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적폐인가”
“에너지가 적폐인가”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7.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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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추진되는 脫원전 정책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놓은 탈(脫)원전 공약이 현실화하면서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0여 년 동안 가동됐던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시켰고,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도 잠정 중단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1일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방문해 “주변 원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점진적인 원전 폐로 및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확보정책으로 에너지 안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앞서 1월 출간한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우선 원전의 추가 건설을 중지하고, 설계 수명이 완료된 원전부터 차례로 문을 닫아가야 한다”며 “그러면 국내 원전이 끝나는 시점이 2060년 정도 되는데, (그 때까지)40여 년 기간 안에 다른 대체에너지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문 후보가 이날 발표한 공약에는 고리원전 5·6호기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원전의 안전 기준 강화 등이 포함됐다. 지금의 탈원전 파동은 예고됐던 셈이다. 더불어 탈원전 공약에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전력공급을 3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촛불정국을 거쳐 보궐 대선을 치르는 바람에 국민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이 같은 원전 공약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후폭풍을 맞은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7월 14일 모처에서 기습 이사회를 열어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에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재적 이사 13명(상임이사 6명+비상임이사 7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임이사 1명을 제외한 12명이 공사 일시중단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적이사 과반수인 7명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은 의결된다.

▲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정책에 뿔난 원전 관련 노조들. 7월 18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원전 공기업 노조가 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 연합

한수원 이사회, 공사중단 기습 의결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비밀리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이사회 결정에 “국가의 중요 정책결정을 졸속으로 처리해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김정훈 의원도 “3개월 일시 중단에만도 1000억 원 이상이 소요되는 신고리 5·6호기 일시중단 결정을 이처럼 투명하지 못하게 처리하는 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편향적이고 일방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한수원 노동조합은 이튿날인 15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고리원전교차로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와 농성 등을 통해,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무효 투쟁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대정부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원 노조는 “지금까지 정부의 방침대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원전을 돌려왔다”며 “앞선 정부에서 원전이 필수라고 했던 한수원 이사진들이 정부가 바뀌었다고 졸속으로 건설 중단을 결정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는 “서둘러 이사회 결정 무효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며 “탈원전 논의는 충분한 전력과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수원 이사회의 ‘일시 중단’ 결정 후 처음 열린 이날 집회에는 전국 원전본부의 노조 대표자와 신고리 5·6호기 담당 본부인 새울원전 조합원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이사회의) 열띤 토론 끝에 오늘 이사회 개최가 국민의 우려를 조속히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결론 내리게 됐다”며 “이사들의 고뇌 어린 결정에 대해 양해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탈핵(脫核) 정책에 대해 노조를 비롯한 원전업계와 전문가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에 의존하는 전력수급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문 정부의 에너지 정책 골자에 대해선 대체로 찬성한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한 기술적, 환경적, 제도적 여건에 대한 검토 및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고 무리한 탈원전 정책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전후가 뒤바뀌었다는 것. 원전 폐쇄로 인한 전기요금 폭등 가능성도 있어, 일반 국민 여론 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적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 관련 교수들 중단 반대 성명

원자핵공학과, 기계공학과 등 에너지 관련 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에너지 교수 일동)’은 7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전국 60개 대학 교수 41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속전속결식’ 탈원전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 교수 일동은 회견에서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일동은 또한, “충분한 기간에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를 거쳐 장기 전력 정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2차 성명에는 지난달 1일 1차 성명에 참여한 230명보다 많은 60개 대학 417명의 교수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들은 대폭 늘어나는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일자리 감소와 수출 중단 등 원전 산업 퇴보, 액화천연가스(LNG)로 원전을 대체할 경우 늘어나는 무역적자 등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지난 7월 12일 바른정당 측이 주최한 ‘성급한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 토론회에 참석해 현 정부의 졸속 추진에 우려를 나타낸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충분한 검토와 조치를 거쳐 추진돼야 할 정책이 마치 적폐 청산하듯 정치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탈원전의 대표적 국가인) 독일을 모델로 이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독일 에너지 정책은 대재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 세계 싱크탱크들이 독일에 경고를 보내고 있고 독일 내부도 (탈원전을 지지한) 녹색당 지지도도 떨어지면서 흔들리고 있다”며 “이런 세계 상황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중심이 돼서 아주 초보적인 생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 교수는 그러면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정부가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여야가 합의해서 해야 하는데, 한 정부가 마치 간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포퓰리즘으로 해나가는 것은 안 된다”며 “절차적으로도 위헌 소지가 있다. 국회가 나서서 재검토하여 국회 중심의 사회적 합의도출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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