝내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 염원을 무참하게 깨트린 핵개발로 이어졌다는 사실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그러한 역사적, 정치적 현실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유럽통합을 상징하는 EU를 남북 간의 대표적인 통합모델로 설정해 왔다. 그러나 EU는 체제와 이념에서 상호 동질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의 통합이라는 점을 이들은 너무나 쉽게 간과한다. 남북한의 통합은 EU 모델로 적용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이며 오히려 그 길은 동독이 주체적 결단에 의해 서독에 편입된 역사적 사실로부터 고찰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평화론이나 평화경제론과 같은 남북 간에 현실 부정합한 이론보다는 북한 민주화, 또는 북한 자유화와 같은 공세적 자유주의 이념정책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생각은 과거 미·소 냉전 기간에 레이건 행정부가 교황청과 협력해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의 자유화를 지원하고 폴란드의 자유화가 동독과 체코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불러오고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던 길을 의미한다.

북한 역시 전체주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인민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모순 속에 빠져 있다. 이러한 모순은 중국처럼 개방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를 계속 내부에 축적할 수밖에 없으며 종국적으로 북한체제는 핵을 안고 내부로부터 붕괴되든지, 개방정책을 통해 중국식 모델로 전환되는 선택 외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 워싱턴과 한국 보수주의 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당연히 북한은 이러한 선택의 프레임을 벗어나 체제 유지와 정권 유지의 묘책을 찾으려 들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수단이 ‘우리민족끼리’라는 대남통일전선전략으로 남한을 중요한 경제적 약탈처로 설정하리라는 관측은 현실적이다.

그러한 수단으로 북한은 핵위협을 통한 남한의 자발적 협력, 즉 ‘전쟁만은 안 된다’는 허구적 평화주의를 남한에 고취시키고 미국에 대해서는 평화협정을 통해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후, 남남갈등에 의한 기습적 무력적화 또는 자생적인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체제통합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은 무시될 수 없다.

남북협상 법제화의 위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공약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단연 ‘법제화’이다. 문 대통령은 4월 23일 대북정책 기자회견에서 ‘남북 간의 협의 사항이 법제화되지 않는 까닭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6·15선언과 같은 남북 지도자들 간의 아젠다가 국가 간의 조약으로서 효력이 없기에 북한이 남한의 평화 추구 우호의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주장에 바탕한다. 따라서 6·15선언과 같은 남북 의제가 국회 비준을 통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성립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그럴 경우 남북 간 협상은 오히려 유연성을 잃고 동맹국간에 외교적 분쟁이나 정파 간에 정쟁적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문재인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6·15선언에는 남북 간 낮은 단계의 연방체를 실현한다는 아젠다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남북연방제는 동북아 질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며 이러한 정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검토와 동맹국인 미국, 그리고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에 놓인 일본과 중국의 개입을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주체적, 자주적 외교’를 주장하지만, 오히려 이를 위해 남북 간 협상을 국가 간 조약의 위치로 승격시키는 것은 주변국들의 개입과 갈등으로 우리의 대북 협상력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진영에서는 끊임없이 6·15선언을 조약으로 국회가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지만, 그러려면 김대중 대통령은 먼저 6·15선언의 내용과 실천 방법에 대해 청문회 등을 통해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그러한 국회 설득이 없는 일방적 선언을 가지고 국제법에 준하는 조약으로 비준하라는 요구는 독재적 발상에 다름이 아니다.

국내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의회의 의결을 중시하라는 진보진영의 요구는 유달리 북한에 유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국회의 시비를 차단하는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진보=종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불러온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안보 문제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안보와 평화라는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현실주의적 자유주의 정치학자, 이사야 벌린의 ‘여우와 고슴도치’론을 문재인 정부는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를 위한 여우의 얼굴을 보이면서도 안보에 대해서는 고슴도치와 같이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의 표방은 상호 호혜를 불러온다. 다만 누구에게 현실적인 힘이 존재하는가의 문제이며, 따라서 북한의 핵위협으로 북한이 남한에 대해 ‘힘의 우위’를 점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의 김정은 일당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 마키아벨리의 ‘사물의 본성’은 남북 간에 여전히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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