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에는 절차를 요구하고, 다른 일에는 절차를 뛰어넘고…
어느 일에는 절차를 요구하고, 다른 일에는 절차를 뛰어넘고…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7.08.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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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노트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지 두달 남짓하지만, 준비는 오래 전부터 한 듯 각 부서의 인물 임명이나 정책 발표에 거침이 없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 문제를 제기했다.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았으니 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결국 사드 배치의 완결은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이 같은 문제제기는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비쳤다. 대한민국 안보를 걱정하는 측에서는 결국 사드 배치가 무력화 될 것으로까지 우려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두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한미 양국 정부의 사전 조율 때문이었는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의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사드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은 사드 문제에 대해 여전히 태클을 걸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어떤 입장을 유지하려는 것인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유지하려는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는 예민하면서도 폭발력이 강한 뇌관이 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문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소 폐기에 관한 결정에서는 전광석화 같은 명령을 내렸다. 사용 기간이 끝난 핵발전소는 영구 폐기하고, 건설 중인 공사에 대해서는 중지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핵발전소가 아예 사라질 운명에 있다.

관련하여 핵발전소 건설 기술이나 유지 관리 등에 따른 역량도 사장될 판이다. 외국에 수출한 한국형 핵발전 기술 사업 등을 감안하면, 핵 발전 사업을 포기할 경우 수백억 조 원에 이르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두 가지 문제를 보면서, 각 사안에 대응하는 문 대통령의 이중적인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1일 오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탈원전 정책은 향후 5년간 전력수급과 전기요금에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우측사진) / 8월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사드 가동 및 추가배치 중단,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요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요구사항을 담을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좌측사진) / 연합

같은 사안 두고, 대응은 달라

사드 배치에 관련된 환경영향평가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적인 문제라며 반드시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거친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부득부득 고집한다. 그런데, 사드 문제만큼이나, 어느 면에서는 사드보다 국가 경제나 국민안전 문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충분한 논의도, 의미 있는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국무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몇몇의 졸속 결정으로  입장을 정리해버렸다.

국가적 중대사에 대하여 어느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고,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절차를 무시하며, 미리 정해놓은 방향으로 내모는 듯한 모순적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처음부터 계획된 전략적 결정이라고 보면 맥락이 잡히는 듯도 하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당선자 시기를 거치지 않은 채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는 때부터 곧장 대통령직 업무를 시작했다. 통상은 당선 확정에서부터 취임 때까지 두어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내각을 비롯한 중요한 포스트에 임명할 인물들을 선별하고, 정부 조직 등의 변화에 대해서도 대강의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도 정작 제대로 진용을 갖추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직무를 시작하고서도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임명 동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험난하고, 도중에 낙마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도덕성, 윤리성을 향한 야당들의 공세가 드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취임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정부 각 부서 인물들을 지명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닥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마치 군대의 3분 대기조 특공대처럼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이 각 부서별로 임명 절차에 들어갔다.

그 중에서는 드러난 행적이  일반적 상식이나 관행을 넘어 범죄 수준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버티거나 부인하며 넘겼고, 대통령은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듯 이런저런 논란을 무시하며 임명을 결정하는 일을 거듭했다. 두 명 정도가 청문 과정에서 자진 사퇴하는 일이 생겼지만, 논란의 내용이 사회적 상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황당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편이라 해도 너무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쪽을 살리려다 다른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전술적 사퇴를 유도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적당한 시기를 보아 다른 자리로 그 보상을 해주지 않을까라는 예상도 해본다.

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회의는 ‘문재인 정부 국정 5개년 계획’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기획자문회의는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한 보완책으로 지난 5월 16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립한 한시 조직이다.

50일간 운영되고, 최장 70일까지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당초에 7월 10일에 종료될 예정이었다가 대통령 방미 일정과 G20정상회의 개최 이후로 국민보고대회 일정이 연기되어 7월 15일에 종료되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국정 운영의 대강을 그려낸 것도 놀랍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재원이 필요한 것이거나 기존의 국정 방향과 크게 다른 내용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두달 만에 만든 5년 국정 계획?

문 대통령은 수사처럼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식의 표현을 내세웠다.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는 플래카드에는 ‘함께 갑시다’라는 표현을 넣기도 했다. 5년 국정 계획을 분과별 소수의 인원이 둘러앉듯 모여 논의하는 것이 국민의 여론이나 염려를 반영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선거공약집을 바탕으로, 주변의 인물들이 구상하던 이념 지향을 정책에 반영한 것이란 인상이 강하다.

시정에서는 흔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로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대통령의 ‘고잉 마이 웨이’는 그 정도를 훨씬 넘는다. 어느 면에서는 대통령 혼자의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참모로 포진하고 있는 옛 운동권 출신의 핵심 인물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또 다른 지휘부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든다. 대한민국의 국체가 변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이번 호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 안보, 사회 각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는 논란이나 진단을 담았다.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전문적 경험이 있는 경우라면 대부분 긍정보다는 문제나 우려를 더 많이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 지적들은 참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적폐세력’들의 푸념으로 매도되면서 새 정부의 갈 길을 막으려는 불순한 세력으로 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더운 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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