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도 해결도 눈 앞에 있다”
“문제도 해결도 눈 앞에 있다”
  •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 승인 2017.08.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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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연구원·바른사회시민회의 연속토론회

민주주의는 협치가 아니라 과반의 지배다. 이 기본적인 인식조차 한국의 보수정당에서는 흔들렸다. 국회선진화법은 과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보수 개혁은 원칙에서 벗어나 변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변칙에서 원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의원내각제 국가는 총선에서 제1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정을 통해 과반을 만들어 정부를 구성한다. 프랑스 같은 대통령제 국가는 결선투표를 통해 대통령에게 과반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1차 투표에서 1, 2위 득표를 한 후보만 2차 투표에 진출해 최종 당선자를 가린다.

의원내각제 국가나 대통령제 국가나 실행 방식은 다르지만 민주주의는 과반이라는 사고방식은 같다. 멀쩡히 과반을 갖고도 연정 협치 운운해 민주주의 개념에 혼란을 초래한 것이 새누리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혁입법에 실패하고 탄핵을 맞은 먼 원인은 국회선진화법에 있다.

민주주의는 과반의 지배를 인정하되 그 지배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하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책임정치다. 자유한국당이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여도 희생적으로 국회법 정상화에 앞장서야 한다. 여당이 소수정당일 때 하는 게 그래도 가장 안전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친박의 문제는 분리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음 총선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지금의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과 권력적 기반으로 인해 주어진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 헌법 하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으로 국회에서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이후 불법 정치자금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국회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상도동계 동교동계처럼 정치자금을 기반으로 한 계파는 아니지만 친노, 친이, 친박이 생겼다. 친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박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지역주의에 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이 경북 대구 지역이나 수도권 부유층 지역에 공천됐을 때 그것은 선거 없이 당선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반(反)민주주의적이라고 느꼈다. 박 전 대통령이 강력한 TK 지역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강한 반발이 나왔다.

친박의 문제는 결국 국민의당 호남 출신 의원들의 문제와 같다. 낡은 구정치적 행태가 새누리당에서는 당내에서 작동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밖으로 나와 ‘안철수’와 교묘한 결합을 했을 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비밀스런 관계에서 시작됐다.

▲ 지난 20대 총선 대구유세에서 자유한국당이 시민들에게 표를 호소하고 있다.

친박이 알 수도 없었고 개입할 수도 없었다. 친박에서 탄핵사태를 책임지라고 하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친박은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민주주의의 더 높은 차원에서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바른 정당의 문제는 합리성의 자기증명 부재에 있다

바른정당 의원들을 움직이는 심리적 동력은 콤플렉스다. 군사 정권 시절 집권당 의원, 사학재벌, 기업가로 잘나가던 아버지에 대한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버지 덕분에 정치의 길에 성공적으로 들어섰으나 이제는 아버지 편이 받는 비난은 받기 싫다.

어린 시절 누릴 건 다 누리고, 적당히 유학도 갔다 와서 정치적 공명은 얻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보수는 치열한 삶과의 대결이나 치열한 지적 탐구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 남경필 김세연 등이 서구에서 연정이나 협치가 왜 하는지도 모른 채 국회선진화법에 앞장선 것이다.

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 시절의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파동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유승민 의원은 여전히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시도가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것은 위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제의 본질에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행정입법권이 우리보다 훨씬 크다는 걸 모르니까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민주당이 공무원연금개혁을 수용하는 대가로 끼워 넣은 계략에 속아 넘어간 뒤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국정농단과 탄핵 백서를 만들라

보수는 합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른바 합리적 보수는 결정적인 자기 증명의 사안에서 합리적이지 않았다. 국회 탄핵소추에서 수사도 되지 않은 뇌물죄가 소추사안에 들어가는데도 찬성했다. 겉멋만 들고 눈치만 보는 보수, 순풍에는 그런대로 흘러가지만 역풍에 맞서 뚫고나갈 의지도 능력도 없는 보수가 보수의 중심이 돼서는 안 된다.

지금 보수의 위기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에서 시작됐다. 위기의 극복도 이 문제를 원칙에 맞게 인식하고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최순실의 각종 민원에 해결사 역할을 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분노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어디까지가 정확히 국정농단인지, 탄핵에 이른 과정에서 잘못되거나 무리한 절차는 없었는지 복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필한 자해성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 최소한의 게이트키핑도 거치지 않은 의도적인 왜곡 보도가 쏟아졌다. 어떤 보도들이 그러했는지, 그런 보도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거 신문과 지상파 방송 뉴스만 있던 언론 상황에 비해 지금의 언론 상황은 복잡해졌다.

포털에서 수시로 뉴스가 올랐다가 내려지고 종합편성채널에서는 하루 종일 시사보도가 쏟아진다. 지금 시점에서 당시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복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한 두 명의 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연구소 같은 기관이 동원돼야 할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여론정치이고 올바른 여론정치를 위해서는 올바른 보도가 유통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는 탄핵소추를 결의하면서 수사도 안 된 뇌물죄를 집어넣었다. 국회는 사후적으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검을 가동시켰다. 헌법재판소는 뇌물죄 부분을 기각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헌재는 탄핵심판 중 바꿀 수 없도록 돼 있는 뇌물죄라는 법률위반을 헌법위반으로 바꾸도록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탄핵사유가 직업선택의 자유 위반이라는 코미디 같은 사실은 뇌물죄를 기각하든가 인용하든가 양자선택을 피하려는 꼼수에서 나온 논리다.
특검은 뇌물죄의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장담했지만 박 대통령 공판이 절반 정도 진행된 지금까지도 뇌물죄의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뇌물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권이고 박영수 특검이고 윤석렬 검찰이다. 이것이 지금 불명확해지니까 정권이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것이 감사원의 면세점 감사 발표, 정유라의 보쌈 증언에 이어 청와대에서 발견됐다는 민정수석실 문서 공개다.

보수는 뇌물죄 유무죄에 대해 어떠한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엄밀한 증명절차를 통해서 유무죄가 인정될 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죄 확신의 언론 보도들을 비판하고 특검과 검찰과 정권의 무리수를 어떻게든 막고 판사들이 정권과 여론으로부터 독립된 채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각종 강요 행위는 그것만으로 탄핵사유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뇌물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 다만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재판 과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판결이 나오면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보수다운 자세다.

英보수당수 마이클 하워드의 ‘16개 보수주의 강령’

 

나는 믿는다.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2.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3.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5. 관료·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독립적인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6.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7. 책임 없는 자유는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8.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9.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10. 모든 어린이는 노후에 자신들의 부모가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11.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12. 영국은 언제나 영국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3. 행운과 타고난 재능·노력, 그리고 부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섬나라인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종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믿지 않는다.

14.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5.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6. 누군가 건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병들게 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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