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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영화진흥위원회, 폐지해야 한다

한국영화 자립 기반 충분, 정부 지원 그만둘 때 조희문 영화평론가· 미래한국 편집장l승인2017.07.26l수정2017.07.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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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영화평론가· 미래한국 편집장  webmaster@futurekorea.co.kr

정권이 바뀌면서 영화진흥위원회의 향방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14일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의원들의 모임’은 ‘영화진흥위원회제역할찾기’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각종 문제를 야기한 ‘적폐기관’으로 지목하고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영화 진흥을 위해서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의 본래의 취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영화 산업과 문화 예술을 분리해야 하며, 독립예술영화진흥위원회를 독자적인 기구로 독립하여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 영화계의 문제를 청산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옴부즈맨 제도 등을 마련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거버넌스를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중인 7월 19일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독립영화 관계자, 미디어운동 단체 관련자들 뿐 아니라 문화부 관계자와 영화진흥위원회 간부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 중에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적용받고 있는 한 민간자율운영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새로운 행정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었지만, 맥락으로 미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율기관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로 읽혔다.

주로 운동권 영화인들이거나 이념적으로 좌파 성향들만의 주도로 이뤄진 이들 토론회는, 지난 90년대 말,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상황을 다시 보는 듯하다.

다만 그때는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데 비해 이번에는 영화진흥위원회보다 독립영화진흥위원회를 독자적인 기구로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졌을 뿐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999년 5월 29일자로 출발한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1973년부터 운영되던 영화진흥공사를 승계, 개편한 것으로, 기금관리형 준 정부기관이다.

영화진흥공사는 사장 책임 하에 행정을 집행하는 독임제 기구인데 비해 영화진흥위원회는 위원회의 의결로 집행을 결정하는 위원회(합의제) 구조로 운영되는 것이 다르다. 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법인(法人)인 위원회가 책임질 뿐, 결정에 참여한 위원들에게는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 1998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영화진흥법을 포함하여 음반·비디오·게임물에 관한 법, 공연법 등 3개 법안의 제·개정을 추진하면서 ▲등급외 영화 전용관 허용 ▲ 영화진흥위원회 설치 ▲등급외 등급의 신설 ▲영상물 등급위원회 설립 등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영화진흥 업무를 맡을 기구로 기존의 영화진흥공사 대신 영화진흥위원회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영화진흥 업무의 주체와 집행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며, 민간 중심의 영화진흥기구와 등급분류기구를 설치함으로써 ‘문화의 시대에 맞는 산업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기본적인 명분에서는 크게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 영화에 관한 어떤 종류의 규제든 가능한 한 폐지하거나 줄이고, 영화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민간화함으로써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었던 것은 표면적인 명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경우 그것이 법리적 타당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인지, 영화계 현실이나 사회적 여건에 맞는 것인지, 개정에 따른 실익은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검토에서 실익을 얻기보다는 이념적 명분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반대론이 컸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법 개정 의도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의 실효성보다는 각종 기구나 단체의 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본래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기존의 영화진흥공사가 맡고 있던 업무를 그대로 승계하며 기능과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명칭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시 영화진흥위원회를 노리는 세력들

당시 영화진흥법 개정안에 나타난 영화진흥위원회의 직무는 영화진흥기본계획 등의 수립·변경에 관한 의견 제시 사항, 영화진흥기금의 징수 및 관리·운용에 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영화진흥공사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영화진흥위원회의 업무 중 유통·배급에 관한 사항, 한국영화 의무 상영에 관한 사항 등이며 위원회의 결정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영화업자에게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진흥법이 의도하고 있는 기본 목적은 한국영화의 보호와 진흥·육성이다. 민간의 자율적 경쟁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전제로 한 ‘국가지원형’이며 영화진흥공사는 관련 업무를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영화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는 업무 집행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갖출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는 위원회 형태보다는 공사 형태가 더 효과적이다.

다만 영화진흥공사가 그동안 영화산업 환경이 변화하는 데 따라 진흥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는가 라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진흥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기구로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사업기구적인 역할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 전체 구조 속에서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영화정책을 펴나갈 것인지에 대한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정책의 운용방향 설정 및 영화와 비디오, 방송 등 뉴미디어 산업 간의 연계 확대 등과 같은 정책적 조정·연구 기능이 취약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상은 공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업무 범위의 한계, 임직원의 잦은 교체와 비전문인 기용 등으로 인한 외부적 요인도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진흥법 개정과 관계없이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 업무를 전담하는 중심기구로서의 기능과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획 및 조사연구 같은 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기구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나왔다. 영화진흥공사의 운영 모델로는 프랑스의 국립영화센터(CNC)를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영화 진흥과는 거리 먼 파행과 갈등

1946년에 설립된 이후 프랑스 영화진흥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entre National De La Cinematographie. 약칭 CNC)는 1)지원 기금의 조성과 운영 관리 등과 관련된 경제 업무 2)영화 관련 법령의 조사 연구 및 행정적 관리 3)영화진흥 및 영상유산 보전과 관련한 업무 등을 구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데,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구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 1천만 관객을 동원한 18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는 14편이며 외국영화는 4편 뿐이다.

▲ 1천만 관객을 동원한 18편의 영화 중 한국영화는 14편이며 외국영화는 4편 뿐이다.

논란 끝에 결국 영화진흥법은 개정되었고 영화진흥공사를 해산하고 새로운 영화정책 담당기구로서 영화진흥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법으로 확정되었다. 개정 과정에서 어떤 논란이 벌어졌든 새로운 과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기구와 기능을 갖추는 일이었다.

개정된 영화진흥법은 영화진흥위원의 숫자를 10명으로 확정했고 1999년 5월 29일자로 영화진흥위원회는 법적인 설립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는 출발부터 파행이었다. 하나는 진흥위원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영화계는 파란을 겪어야 했고 또 한가지는 서둘러 법을 개정하는 바람에 영화진흥위원회의 법인격을 부여하는 조항을 명시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점이다.

개정 영화진흥법은 영화진흥공사의 자산과 시설을 포괄적으로 승계한다는 부칙조항을 두긴 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법인격을 부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화진흥위원회는 대외적으로 출범하고서도 설립등기를 하지 못하는 파행적인 상태에 빠져 들었다. 모든 법적인 대표권은 법적으로 해산한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가지고 있었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각종 사업에서 법률적 주체가 될 수 없었다.

한동안 영화진흥위원회는 법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임의 기구나 유령 단체 같은 처지로 파행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했다. 결국 영화진흥법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법인격을 명시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개정해야 했고, 2000년 4월 28일 이후에 비로소 법인 설립등기를 할 수 있었다. 법 개정을 주도한 측이나 주무 부처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자행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설립 과정부터 파란을 겪었지만, 이후의 운영 과정에서도 논란의 연속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진위 운영의 성격과 방향이 달라졌고,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는 각종 단체들의 요구와 시비에 휘둘렸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한국영화의 자립 환경이 구축된 현재, 존립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962년 영화법을 제정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영화 정책은 한국영화의 경쟁력 확보와 자립기반을 갖추는 데로 모아졌다.

60-70년대처럼 한국영화의 자립환경이 취약하고, 경쟁력이 극도로 부실한 여건에서는 정부 주도의 지원 정책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한국영화가 시장 주도력을 갖추어 미국영화까지 압도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비춰본다면 정부 영역은 사실상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봐야 한다.

한국영화는 제작, 유통, 국제교류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기반을 다졌다. 지난 2007년 한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50%에 이른 이후 지난해까지 다소의 등락이 있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에는 58.8%까지 치솟았고, 지난해에는 53.7%를 지켰다. 정부 주도의 지원정책이 강화되었던 60-70년대에는 오히려 한국영화의 시장 경쟁력이나 자립 기반이 극도로 취약했던 데 비해, 1986년부터 시작된 영화시장 개방(제작자유화, 외국영화 수입자유화) 이후 한국영화의 수준이나 경쟁력이 확대되었다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정부 지원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경쟁력이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진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민간 영역에 대해 지원하거나 대행해 줄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이다.

겨우 저예산 독립영화의 제작 관련 지원이나 유통 지원을 하는 수준이지만 그나마도 공공영역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인가에 대해서는 비판이 적지 않다.

독립영화 관련자들은 독립영화의 제작과 유통을 다양성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독립영화를 정부 지원에 더욱 의존하겠다는 주장에 그칠 뿐이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는 김세훈 위원장의 중도 사퇴로 인해 부위원장이 위원장을 대신하는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임원을 새로이 선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당해 기관의 이사회에서 ‘지체없이’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임원추천절차를 진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6조 1항)

이 조항에 따르면, 영진위원장의 사표가 지난 6월 18일 수리되어 위원장(임원) 궐위가 되었기 때문에 영진위는 즉각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 선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도 아직 아무런 진행이 없다.

오히려 문화부 측에서 영진위원들에게, 선임 절차를 보류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는 보류 요청이라기보다는 보류 지시라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남아 있는 위원들의 임기가 종료되는 8월 이후 영진위원 전체를 현 정부의 성향에 맞는 인물들로 채우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비슷하다.

영화진흥위원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권의 취향에 맞는 인물들이 위원으로 선임된다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어느 면에서는 하지도 못하는 한국영화 진흥이라는 허울을 명분으로 삼아 좌파 세력들의 이념 운동 진지 역할만 할 것이란 점에서 전망은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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