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적 민족주의가 한국을 해체시킬 수도”
“종족적 민족주의가 한국을 해체시킬 수도”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8.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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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방해하는 반일 부족주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며 건국절 논란을 촉발했다. 이에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1948년 건국은 자명한 일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일축하면서 건국일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의심할 바 없는 건국일을 두고 왜 이 같은 논란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걸까? 그 배경엔 일제에 의한 식민 경험과 밑바닥에 깔린 민족주의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래한국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과거에 갇힌 한일관계와 논쟁의 핵심인 근대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불리며 거센 공격을 받았던 이 교수의 근대성 논리에 좌파 역사학계는 별 다른 반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현재를 설명할 수 없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갇혀서는 한 세대 안에 한국이 해체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뷰는 8월 11일 그의 연구실(서울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진행됐다.

 

- 교수님은 한일관계 근대사에 대한 재조명을 계속하면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역사학계가 범하고 있는 오류는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는지요?

우리 역사학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종족적 민족주의에 깊숙이 포섭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종족적 특질을 지닌다고 지적되고 있어요. 20세기 전반 민족주의가 발견되고 형성될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이 한국 민족주의에 그런 특질을 부여한 것이지요. 한국 민족주의의 종족적 특질은 점점 강화되고 있는 추세로 역사학계는 점점 깊이 거기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반일 부족주의에 의한 역사인식·현실인식·국제감각은 위험

-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시민적 민족주의, 종족적 민족주의, 낭만적 민족주의로 유형이 분류됩니다. 시민의 자유를 고양하고, 사회의 자유주의적 통합을 촉진하는 것이 시민적 민족주의라면, 종족적 민족주의는 가상의 혈연의식, 곧 우리 모두는 한 조상의 자손으로서 공동의 운명이라는 연대감을 특질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종족적 특질은 단적으로 말해 반일 적대감정과 원수의식에 기초해 있어요. 중국에 대해서는 그러한 의식이 없거나 아주 약하지요. 다분히 기울어진 국제 감각입니다. 그 점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전근대적인 부족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부족주의적 특질은 근대 내지는 근대적 개인의 결여와 밀접히 관계하고 있지요.

- 반일 적대감정과 원수의식은 유난하고,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의 반일 부족주의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어갈 것이라고 낙관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반일 부족주의는 점점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새로운 부족주의적 상징을 끊임없이 개발하면서 일본과의 긴장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지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아예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분노와 매도, 비판이 거의 전부이지요. 위안부 문제에서 좋은 예를 찾을 수 있는데요,

제가 아는 한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한 국내의 연구자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은 실정입니다. 한 두 명의 연구자가 있지만, 일본 측 연구를 뒤집어 해석하거나 문예비평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한 한국 정치와 일반 국민의 의식은 점점 강경 일변도로 흐르고 있어요. 일본 정부가 두어 차례 사과했지만, 들은 척도 않고 있지요. 저는 한국인의 점점 강해지는 반일 부족주의, 그것이 토대하는 역사의식, 현실인식, 국제감각을 이대로 방치하면 이 나라는 다시 망국의 위기에 빠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교수님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이란 무엇이고, 그 같은 이론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최근은 아니고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부터니까 근 30년이 되었군요.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비판 작업) 그 결과 오늘날 맹아론을 주장하고 있는 연구자나 연구자 그룹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두가 맹아론은 이미 한물갔다고 이야기하지요. 18세기 후반 이래 조선왕조의 경제가 19세기 말까지 점진적으로 후퇴하는 가운데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기성의 경제, 사회체제가 크게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했음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학설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만이 아닙니다. 국제학계의 동향을 보면 중국사 역시 18세기 후반 이래 그러한 추세에 빠져들었습니다.

개항 이후 이 땅을 찾은 서양 사람들이 남긴 방대한 문헌을 읽으면 당시 조선왕조의 정치, 사회, 경제가 해체 상태임은 더 없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최근에 최정운 교수는 <한국인의 탄생>이란 책에서 구한말 당시의 그런 상태를 가리켜 ‘홉스적 자연상태’라고 했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곧 사회계약으로서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야만 상태를 가리킵니다. 1910년 조선왕조가 패망할 당시의 한국 사회를 그렇게 불러서 크게 잘못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구한말 당시의 상태가 국가 성립 이전의 야만적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데, 자본주의 맹아론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맹아론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앞서 비판한 한국의 민족주의입니다. 좁은 시각에서 우리 역사는 느린 속도나마 발전하고 있다는 대전제 위에, 그것을 충족한다고 보이는 사건이나 현상을 아무런 매개 없이 수집하여 시간 순에 따라 배열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선 그로부터 외부로부터 이식된 근대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부었던 것이지요. 이식된 근대는 맹아를 파괴하였다, 우리 역사는 왜곡되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근대를 부정하는 민족민중의 혁명이 필요하다 등등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역사학계가 정립한 한국 근현대사의 줄거리이지요. - 조선 근대화의 기점에 대한 교수님의 해석을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부르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요? 그리고 일본의 조선 식민지정책이 다른 국가들과 차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한일합방을 실패한 M&A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것으로 압니다)

▲ 일제 시기였던 1930년대에 창경궁 안에 지어진 동물원의 모습. 당시 서울시민들의 최고 나들이 장소였던 창경궁 동물원은 일본인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가 지었다고 한다. / 출처 : yeoksa.blog.fc2.com

일정기 35년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종족적 민족주의의 강세로 인해 그 동안 좀처럼 객관적으로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일제의 조선 지배는 한마디로 말해 영구병합을 위한 점진적 동화정책이었습니다. 그런 장기적 목적을 위해 1910~20년대에 걸쳐 일본과 동일한 사회, 경제 제도가 이식되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세계사적 범주의 근대 문명이 이식된 것입니다. 세계사적 범주로서 근대의 본질은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의 창출에 있습니다. 경제적 수준에서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경제활동이 영위되는 시장경제제도가 성립함을 말합니다.

그 일환으로 시장경제의 제반 제도와 기구가 차례차례로 이식되어왔던 겁니다. 토지, 삼림, 어업, 광업, 지적 재산에 걸쳐 근대적인 소유제도가 확립하는 한편, 관료제적 행정, 사법, 금융, 회사, 운송 등이 근대적인 형태로 정비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은 후진 근대의 일본 본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더욱 그러했다는 것일 뿐이지요. 문화적인 영역에서의 변화는 더욱 느리거나 거의 없는 편이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설명력 결여가 한국 지성계의 최대 문제

- 근대 문명의 이식 속도가 각 분야에서 비슷했던가요?

근대의 이식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수준별로 그 속도나 양태가 달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경제와 사회의 수준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35년간에 벌어졌습니다. 인구가 1.7배나 급속히 증가했고, 1인당 실질소득은 꾸준히 증가하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개시되었던 겁니다. 미약하나마 조선인으로서 자본가 계급이나 중산계층도 출현하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그렇게 일정기에 걸쳐 이식된 근대적 제도와 기구에 기초해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료제적 행정, 토지를 비롯한 제반 소유권 법제, 사법, 금융 등 제반 제도와 기구의 역사적 기원은 일정기에 있습니다. 그 점은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진실이에요. 해방 후 대한민국이 독자적 형태로 새로운 제도나 기구를 창출한 것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일정기 35년을 통해 한국인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근대인으로 변해 있었던 겁니다.

근대에 쉽게 적응하고 그것을 자기류로 실천하였던 것이지요. 대한민국의 건국 주체들이 제헌 헌법에서 기존의 모든 법률과 기구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은 그 모든 것을 폐기했습니다. 이른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한 것이지요. 다 알다시피 그 결과는 조선왕조 시대의 국가적 농노제가 재건된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태도는 지나치게 억지스럽다고 느껴집니다.

나와 동료 경제사학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그간 역사학계의 많은 사람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식민지지배를 미화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일제의 조선지배는 오로지 수탈과 말살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요.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맹아론과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총독부가 전국 토지의 40%를 수탈했다고 했지만, ‘내가 토지를 빼앗겼다’고 소리치거나 저항한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일제가 우리의 토지와 식량을 수탈해 갔다는 식의, 1960~2000년대까지 유행했던 수탈론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징용이나 위안부로 수탈의 중심이 옮겨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동안 제가 욕은 많이 먹었어도 학술적으로는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식민지근대화론이라며 이름을 붙이고 그걸 비판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다른 이론이 있습니까?

또 다른 일군의 학자들은 ‘식민지근대화’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식민지적 근대’를 제시했습니다. 저는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근대화’를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근대’가 생겨납니까. 그들은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근대는 왜곡된 근대, 어두운 또는 회색의 근대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근대에 밝은 색이 있거나 어둔 색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이식된 근대와 우리의 전통이 상호 어떻게 관계하는가, 그 충돌 과정과 접합의 결과가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그 점에서 기존의 식민지근대화론은, 그 역시 남들이 우리를 비판하기 위해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만, 불완전한 이론입니다. 거기까지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겁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들에 부여된 공통의 과제지요. 저의 문제의식은 근대가 이식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이 무기력하게 해체되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통은 근대와의 작용에서 그 모습을 바꾸면서 장기 존속해 갑니다. 이식 근대 역시 전통으로부터의 작용을 받는 가운데 한국 나름의 형태로 변용됩니다. 저는 이것을 가리켜 최근에 복선의 전환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 ‘식민지적 근대론’자들의 분석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느껴집니다. 근대 자체를 매도하면서 우리 전통의 힘을 지나치게 간과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식민지적 근대’의 주장자들은 이 같은 한국 나름의 근대화 과정, 그 복선의 전개 과정을 관찰하지는 않고, 근대 자체를 어둡다느니 왜곡되었느니 비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근대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막연한 반감만으로 근대를 비판했음을 의미합니다. 실은 그들이 애정을 보인 탈근대화론이란 것도 이미 국제적으로 한물 간 포스트 맑시즘의 한 분파로서 바람에 불과했지요. ‘식민지수탈론’이나 ‘식민지적근대’의 지적 풍토에서 결국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상실하게 되었던 겁니다.

현실은 도덕적인 비판의 대상일 뿐, 그것을 성립시켜온 역사적 인과나 그 합리성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은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결여한 것, 그 점은 오늘날 한국의 지성계가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문제의 밑바닥에는 앞서 비판한 종족적 민족주의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고요.

우리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는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

-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현재를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 제언도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정치나 사회는 현재 심각한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커다란 정신적 공백을 종족적 민족주의가 메우면서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켜 사회의 모든 창조적 에너지를 휘말고 있는 실정입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지요.

- 역사적 경로를 통해 고찰해 본다면 향후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 예상도 가능한가요? 만일 그러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은 대한민국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주체적 선택에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으로부터의 변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 두 나라가 마음에서 화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두 나라의 인간과 문명은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공존할 뿐이고요. 결국 이 두 나라 사이에 놓인 한반도가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축이 될 것으로 봅니다.

- 과거 역사를 봐도 말씀하시는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100년 전의 동아시아 역사가 그랬습니다. 그 출발은 1894년 청일전쟁이었고, 1904년의 러일전쟁이었습니다. 이 두 전쟁은 한반도가 그 목적물이었습니다. 만약 당시의 조선왕조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있는 최소한의 능력과 의지만 있었더라면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겁니다. 일본이 제국주의화하는 길은 조기에 차단되었을 것이고, 그에 맞선 중국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빠지는 위험도 마찬가지로 봉쇄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동아시아는 한국을 중심으로 하여 평화와 번영의 또 다른 길을 갔을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모든 비극의 출발이 한국이었다는 역사의식은 오늘날의 한국인에조차 분명하지 않아요. 바로 여기에 앞으로 되풀이될지 모를 비극의 씨앗이 배태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맞은 당시의 한국인들은 그들이 그 전쟁의 목적물이라는 위기의식을 전혀 갖지 않았습니다.

- 오늘날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미국과 충돌할 위험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건 중국과 북한의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을 그들의 세력권으로 롤백시키기 위해 장기간 함께 추구한 정책의 결과이지요.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정치나 국민은 전혀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종족적 민족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북한을 한 가족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공모자인 중국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 않습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기념일에 북경을 찾은 것은 그 사람의 머리가 텅 빈 상태임을 알리는 더 없이 참담한 몰골이었습니다.

북한의 핵이 결국 서울을 겨냥해 대한민국을 인질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은 한국 정치에서는 발상으로도 없는 것 같아요. 미국과 일본이 한국인의 환상과 무기력에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리게 되면, 자국의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협상에 임한다면, 더욱 비극적이게도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민이 그것을 환영하는 선택이라도 한다면, 이 나라는 한 세대 안에 서서히 해체되고 말겁니다. 종족적 민족주의가 지금처럼 강세라면 저는 그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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