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20대 - 리빙스턴 &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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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03.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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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20대 - 리빙스턴 & 슈바이처데이비드 리빙스턴 아프리카의 영혼을 사랑한 선교사데이비드 리빙스턴은 200여 년전의 아프리카 개척선교사로 ‘아프리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당시 아프리카는 ‘백인의 무덤’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수의 백인이 풍토병과 악천후 등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리빙스턴은 27세부터 그 일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바친다. 일각에서는 리빙스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의 아프리카 선교가 그저 쓸모 없는 땅으로만 알고 있던 아프리카의 잠재성을 외부로 알려 서구 제국주의의 수탈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생각은 다르다. 리빙스턴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서 그의 전기작가가 자료수집을 위해 아프라카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현지의 한 아프리카인에게서 리빙스턴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는 그의 설교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압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진정으로 아프리카 영혼을 사랑했으며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다. 20대 청년의 헌신이 아프리카를 변화시킨 것이다.김기국 서울대 역사 2 알베르트 슈바이처 봉사 비전 끊임없이 탐구슈바이처는 목사이자 의사로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헌신적인 봉사로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그의 저서들에 나타난 ‘생명외경사상’은 20세기 중요한 철학 사조 중 하나다. 이러한 업적들을 생각할 때 한편으로 그 과정 즉 아프리카로 의료 선교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놓치기 쉽다. 그러나 <나의 생애와 사상>을 비롯한 그의 회고록들에는 그가 그렇게 결심하기까지의 치열한 고민들과 실제적으로 부딪힌 문제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특히 슈바이처가 의사가 되기 전에 무수히 많은 봉사직을 시도해봤다는 사실은 매우 새롭다. 학창 시절부터 인류에 직접적인 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으나 그 방향은 정확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유럽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수용하고 교육하는 일을 할 계획이었으며, 그 다음에는 부랑자나 석방된 죄수들을 위해 헌신해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그것이 자신의 비전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경험들이 훗날 아프리카에서 쓰임 받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서는 비전이 되지 않았었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결심한 ‘인류에 대한 봉사’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시도해보고 연구해본 후에야 자신에게 꼭 맞는 비전, 즉 ‘오지 의료봉사’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방학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생각에 기초한 행동은 자칫 시간낭비로 남기 쉽다. 트렌드만을 좇는 무조건적인 도전보다 자신의 결단에 맞는 비전을 탐구해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박숙현 이화여대 컴퓨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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