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종교개혁 500주년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대한민국 문명과 개신교의 소명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l승인2017.07.07l수정2017.07.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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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webmaster@futurekorea.co.kr

본 원고는 지난 6월 15일 미래한국 창간 15주년 및 미래연구원 출범 기념 행사에서 발표한 기조 강연이다. [편집자주]

프로테스탄트는 1517년 유럽에서 중세 암흑시대를 종식시키는 빛을 밝히며 근대를 열었고, 이후 지난 500년간 세계사적 문명 변화를 주도한 삶의 태도, 사상 및 인식론적 기반을 형성시켜왔다.

세계인들이 모델로 삼는 국가들은 거의 프로테스탄트적 기반 위에 있다. 1인당 국민소득 상위 35개 국가이면서 인구 1000만이 넘는 국가는 미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대한민국, 스페인 등 모두 11개국이다. 그 중 9개국은 서구문명의 주도국이며, 나머지 2개국은 비서구 개발도상국 문명의 모델국이다.

11개국 중 기독교내에서 프로테스탄트보다는 가톨릭 기반이 훨씬 강한 나라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이며, 나머지 7개국 대부분은 개신교적 기반이 강하거나 신구교간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 만약 500만 명 인구 이상 국가로 한다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이 포함되어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은 더 강화될 것이다.

▲ 1901년 성탄절 내리교회 낙성기념

프로테스탄트와 500년 문명

프로테스탄트가 강한 나라는 거의 대부분 근현대 문명을 열어온 대표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00년 문명사는 프로테스탄트와의 친화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직 예외가 있다면 기독교인구가 2% 남짓한 일본이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프로테스탄트적 확산이 가장 강했다는 점에서 예외라고 보기 어렵다. 근대문명사와 종교와의 관계를 볼 때 프로테스탄트는 문명 발전과 깊은 상호관계를 갖거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고 한국은 예외가 아니라 명확하게 개신교와 한국문명의 변화는 함께 했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인구가 27.6%, 특히 개신교 인구만으로도 19.7%를 차지해 불교(15.5%)를 넘어 기독교 및 프로테스탄트가 가장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로 꼽힌다. 아시아 44개 국가 중 오직 한국만이 개신교국가로 분류되고, 아시아국가 중 오직 필리핀만이 가톨릭국가로 분류된다. 프로테스탄트 비율이 10%를 넘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국만이 19.7%라는 최대 인구비율, 혹은 27.6% 기독교 인구는 서유럽의 기독교 비율과 차이가 없는 수준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은 명확하게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에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프로테스탄트문명과 유럽문명을 분리할 수 없듯이 대한민국이 성공국가로의 진입된 것은 한국사회의 개신교의 확산과 개신교 정신의 내면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과 프로테스탄트 사회로의 변화

한국의 근대문명 체계는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한다. 한국 근대문명의 변화와 전환의 주요 계기는 개항 이후 펼쳐진 기독교문명 및 기독교 활동자들의 역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1882년 미국과의 수호조약 이후 문명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요 활동은 기독교 조직에 의한 것이었다. 개항 10년 뒤 1885년을 전후로 가장 고립된 폐쇄, 낙후 체제인 한국에서 펼쳐진 기독교의 활동은 커다란 전환의 시점이다.

연세대를 설립한 언더우드는 미국 기독교계에서도 가장 철저한 캘빈주의에 입각한 네덜란드계 개혁교회(뉴저지, New Brunswich신학교) 출신으로 1885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했다. 1600년대 일본으로 가던 도중, 조선에 억류되었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나 20여 년 뒤 또 다시 억류당했다가 13년 만에 탈출에 성공한 하멜 일행이 네덜란드 선조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승만을 키운 배재학당을 만든 아펜젤러는 독일계 감리교의 개혁교회 출신으로,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함께 한반도 선교의 중심이었다.

1885년 한국 최초 교회인 인천 내리교회, 1887년 새문안교회 및 정동교회 등이 연이어 설립되었고 지역적으로도 미국 북장로회와 감리교회는 평안 및 황해도, 남장로회는 전라도, 캐나다 장로회는 함경도, 호주 장로회는 경상도 등을 맡아 학교, 병원 및 교회를 함께 만들어나갔다.

근대교육으로는 여성 근대교육의 효시가 된 이화학당의 스크랜튼, 경신학교의 언더우드는 물론 기독교정신에 따라 오산, 숭실, 숭의, 정신, 배화학교 등의 설립이 계속되었다. 1910년 기준 장로교는 501개 학교, 감리교는 158개 학교, 그 외 교파를 포함하면 683개, 천주교 설립학교까지 포함하면 총 807개 학교가 기독교에 의해 운영되었다.

개신교의 첫 과제는 봉건적 사회의 종식이었다. 1880년대 이후 개신교는 한반도에서 수 백 년 계속 되어온 미신과 토속 신앙의 극복, 봉건적 계급제도, 남녀차별, 사농공상적 신분제도와 차별 폐지에 있었다. 그것은 근대적 기본권 개념과 천부인권적 자유에 입각한 개인의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만들었다.

근대 교육, 근대 의료체계는 모두 개인의 삶의 질과 개인의 생명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근대적 봉건적 삶의 존재 양식을 바꿔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프로테스탄트는 종교를 넘어 근대적 가치와 근대적 삶을 형성시키는 문명사적 변화를 만드는 기수였다.

봉건과의 투쟁을 계속하며 반식민투쟁과, 1945년 이후 반공산투쟁 등 모든 전체주의와의 투쟁에 선봉에 섰던 것도 프로테스탄트였다. 자주 독립국가의 지향과 근대 민주공화제 건립의 기반이 된 3.1운동이 정신이나 주도적 활동가 또한 프로테스탄트였다.

정동교회와 배재학당을 기반으로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평양의 조만식, 이승훈 등 민족지도자 등도 모두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에 입각했다. 신의주 의거나 황해도 신천투쟁 및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반공투쟁의 주역들도 거의 프로테스탄트였다.

옥구 교회, 충남 병천교회, 서울 신당교회 등 6·25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입고 재기의 중심에 섰던 것도 프로테스탄트였다. 반봉건투쟁과 반식민투쟁은 물론이고, 전체주의에 대항한 반공산투쟁의 선두에 섰고 그런 과정을 넘어 근대 문명적 대한민국의 만드는 초석이자 최전선에 프로테스탄트가 함께 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적 개인과 자유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은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도입과 정착 시기는 물론이고, 산업화시대에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늦어진 인식론적 근대화를 형성시키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중시, 장사와 상업에 대한 천시의 극복, 기업과 무역에 대한 자존감, 사농공상적 사회의 타파, 남에게 서비스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보상체계 등이 그것이다. 수 백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과거급제와 사시-행시 등 공직자 중심에서 기업중심으로의 사회변화도 마찬가지다.

신분을 획득하거나, 권력중심적 지배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성공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상공업사회로의 변신이다. 교회와 프로테스탄트정신이 없었다면 봉건적, 전통적 한국 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근현대사회로 바뀌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명-청시대를 이은 500년 가까이 한반도는 폐쇄적 중국의 영향과 문명적 고립을 겪으면 근대화가 심하게 늦어졌다. 서구 및 프로테스탄트와의 접촉은 불과 130여 년 전부터 가능했다. ‘늦어진 한반도의 근대 문명’과 프로테스탄트의 만남은 한반도 문명의 완벽한 변신의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1517년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와 정신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시작되어 영국으로, 다시 미국과 캐나다로 확산되었다가 19세기말 및 20세기 초중반에 걸친 약 100여 년 동안 아시아 극동지역인 한반도, 1945년이후에는 대한민국에 대거 집중되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성공도 있었다. 지난 130년 동안 대한민국만큼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확산과 정신이 토대가 된 나라는 찾을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적 개인은 봉건적 속박과 가톨릭의 속박에서 벗어난 ‘세속적(secular) 개인’이다. 사회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수도원 혹은 교회 중심의 개인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세속에서 삶을 사는 구체적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성불가침적 사고는 근대의 출발이자,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요체이다.

그 전까지는 개인이 아니라 봉건계급, 가문, 교회 및 신앙공동체에 속박되어 신분계급적 삶을 요구받는 것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적 삶속에서 직업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는 개인과 그 개인의 자유를 정립했다.

개인의 발견과 자유의 토대는 개인과 신과의 직접적 만남이란 인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교회, 교황 사제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은 직접 신과 만나는 개인이야말로 천부인권(天賦人權)의 당사자고, 누구도 그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유린할 수 없게 된다.

교회와 사제는 개인이 신과 만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프로테스탄트는 신분과 계급, 성적 불평등으로부터 개인(individual)을 구원해내고, 국가에 봉사하는 신민이 아닌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시민(citizen) 개념을 만들어낸다.

노비든 상놈이든 혹은 여성이든 개인 인권과 자유는 구속될 수 없고 신분, 계급, 성, 가문이란 집단 구속으로부터 개인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것이다. 전국에 설립되는 교회는 물론이고 이화학당, 서울여대, 동덕여대 등 프로테스탄트 교육기관을 설립해 한 개인이 주체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일하는 상을 형성시켰다.

신분과 봉건적 구속,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형성은 개인의 행복 추구와 개인의 재산 형성에 대한 존중과 연결된다. 권력적 공직이나 신앙적 사제의 길이 아니라 남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고, 상업을 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이다. 물론 그 개인이 일한 결과로 만든 재산(property)은 그 개인의 것이며 그것도 신성불가침이다.

프로테스탄트와 민주주의

집단과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이자, 자유과 재산에 기반한 개인의 형성이다. 서구나 동양, 한국에서 사농공상의 사회를 해체하고 물건을 만드는 공업과 물건을 공급하고 교환하고 상업이 중요하고 그에 종사하는 특히 공무원이나 농업과 달리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자가 많은 것으로도 간접 설명된다. 그것이 근대문명적 정신의 기반이고 한국 사회에도 개방화와 산업화시대를 관통했던 기본 정신이다.

각각의 개인 인격과 자유에 대한 보장으로부터 근대 시민(citizen)이 만들어진 것이다. 봉건과 토지에 긴박되지 않은 자유 시민이 근대 도시(city)를 만들고 상공업자인 부르주아를 만들었다. 자유 개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합의와 대가 관계에 따른 교환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의 성격이 ‘권력적 지배중심 사회’냐, ‘합의적 교환중심 사회’냐 하는 것이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다. 힘과 무력, 권력과 계급 신분 및 허구적 인식 체계를 해체시키는 힘은 오직 합의(계약)에 의한 교환만으로 개인 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에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핵심이 있다. 누구도 하나님의 창조물인 개인을 지배할 수 없고 오직 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만 개인은 구속된다.

필요로 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은 지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합의에 따른 교환으로만 얻도록 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로 권력과 정부 행위란 구성원들의 공통된 합의 사항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고, 위임 부분에 대한 대리행사일 때만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합의하고, 위임된 범위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상공업자 협의체인 길드(Gild)와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인의 신앙공동체인 교회(Church)의 운영 원리가 곧 자유로운 개인이 만든 협의체 혹은 공동체의 운영 원리의 토대가 되었다. 개신교 교회와 길드의 운영 원리가 정치사회의 운영 원리로 확장된 개념이 곧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공동체와 시장 운영은 관련된 규칙과 법, 교환 원칙과 규정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이 활동하고 협력하는 사회의 연장선에 있고, 그것이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된 것이 민주정부가 된 것이다. 직업중심적 상공업자들의 길드(협회) 운영과 지역중심적 신앙인들의 교회 운영은 서구 유럽민주주의의 중요한 원형(prototype)이자 민주주의 경험이 되었고 그것이 확산된 것이 바로 국가적 차원의 민주주의이다.

예를 들면 교회 운영 방식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 함께 신앙 생활을 함께 하고자 하는 다른 개인들과 각자의 재산을 조금씩 출연해 교회를 만들고, 교회와 목회를 이끌 지도자인 목사를 모셔오거나 선출하고, 장로 중심으로 대의원(의회) 조직을 만들어 교회 운영과 자금 운용 및 목사에 활동과 교체를 협의 진행시켜나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형이다.

그 결과로, 지금도 프로테스탄트적 기반을 가진 나라들만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같은 유럽국가들이라는 가톨릭적 기반의 나라들의 민주주의 수준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국 근대와 민주주의의 시작 

한국에서의 근대와 민주주의는 바로 1919년 3.1운동에서 만들어진 근대 민주공화제에 대한 합의에 기반하고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1919)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정부(1948)이다.

3.1운동은 2%밖에 되지 않던 기독교인들이 중심된 것이며 그 2%가 3.1선언문을 발표한 민족지도자의 16명인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일제에 의한 체포자의 25%를 차지했다. 개인 자유에 기반한 공동체의 형성과 공동체 운영 원리인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빨리 뿌리내리게 된 것에는 프로테스탄트와 교회적 기반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는 기독교적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분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지켜지고 발전된 것이며 평안도, 황해도 및 함경도의 기독교인들까지 월남해 끝까지 지켜낸 결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평안도, 황해도 등의 장대현교회, 산정현교회, 창동교회 등 남북기독교가 함께 만들고 지킨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1945년 이후 한반도에 전개된 공산주의와의 대결과 대한민국의 건국 그리고 1950-53년 6.25전쟁에서 가장 투철하게 전쟁에 임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개신교였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바, 그대로이다.

프로테스탄트는 500년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문명사의 주역이고 세계사의 모델국가를 만드는 데 희생하고 헌신한 한국 개신교 130년 역사를 보면 우리가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본질의 구현과 확산에 벗어나 있지는 않은지를 검토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문명을 개척해온 프로테스탄트는 어느덧 교회 내에 등급과 계급을 만들고 있다. 1517년 정신과 달리 가는 것이다. 대형교회가 있고 소형교회와 개척교회가 있다. 장로, 권사, 집사, 그 자체가 신분이 되고 있다. 교회 크기를 말하고, 신도 숫자로 등급을 정해지며 그것이 계급(신분)이 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수준과 교회 헌금 액수가 우열을 가르는 요소가 되어 있다. 직급을 만들고 직급에 집착하고 더 높은 직급이 천국에 더 가깝다는 식의 사고는 면제부만큼이나 1517년 정신에 정면으로 반한다. 성경으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만난다는 개신교 혁명과는 배치된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는 자유로운 개인, 거기에서 끝나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기능(function)일 뿐이지 직위나, 신분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신앙의 잣대가 되는 것은 다시 전근대로 회귀하는 대한민국이 맞이한 문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지난 기간 한국 프로테스탄트는 교회 확장 중심의 종교를 넘어 사회에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구현하자는 소명의 실천과 거리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1517년 이전 대형 성당을 만들자는 것과 지금 교회를 키우는 것에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교회 확장이 신앙 생활의 목표가 된 것처럼 비춰진다.

각종 성금 내라는 말이 교회에서 운위되는 말의 성찬이 되고 있다. 다시 1517년 정신으로 돌아가고, 한국에 개신교가 활동을 시작하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적 삶의 본질이어야 한다.

2017년 한국,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재기

프로테스탄트는 복음을 말하며 보이지 않게 성경에 대한 해석 중심으로 회귀되어왔다. 성경은 성경적 삶의 실천을 의미해야 함에도 성경에 대한 해석에 치우치며 해석학과 훈고학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논란해온 조선 500년과 차이가 없다. 성경 해석을 독점했던 교황과 사제들을 부정했던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다시 봐야 한다. 성경은 고도의 추상과 비유가 많을 수 밖에 없어 해석에 따라 다른 달리 이해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의 뜻을 구현하는 삶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지, 성경 해석이 신앙 생활이 될 수는 없다. 500년 전 ‘오직 성경’과 ‘오직 복음’도, 수도원과 신앙공동체를 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세상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라 판단된다.

교황과 사제 중심의 성경 해석과 그에 따른 사물 및 사회에 대한 재단(裁斷)에서 벗어나 ‘복음의 뜻을 구현했느냐’가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회에 구현시키는 소명 정신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대한민국을 최고 문명 국가로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개신교 500년이 만든 변화의 본질은 바로 세상에 뛰어들어 소명적 직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실현시켜나가는 데 있다.

사제와 교회 중심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펼쳐내는 구체적 삶과 실천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 이 땅을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구현된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일 것이다.

따라서 방향은 (a) 교회 중시에서 사회 공동체에서의 신앙 실천으로, (b) 직위, 계급 중심에서 하나님 뜻의 실천이라는 역할 중심으로, (c) 성경 해석 중심에서 성경적 삶의 구현이 곧 프로테스탄트 500주년을 맞는 2017년의 과제이자 4만 교회와 1000만 프로테스탄트의 소명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실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자 교회, 성경, 장로 등에 집착하기 보다는 소명(calling), 그 자체에 집중하며 사회와 나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 대한민국이 남다른 문명 주도의 길을 가다말고, 방향을 잃고 혼란으로 빠져버린 것도 가장 크게는 중심을 잡아야 할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교회 역할의 혼란에서 온 것이라 판단한다.

그런 면에서 프로테스탄트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내야 할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잃는 것은 곧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길 잃음이고, 그것은 또한 종교적 자유를 갖지 못한 전체주의 북한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와 대한민국 모델을 보고 따라왔던 모든 개발도상국 및 신생독립국 모두의 길 잃음이 될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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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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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7-07 15:24:43

    통일장이론으로 우주를 새롭게 해석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과학을 논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인문교양서다. 저자의 심오한 통찰력과 혁명적인 발상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새롭게 관찰하고 분석했다. 이 책은 수학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우주의 탄생과 운행부터 생명의 본질까지 명쾌하게 설명하므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모든 현상을 통일된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신고 | 삭제

    • 이산 2017-07-07 15:24:11

      과학은 현상을 연구하고 철학은 본질을 탐구한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다른 길로 가고 있지만 계속 전진하면 결국에는 서로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본질을 발견하면 현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현상을 이해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과 지식은 물론 철학과 가치관도 바뀐다. 이 책이 주장하는 법칙은 시간(과거와 미래), 장소(지구와 우주), 크기(거시와 미시), 형태(물질과 생명)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통일장법칙이다.신고 | 삭제

      • 이산 2017-07-07 15:23:35

        지금 세계는 종교 분쟁으로 수많은 테러가 발생해서 엄청난 문제가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가 합리적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과학이 종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 종교가 잘못 돼가고 있는 이유는 과학 자체에 오류가 많아서 종교의 모순들을 명쾌하게 밝혀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의 오류를 밝히고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한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통합해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명쾌하게 설명한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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