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내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유
[이슈] 내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유
  • 김승욱 중앙대 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5.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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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뒷전, 절차만 시비

마치 국정교과서는 발전을 역행하는 것이고, 검정교과서가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검정교과서가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점이 발견이 되어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 전의 검정교과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전제 하에서 국정화는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2001년 6차 교육과정까지는 국정교과서로 가르쳤다. 그런데 2002년에 시작된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서 중.고등학교 국사는 국정교과서로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에 <한국 근·현대사>라는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넣으면서 이것을 검정교과서로 했다.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가 여러 종류가 나오면서 2004년부터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편향적으로 서술되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주로 YS정부에 비해 현 정부(DJ정부)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등 역대 정부의 공·과에 대한 서술이 편파적이라는 것과 북한 관련 역사 서술이 편향되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북한은 건국이라고 명시하고, 대한민국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으로 묘사하는 것 등이었다. 특히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향성이 많이 지적되었다. <월간조선>에서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 34개 항목이 북한을 옹호하고 대한민국을 비판 일변도로 서술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권철현 의원(한나라당)은  17대 국감에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친북, 반미, 반재벌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과서포럼’이 만들어져 여러 차례 포럼을 열어 검정교과서들의 편향성을 지적했고, 반대 측에서는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측을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라고 낙인을 찍으며 반발했다.

▲ 국정 교과서 연구 학교로 확정된 경북 경산 문명고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철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란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로 교육부가 편찬하며,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경우에는 국정도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검정교과서란 ‘국가 이외의 저작자가 국가에서 검정 권한을 위임한 검정기관(한국사의 경우,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받아 사용하는 교과용 도서’를 말한다.

인정교과서란 ‘교육부 장관이 시·도교육감에게 교과서 출원권한을 위임하여 시·도교육감이 국·검정교과서 이외 도서를 교과서로 대용할 수 있도록 승인(인정)한 도서’를 말한다. 검정과 인정을 합해서 검인정 교과서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2007년에 7차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국정이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국사> 과목을 <역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던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한국문화사>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그리고 2009년에 다시 개정해서 <한국문화사>라는 과목을 없애고, <고교 역사>를 <한국사>로 바꿔 결국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한국사>라는 과목으로 통합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역사 과목에서 국정교과서가 사라지고, 검정교과서만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정 역사교과서가 사라진 것은 불과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 동안 검정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이 상당히 많이 제기되었다. 2008년에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가 38건의 수정 명령을 내렸으나 집필진 불복 소송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다.

또한 2011년에도 ‘자유민주주의’ 용어 사용의 적절성 문제나, 대한민국의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진술의 사실 여부,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명기 여부,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사건 및 친일파 청산 노력의 명기 여부 등 주요 용어의 적절성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발생했다.

2013년에는 6·25전쟁의 책임이 남북한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자료 등을 실은 교과서들에 교과부가 829건의 수정 권고 사항과 41건의 수정 명령을 내렸으나 일부 집필진이 이를 거부하고 소송을 반복했다. 2016년에 교과부가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3년이 소요되었다.

검정교과서, 이념편향 심각

이렇게 검정교과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민중사관에 입각해 있는 편향적 서술 일색이어서, 우파 진영에서 2013년에 교학사를 통해 다른 시각의 한국사교과서를 편찬했다. 하지만 이 교과서가 보수적 성향이며, 친일과 독재자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집단 반대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국 5560여 개 중고등학교 중 단 3개 학교뿐이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와 교사에 대해서 갖은 협박과 집단행동을 저질러 결국은 다 철회하게 만들었다. 이전에는 교학사는 가장 많은 교과서 종류를 발행하는 출판사인데 이 사건으로 이윤이 548억(2012년)원에서 312억(2014년)으로 급감했고, 시장점유율이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검정교과서 체제가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체제가 아니고, 결국은 한쪽의 시각에 편중된 교과서만 채택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약 검정체제 하에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와서 학생과 교사가 외부의 압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검정체제가 자유의 폭이 넓어졌다는 측면에서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정체제 하에서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검정교과서 체제로 간 지 불과 8년 만에 정부는 국정체제로 전환을 하려고 했는데, 이를 자유가 후퇴하는 역사의 후퇴라는 등 온갖 비난을 했다. 지금도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화로 후퇴했다는 이유로 문제시 하는 것이다. 국정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국정화에 대해서는 보수 측에서도 일부 반대했다. 그 이유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집필에 동참해 보니 그것은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검정교과서의 경우 교수 1-2명과 현직 교사 5-6명이 집필을 한다.

따라서 참여한 한 두 명의 역사학자의 견해에 따라서 상당히 서술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경우는 31명이 참여했다. 집필진 중에 학습 탐구 등을 맡은 7명의 현직 교사를 제외한 24명은 교수이거나 역사 관련 연구소의 연구위원들로 각 시대나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국정화 교과서가 신뢰도 더 높다

이들은 모든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아주 좁은 부분에 한정해서 집필하기 때문에 정치적 색깔 논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매우 조심했다. 또한 편수 책임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의 경우에는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집필회의에 참여하여 집필진과 긴밀하게 의견을 나누는 국사편찬위원회 편수담당 연구사들은 오랫동안 국사편찬업무에 종사해온 전문가들로 정치적인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의 눈높이를 검토하는 현장 교사들의 검토도 받는데, 이 교사들은 자원자들 중에 뽑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선발된 사람들이 아니다. 또한 최종 검토에서 국사학계 원로들이 최종 검토를 하면서 치우친 견해들은 걸러내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지적을 받으면 필자가 아무리 주장을 해도 수용이 안 된다.

검정체제 하에서는 여러 교과서가 있어서 관심을 적게 받지만, 국정의 경우에는 온 국민의 관심을 받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집필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진에 참여한 소감이다. 따라서 일부의 우려와 같이 정권이 바뀌면 다시 교과서의 색깔이 바뀌어 정권에 따라 극단과 극단으로 역사교과서가 갈팡질팡 할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 국민적 반대로 인해서 교육부가 작년에 이번에 만들어진 ‘올바른 교과서’를 원하는 학교는 연구학교로 지정하고, 무상으로 원하는 학교에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5564개교 중에 단 한 학교도 선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대구와 경북 지역의 약 2100개 학교가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갔지만, 결국 현장 교사들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압박으로 인해서 전국에서 연구학교 신청을 한 학교는 대구 문명고와 경북항공고 2곳뿐이었다. 이들 학교에서 선택하려고 하자 교장실 앞에서 학생들이 교사를 해임하라는 등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많은 단체에서 노력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교재 선택권은 교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교사에게 있는데, 교사가 자신의 재량에 의해서 선택하고 싶어도 이런 조직화된 반발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무조건 폐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온다. 집필자도 한 권씩 밖에 받지 못했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파일을 올려서 원하는 국민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어떤 내용이 문제인지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토론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가면서 정말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교과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과 같은 갈등의 소지가 많은 검정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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