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는 사법 불신의 뇌관
우리 사회에 사법개혁이라는 과제는, 1990년대 초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재판 등 사법권의 실현 과정에 정치권력을 배제함으로써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주로 ‘사법권의 독립’, 즉 법원의 독립, 나아가서 개별 판사의 독립 내지 권한 확대라는 제도적 측면만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와중에도 사법부의 구성원인 대다수 법관들은 ‘법원행정처를 통한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은 법관의 자유로운 학술활동과 법관을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인식 아래 대법원장의 인사권 독점과 그로 인한 법원행정처의 관료화 등 구조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사법권 내지 법관의 독립을 명분으로 한 판사의 권한 확대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오히려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법원행정처의 폐지 또는 축소, 대법원장의 인사권 축소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법관 개인의 윤리적 역량 강화, 전관예우의 악습 철폐가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개별 법관은 국민의 인권옹호와 민주적 기본질서 및 법치주의의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사법적 보루)이다. 따라서 법관의 윤리적 일탈은 재판에 있어서 공정과 청렴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성을 상실하거나, 지나친 이념적 편향으로 국가안보를 해치고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함으로써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변호사 위법활동 배경에는 전관예우
얼마 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그를 변론했던 소위 ‘전관 변호사’인 대검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탈세와 변호사법위반 등으로 구속기소 되면서 거액의 수임료를 둘러싼 전관예우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홍 변호사는 ‘정운호 게이트’ 사건 말고도 2011년 개업 후 소위 ‘돈이 되는 형사사건’은 거의 싹쓸이 하면서 당국에 신고된 수임료로만 해도 1년에 거의 100억 원 가까이 벌어들이고 그 수입으로 부동산회사를 차려서 무려 100채 이상의 오피스텔을 매입, 관리해 온 사실이 드러났으며 앞서 최 변호사는 정 대표 등 2명으로부터 각 50억 원씩, 모두 1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서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소문으로 무성하던 ‘전관예우’ 실상의 일면을 목도하고 경악한 바 있다.(홍 변호사는 2013년 한 해 동안 당국에 신고한 수임료만도 91억 2000여만 원에 이른다.)
사실 법조계의 한탕주의 문화로, 법조비리의 뿌리가 되는 전관예우의 폐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고질화된 지 오래다. 최근까지 언론 보도 등으로 나타난 것만 해도,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국무총리는 그 직전 법무장관 임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부산고검장 퇴임 후 법무법인 근무 시절 약 17개월간 올린 16억 원의 소득에 대해 ‘전관예우’ 의혹이 있었다.
그 전에도 2014년 5월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한 채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경우 그가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5개월간 16억 원의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고위층 관료사회의 적폐라고 하는 ‘관피아’ 현상에 빗대어 ‘법피아’라는 웃지 못 할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당시 안 전 대법관은 “내가 생각해도 수입이 많았다”면서 머리를 숙이고 “공직에서 받았던 과분한 평가가 수임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다”고 하면서 급기야 11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논평을 내고 “안 후보자가 번 수임료는 일반 변호사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이라며 “이는 전관예우의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사법질서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2007년 대검찰청 차장직에서 퇴직한 후 로펌에서 약 7개월간 7억 7000만 원 정도를 받은 일이 전관예우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2011년 감사원장 인사청문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결국 그는 청문회 석상에 서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당시 경향신문은 ‘죽은 목숨도 살리는 전관의 힘, 모셔가기 경쟁’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는 ‘월급에 0 하나를 더 붙여라, 그들만의 화려한 2막’, ‘이런데도 전관예우가 없다고 억지 부릴 건가’라는 제목으로 전관예우가 관행화 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첫 법무장관인 김경한 장관도 서울고검장 퇴직 후 2002년부터 6년간 로펌에 근무하면서 재산이 48억 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서 2008년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되었다.
전관예우 의혹은 그 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5년 당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0년 대법관 퇴직 후 5년간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수임료만으로도 1년에 10억 원 이상 약 60억 원을 벌어들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에 대법관으로 지명된 박시환 변호사도 2003년 서울지법 부장판사 퇴직 후 약 22개월간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수임료만으로도 20억 원에 육박하는 큰 돈을 벌어들인 일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 그들은 모두 대법원장과 대법관직에 임명되었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때부터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하에 로스쿨의 도입 등 사법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관예우가 우리 사회에서 처음 문제가 되던 당시에는 법조계 내부에서는 전관예우란 ‘사라지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헛된 존재라면서 강하게 부인하거나 아주 예외적인 일부의 일탈행위에 불과한데도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호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전관예우는 일반 국민들 대부분은 이를 체감하면서 “있다”고 말하는데, 지금도 다수의 판사나 검사 등 현직 법조인들은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2013년 6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서울지역 변호사들 7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변호사 10명 중 9명은 법조계에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전관예우에 관한 거의 최초의 실증적인 조사로 보인다.
이러한 전관예우의 폐해는 결과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국민의 인식을 고착화하게 되고, 법조 나아가서 사법 시스템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더욱 깊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관에게 거액의 선임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재벌 등 거물급 인사와 그렇지 못한 일반 서민들 사이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계층적 위화감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결국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전관을 선임하려면 그나마 있는 살림조차 거덜이 날 수 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대기업의 오너나 실세 임원의 경우 거액의 선임료를 개인 돈으로 지불하지 않고 회사 공금으로 처리하는 것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명백히 별개의 범죄로서 그 기업의 오너나 임원은 ‘횡령죄’에 해당하고, 횡령에 의한 변호사 수임료는 법적인 의미로는 장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장물죄의 공범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 법조 사회는 거의 막장에 이르는 것이다.)
전관변호사비용, 부장판사 급 5000만 원, 총장 대법관은 1억 원
최근 법조계의 여론에 의하면, 전관 변호사 비용은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면 최소 5000만 원, 검찰총장·대법관은 최소 1억 원이라고 한다. ‘전화 변론’, ‘도장 변론’이라는 용어도 있다. 고위직 출신이 현직 후배에게 전화를 넣는다든지, 대법원 사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을 찍어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값만 3000만 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검사 출신 중엔 검사장급 이상이, 법관 중에서는 고법부장급 이상이 소위 '대어(大魚)'로 꼽힌다고 한다.
전관예우는 구속이나 실형선고 등 궁지에 몰린 피의자, 피고인들이 비싼 수임료를 내면서까지 능력 있는 고위직 전관을 찾고, 전관 변호사들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높은 수임료를 챙기는 구조이다. 이에 따라 대형 로펌들도 고위직 법관, 검사들의 인사철이 되면 많게는 수십억 원의 연봉을 주고서라도 유력한 전관들을 모셔간다고 한다.
2014년 7월 ‘배임수재 혐의’의 형사사건에서 먼저 변호사에게 ‘착수금 3천만원을 교부한 다음 검찰이 불기소하거나 약식명령 청구시 성공보수 2억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경우 2억원,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선고를 유예할 경우 1억원’ 등 대형 로펌 측 변호사와의 성공보수 조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성공보수 2억 원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액을 요구하자 로펌 측에서 피고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법원은 사건의 난이도로 보아 ‘부당하게 과다한 수임료가 아니다’라고 판결한 일이 있는데, 당시 재판부는 해당 로펌을 선임하기 전 다른 10대 로펌을 선임하려 했을 때도 비슷한 수준의 비용을 요구받은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해당 변호사의 경우 검찰 경력이 10년 미만이어서 비교적 싼 편”이라며 “고위직을 지낸 전관은 수임료가 이보다 훨씬 높다” 고 전했다고 한다.
이제 법관 나아가서 법조인 개인의 윤리의식, 도덕관념, 사명감에 기대하거나 법제도로써 법관윤리를 지켜나가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윤리 강화방안을 찾는다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법조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 법조사회 특유의 고질병(고질적인 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전관예우’ 나아가서 ‘법피아’라는 웃기는 용어가 상징하는 ‘전관비리’의 관행을 근원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수임료 상한제(특히 형사사건의 경우)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전관예우 문제는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관예우를 해 주는 현직 법관이나 검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고위 법조인 출신 변호사에 대한 ‘예우’는 바로 그 보다 젊은 현직 판사나 검사가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직 판·검사들에 대해서도 장차 자신들이 퇴직 후 개업해서 받게 될 전관예우에 대한 기대를 없애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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