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흔들리는 한미동맹, 냉정과 열정의 딜레마
[심층분석] 흔들리는 한미동맹, 냉정과 열정의 딜레마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6.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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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가치와 이익이라는 두 관점에서 봐야 이익이 크다면 그만한 비용이 든다.

‘피로 맺어진 동맹’ 한미동맹은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인식되어 왔다. 6·25전쟁에서 사망한 5만4000명의 미군 대부분은 한국에 대해 자신들의 역사수업에서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극동의 작은 한 나라에서 생명을 바쳤다. 우리로서는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 고마움의 참전이 분명하나, 사실 6·25전쟁은 베트남전과 함께 미국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이 두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구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 그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라는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가치와 이익’이라는 두 초점을 중심으로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혈맹은 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한미관계이고, 동반자는 이익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한미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이 가진 우정과 신뢰라는 가치가 양국의 이익보다 선행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러한 표현이 한미 간에 원만한 이익의 교환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을 담보하는 차원에서 나오는 외교적 수사라는 점을 지나치게 잊고 있다.

 

다시 말해 ‘피로써 맺어진 동맹’이라는 것은 한미 간에 적절한 이해관계가 절충되어 합의에 이르렀을 때 등장하는 것이지, 피의 동맹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실익이 양보되는 일은 과거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이미 GDP 1조4000억, 세계경제 11위(2016년 기준)의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는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트럼프 미 정부에서 분명한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미 의회조사국(CRS)은 ‘앞으로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통해 한미동맹 측면에서는 올해부터 협상에 들어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한미 양측이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지불한 금액은 총 9440억 원,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협상에서는 미국이 한국 측의 분담금을 대폭 증액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와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에게 공평한 군비 부담을 요구해왔다.

미국내 존재하는 한미동맹 무용론

최근에는 우리 정부에게도 10억 달러에 달하는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 정부가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언급을 한 바도 있다. 아울러 미 의회보고서는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소개하며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공언한 미국의 원칙과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해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 의회보고서의 전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내 영향력 있는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 싱크탱크 중에는 비록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나 한미동맹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오랜 기간 존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헤리티지 연구소와 함께 미국의 유력한 싱크탱크로 평가되는 자유주의 케이토(CATO)연구소 덕 밴도우 연구원은 1996년 자신의 저서 <인계철선: 변화하는 세계 속의 한국과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한국은 북한에 대해 GDP가 36배나 많은 국가임에도 자국의 방위를 스스로 지킬 수 없어서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비판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정책 참모를 역임했던 덕 밴도우 연구원의 이러한 시각은 부시 정부의 주한미군 감축계획 시에 우리에게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에 자동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인계철선’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한미관계가 과거의 피의 동맹이라는 감상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케이토연구소의 한미동맹에 대한 시각은 미국내 ‘고립주의’라는 외교정책을 고수하는 보수주의 정치노선을 대표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안보에나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고립주의 노선은 다소 부침은 있었으나 공화당의 기본 정책으로 이어져왔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2001년 9·11테러사건이었다.

9·11테러사건은 안보환경의 지각변동을 초래했다. 장삼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장(現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의 ‘조정기의 한미동맹과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FOTA)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탈냉전기 동북아 안보질서 변화 속에 경제 강국이던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위협론’이 제기되었다.

▲ 한미연합훈련에서 미군과 한국군 병사가 함께 이동 경계를 하고 있다. / 연합

급변하는 안보상황 하에서 주한미군 조정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이전, 군사임무 전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증대 등 한미동맹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국방태세 및 안보전략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다.

2000년대 주한미군의 조정은 과거와는 달리 ‘양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보고서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수도권에 편중된 주한미군의 불편함과 잦은 민원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용산기지의 이전 등 미군기지의 조정을 미측에 요구했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지역에서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피로 현상이 증가하고 반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부시 정부는 세계 경제의 침체와 국방비 감소를 위해 ‘해외미군 재배치계획(GPR)’ 차원에서 한국 정부의 용산기지 이전 요구에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안정화 작전이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주한미군 감축계획과 연계하여, 용산기지 이전과 미 2사단기지 재배치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미국은 미국의 이해에 따라 한미동맹의 관계가 변화되기 시작했고, 양국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동안 ‘피로써 맺어진 동맹’이라는 외교적 수사(修辭)는 유효할 수 있었다.

혈맹과 이익 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정책도 시기별로는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해외 분쟁에 미국은 말려들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군사적 협력이 북한을 선제공격한다기보다는 역시 방어와 제재, 그리고 협상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기조는 결국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의 실질적 증가를 의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주장해온 ‘한미혈맹’의 단어는 앞으로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게 된다.

특히 보수진영에서 애용하는 ‘혈맹’은 한미간, 자국 이해추구 협상에 한국의 이익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 경제 11위를 달성한 한국이 여전히 자국의 안보를 ‘혈맹’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의 희생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인식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의 동맹은 커녕, 서로 전쟁을 했던 미국과 일본 간의 튼튼한 미일동맹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다시 장삼열 위원의 분석으로 돌아가보자. 장삼열 위원에 따르면 1990년대 초 구소련의 해체와 바르샤바동맹체제(WTO)의 와해라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은 세계 안보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는 진영 의식과 영토 단위의 국가 개념이 약화되었으며, 정치·군사 중심에서 경제·기술 중심의 정보화와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있었다. 또한 국가는 물론 각종 국제기구, 테러집단 등 안보 주체가 다양화되고 있고 테러리즘, 마약, 밀수, 해적행위, 환경파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등 국경을 초월한 초국가적·비대칭 위협이 등장했다.

동북아시아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군사적·경제적 강대국들 간에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역이다. 동북아 국가들은 역내(域內)에서의 주도적 지위와 국가이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상호협력과 견제를 병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의 안보질서는 이중적 경향을 보이는데, 즉 21세기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아·태지역)이 가장 중요한 경제력의 중심으로 부상함으로써 평화·안정 지향의 지경학적(地經學的) 질서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을 장삼열 위원은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존재 등 아직도 냉전 구조의 잔재가 있고, 미국·중국, 일본·중국 간의 긴장관계 뿐 아니라 미국·북한 간, 일본·북한 간의 적대관계 등 역사적 유산에서 비롯된 역내 국가들 간의 불신과 적대감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과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은 동북아의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아태지역의 환경 변화는 오바마 정부로 하여금 종래의 ‘2개의 전쟁’, 즉 아시아와 중동에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른다는 전략 개념을 수정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하게 되었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선회한 것은 부시 정부 시절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유였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더 이상 미국이 중동의 석유정치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진 배경도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의 아시아 안보정책은 중국을 가상적으로 하면서 당연히 이 지역내 한국과 일본을 묶는 ‘한미일 삼각 안보 동맹’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도출됐다. 여기서 일본의 위상이 중요해진다.

미일동맹에서 얻는 교훈

일본과 미국은 서로 전쟁을 한 사이였다. 일본은 미국에 항복했고 미국은 전승자의 자격으로 일본을 복속시켰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유할 만한 가치가 없었으나, 오늘날 미일동맹은 혈맹이라는 한미동맹과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의 전 NSC 아시아 국장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교수의 해설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이클 그린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성향의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현재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일본실장이자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마이클 그린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며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중국과는 서로 협력과 길항의 관계인 동시에 북한과는 적대적 관계임을 지적한다.

그러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이 인도네시아보다 적은 국방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이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군사력을 확충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집단 안보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기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세계 질서에서 경찰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일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 ‘정상국가’,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내세워 군사대국화를 실현하고 있다.

혈맹이라는 감성보다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실리적인 이해관계라는 점은 미일동맹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미국과 일본 간에는 FTA가 필요 없을 정도로 경제적 동반자 관계에 놓여 있다.

군사적 협력을 넘어 경제적 공동체의 힘이 미일관계를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국채투자 순위에서 일본이 중국에 이어 2위이며, 그 차이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증명한다.

반면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는 달리 군사 협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온 점이 눈에 띈다. 단적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북한의 공격시 핵 보복’이 원칙이었다가 이후, 북한의 ‘핵 공격시 핵 보복’으로 변경되었고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핵 보복을 할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상태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미 의회의 승인 없이 자동으로, 그것도 반격불능의 상태로 핵 보복을 한다는 핵우산 방침은 올해 7월,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간에 재확인되었다. 조건은 일본이 현재보다 더 안보 예산을 늘리는 것이었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한다’는 명제는 현실주의 국제관계론에서는 동서고금의 진리라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해 우리는 그런 관계보다는 친미와 반미라는 양분된 시각을 가지고 미국을 바라봐 왔다. 미국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이념적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구분은 실익이 없다.

가치와 이익의 조화가 절실하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한국은 서로 이익을 주고 받는 호혜적일 경우에만 한미동맹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다. 미국의 이익이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방위력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라면 오직 그러한 방향에서만 피의 동맹은 유효하다.

단 문제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진실이다. 미국의 군사적 방위가 우리에게 그만큼 값지고 귀하다면 거기에 맞는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가지든지, 그것이 불합리하다면 자주국방을 추진하는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기하학에서 두 초점을 중심으로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들의 자취는 타원이 된다. 반면에 두 점에서 서로 다른 시각에 시작하여 일정한 속도로 퍼져 나가는 두 원의 교점의 자취는 쌍곡선이 된다.

한미관계에서 ‘가치와 이익’이라는 두 개의 초점은 신뢰와 합의가 지속되면 비록 원근이 발생하더라도 구심력이 작용하는 타원이 되지만, 서로 다른 시각으로 차이를 극복할 수 없게 되면 각자의 길을 가는 쌍곡선이 된다. 전자는 우리가 사는 길이고 후자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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