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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18신화 만들기는 대한민국을 조이는 족쇄될 것

5·18 신화의 진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 미래한국 편집위원l승인2017.06.02l수정2017.06.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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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 미래한국 편집위원  webmaster@futurekorea.co.kr

과거 파헤치려던 권력은 모두 실패

과거를 파헤치는 모든 권력은 실패한다. 우리는 김영삼 정부의 ‘과거청산 청문회’와 ‘역사 바로세우기’는 물론이고,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과거사(過去事) 진상조사’를 수도 없이 되풀이 해왔다.

‘진실과 화해’라는 명목으로 스무 개 가까운 과거사 진상조사위가 작동되었고, 정치권력의 뜻에 따라 과거사를 사법심판도 없이 재단(裁斷)했었다. 결과는 모두 참혹한 종말이었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는 커녕 본인들조차도 바로 서지 못했다. 제주 4.3사건에서부터 여수순천 군사반란, 동백림 간첩사건이나 KAL기 폭파범 김현희사건 재조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허구적 소설(小說)에 기초해 조선시대의 동학(東學)란에 대한 조사와 진상규명이 펼쳐졌었다.

37년 전 사건인 광주 5·18에 대한 조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 때마다 새로운 기념사업과 지원사업이 계속되었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4번째 재조사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2번째 재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미래를 창출할 능력을 상실한 모든 권력이 과거를 파헤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기 한풀이에 이용하는 신원(伸寃)정치에 동원시켜왔다. / 18일 오전 광주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

미래를 창출할 능력을 상실한 모든 권력이 과거를 파헤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기 한풀이에 이용하는 신원(伸寃)정치에 동원시켜왔다.

국민의 부여한 정치권력은 국민의 삶을 살피고, 미래를 개척하라는 것임에도 현재를 책임질 능력이 없는 권력은 늘 과거로 향하게 되어 있다.

오랜 기간 권력에 소외되었던 호남(湖南)지역의 한을 대변했던 김대중 정부조차도 박해받은 춘향이의 한이 풀어지는 것은 이몽룡을 만나는 것이지 변사또를 단죄하는 것이 있지 않다는 표현을 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는 출범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인 3·1절 기념식에서 국민의 모골을 송연케 하는 연설을 했었다.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빛나는 현대사에 자긍심을 갖고 피땀으로 헌신한 분들에 경의를 표하며 계승을 다짐해야 할 노 대통령은 오히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규정지었다.

그런 인식에 기반한 권력이 가는 것은 너무도 뻔했다. 과거 파헤치기였고, 기껏해야 대한민국을 붕괴시키겠다는 전체주의 북한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역사평가는 제3자와 후대의 몫

권력은 유한한 것이고 작은 성취(achievement)조차 이루기에 5년은 매우 짧다. 국민이 권력을 부여한 것은 현재를 책임지라는 것이지,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를 청산하라’고 위임한 것이 아니다.

역사 평가는 제3자와 후대의 몫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서 광주 5·18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고 진상 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18특별법을 만들 것이고 시민혁명 기념일로 하겠다고도 했다. 권력 스스로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 결과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역사의 평가자가 되겠다는 격이다.

광주 5·18은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명확히 설정되어 있고 몇 차례에 걸친 진상 규명에 따라 국민 모두가 기리는 역사적 사건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촛불혁명’을 내세우며 새로운 신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그 의도가 너무도 뻔하다.

5·18 신화를 함께 따르고 경배하라는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 세력은 궤멸(潰滅) 대상화하는 청산과 처단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5·18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만드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몫이 아니다. 국민 합의와 누적된 역사평가로 판단될 문제이다. 먼저 역사적 사실관계부터 커다란 간극이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과 발전은 1948년 건국과정의 자유민주혁명, 그리고 1960년 이후의 4·19 민주혁명과 근대산업화혁명은 물론이고, 누적된 민주적 경험과 사회경제적 발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 독재시대가 연속되다가 5·18을 계기로 민주주의로 전환된 나라가 결코 아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70년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체 속에서 평가되고 자리 매김 될 사안이다.

한국 현대사는 반민주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으로 양분되었다가,  5·18을 계기로 민주세력이 승리해 민주주의가 시작된 그런 나라가 결코 아니다. 전반적인 민주주의 변화의 수준과 정도에 입각해 우리 민주 역사를 본다면, 오히려 1948년 건국과정이야말로 가장 획기적 민주혁명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70년 짧은 민주 역사는 1948년 8·15, 1950~53년 6·25는 물론이고 1960년 4·19, 1980년 5·18, 1987년 6·10 등으로 연결되며 산업 및 사회경제 발전 위에 토대하는 의 연속적 과정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400만을 희생한 6·25도 헌법에 담지 않았다

둘째로 5·18 민주화운동은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역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광주 5·18은 오히려 충분히 역사적 위상이 확립되어 있다. 아직 대한민국 헌법에는 공산주의 혹은 전체주의와 싸워 승리했기에 민주공화국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는 헌법적 기록도 없는 나라이다.

민족 400만 명 전후가 피해를 입고 100만에 달하는 희생당하며 지켜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共産主義)와의 전쟁이었던 6·25에 대한 평가도 전문을 포함한 헌법 어느 곳에서도 그런 기록을 담고 있지 않다.

산업화 과정에서 매년 거의 250명씩 탄광의 막장 속에서 죽어갔던 광부들의 희생이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다 죽어간 77명의 건설노동자의 희생도 모두가 한국 민주주의 건설과 성숙의 기반이었다.

우리 민주주의 발전은 공산 전체주의를 목숨으로 거부하고 피나는 산업화의 토대 위에 있는 것임에도 6·25전쟁은 무시되고, 구로공단 근로자와 탄광의 광부 혹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한 산업전사의 희생은 무시될 수 있는 그런 역사와 헌법으로 갈 수는 없다. 8·15 건국정신이나 6·25 반공정신도 없이 5·18만 헌법정신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셋째로 ‘민주’를 외쳤다고 다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이나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 등에서 보듯 ‘민주’라는 구호는 실제 자유와 민주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쓰인 경우도 많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기려야 하는 것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한 범위로 제한되어야 맞다.

현재 5·18과 관련된 많은 기록들은 헌법가치에 벗어난 무장폭력혁명 관련 인사까지 ‘민주화 운동’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대변되어온 윤상원이나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박남선에서 보듯, 무기탈취와 폭력적 계급혁명을 지향하고 민주인사들의 간곡한 중재 노력까지 거부하고 무장투쟁을 선동해 무고한 피해를 초래한 인사까지 민주화운동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헌법정신과 광주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변되어온 윤상원이나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박남선 등 현재 5.18과 관련한 많은 기록들은 헌법가치에 벗어난 무장폭동혁명 관련 인사들까지 ‘민주화 운동’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무장 폭력혁명으로 몰고 간 윤상원이나 그를 기념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의 상징곡이 될 수도 없다. 비슷한 예로 제주 4·3사건이 논란이 되는 것도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무장을 갖춰 공산폭력혁명을 기도해 대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남로당 지도부들까지 무고한 희생자로 재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한에서 추앙받고 기려지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무고한 희생자로 만들어 기리며 국민 세금으로 국가 지원 대상으로 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거를 재해석하고 재단함으로써 현재의 상대방을 궤멸시키고 욕보이고자 하는 유혹이야말로 가장 강한 유혹이다. 권력에 의존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유혹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과거 조선(朝鮮)시대의 사색당파(四色黨派) 정치가 그랬다.

과거 사건을 들춰내 단죄하며 분풀이하는 신원정치로 날이 새고, 날이 졌다. 생산과 건설은 없었다. 그런 조선시대에 역사적 발전과 생산적이거나 미래지향적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는 엄중한 교훈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 재해석으로 경쟁자를 누르려는 유혹은 치명적

특히 가장 후진적인 권력이란 바로 자신들과 권력을 만드는 데 기여한 세력의 한을 풀어주는 데 권력의 자원을 소진하는 신원(伸寃)정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5·18 광주정신의 역사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5·18을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한 신화이자 정치수단에서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팔아 권력을 유지하고 대한민국 미래를 발목잡는 일로써 광주 5·18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성취와 업적을 만드는 데 전력을 투여해도 모자랄 것이 뻔한데 역사를 청산하고 다시 세울 자원과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현실성도, 사례도 없다.

내가 건설하는 건물이 훌륭하다고 평가되면서 전에 만들어온 건물이 초라해지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만들어 가는 것이지 과거에 만들어진 건물을 흉보고 무너뜨리는 것으로 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오직 현재를 책임지고 미래를 만들지 못하는 못한 권력들이 걸어간 가장 전형적 정치가 바로 과거를 재단(裁斷)하고 역사를 청산(淸算)하겠다는 것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늘 그렇듯, 과거의 축구 경기를 다시 보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누구라도 아는 일이다. 당연히 조직적이지도 못했고, 패스도 정확하지 못했으며 창의적인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다 안다.

그러나 잘못된 것들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며 비판하고 징계한다고 다음 경기가 나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방식으로 훌륭한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전세계 모두가 훌륭한 축구를 못할 나라는 없다.

성공한 나라,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복기(復棋)를 하는 이유는 오직 미래를 더 잘하기 위한 것이어야지, 상대가 악(惡)이었다며 공격하고 책임을 묻고 한풀이하며 자기 집권의 정당성을 만들려는 것은 더 큰 실패를 만드는 첩경이다. 과거를 지적질하며 그것을 근거로 권력이 정당화되고 영속될 있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5·18이든 세월호든 중요 사건을 신화로 만들고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 대한 공격과 ‘궤멸(潰滅)’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적폐(積幣)정치다. 문재인 정부는 저항적 투쟁과 생산적 건설이란 두 가지 길에서 계승보다는 저항사관에 입각한 국정 방향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견을 반전시킬 때 역사는 진화하는 것이다. 문 정부의 성공 여부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보고 가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부채(負債)라고 생각하는 ‘5·18 신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5·18은 역사에 맡기고 현재의 당면 문제를 극복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맞다. 현재와 미래를 실패하게 된다면, 그것은 5·18 신화에 의존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도 실패하고, 고귀한 5·18정신도 훼손되는 것이다.

물론 국민도 실패의 길에 내몰리는 것이다. 5·18은 정치권력이나 정부의 몫이 아니라 국민적 평가의 대상이며, 역사 평가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특정된 정치권력이 만들어 좌지우지하거나 폄훼, 찬양될 사안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할 때만이 광주 5·18은 보편화되는 것이고 더 올바른 위상을 갖출 것이다.

국가지도자가 보는 방향은 국민 모두가 함께 보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민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자원을 투여할 때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확신이 드는 곳만을 제기해야 한다. 권력을 이용해 과거 역사를 파헤치며 만드는 정치신화는 성공할 수도, 오래 갈 수도 없다.

권력의 힘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가장 비생산적이고 국론분열적인 것이다. 정치신화를 만들 것이라면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를 건설하는 데 기여할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승만의 반공(反共)신화나 박정희의 수출입국(輸出立國)과 중화학공업 신화는 미래지향적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청계천과 4대강 신화 혹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신화도 미래에 맞춰진 것으로 실패하더라도 남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국민 분열을 만들거나 헌법가치를 다투지는 않았다. 적어도 경쟁하는 상대방도 받아들이고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신화를 만들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5·18 신화를 만들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 주도국과 같은 신화를 만드는 데 정부가 가진 모든 권력을 쏟아 붓기를 간곡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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