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5·18의 자유
표현의 자유, 5·18의 자유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7.08.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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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노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넘겼다. 지지하는 쪽에서는 ‘잘하고 있다’며 환호를 보내고 있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쪽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바라보고 있다. 외교, 안보, 경제, 교육, 복지,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급기야 미국 고위 당국자 입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 정부의 하는 일이 얼마나 비우호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런 발언을 하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 예민하게 만든다.

지난 8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구속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조영대 등이 합동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전재국 자작나무숲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전두환회고록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원고들이 제기한 사항을 책에서 삭제하지 않은 상태로는 출판, 발행, 인쇄, 복제, 판매, 배포 및 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와 함께 이를 위반하면 채권자들에게 위반행위 1회당 각 5백만원 씩을 지급하라는 사항도 덧붙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3권으로 구성된 회고록을 지난 4월에 발간했다. ‘혼돈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1권은 1979년부터 1980년까지 기간을 다루고 있으며, 2권 ‘청와대 시절’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3권 ‘황야에 서다’는 1988년부터 그 이후를 회고하고 있다. 5·18 광주사태와 관련 부분은 1권의 4장 ‘5·18-신화의 자리를 차지한 역사’에 실려 있다. 해당 분량은 164쪽 가량이다.

회고록에 이의를 제기한 원고들의 지적은 모두 4장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고 적시한 대목은 33곳. 사실상 관련 부분 전체를 이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나 다름없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가 22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18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옛 5·18묘역 들머리의 전두환 기념비는 1982년에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이 세운 것을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었다. / 연합

재판부가 요약한 ‘채권자들 주장의 요지’를 보면 “이 사건 서적 중 별지 2 ‘신청목록’ 부분(이하 이 사건 쟁점부분이라 한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특수군이 주도적으로 개입하였고, 채무자 전두환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관여를 하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에 의한 사격이나 군인들을 통한 폭력적인 시위진압행위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등의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허위의 사실 혹은 허위의 사실에 기반을 둔 채무자 전두환의 의견표현으로서 채무자들은 이 사건 쟁점 부분이 기재된 이 사건 서적으로 출판함으로써 5·18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왜곡하고 채권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신청취지 기재와 같은 결정을 구한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원고들의 주장이 여러 부분에 걸쳐 있지만 핵심은 북한특수군이 개입하였다는 부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보안사령관의 신분으로 5·18에 대하여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부분, 헬기에서 민간인을 향해 사격한 사실이 없다고 한 부분, 군인들을 통한 폭력적인 시위진압행위가 없었다고 하는 부분을 주요 쟁점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에서는 6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이 재판의 정당성이 성립하지 않으며 원고들의 명예훼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 측 주장을 완전히 배제하고 원고 측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의 이유로 “물론 채무자들의 주장과 같이 5·18 민주화 운동이 공공성과 사회성을 갖춘 공적인 영역에 포함되는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18민중화 운동의 가치 및 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자유로이 참여하고 상호 간에 공개적인 토론을 거치는 과정을 통하여 최대한 자율적으로 결정됨이 타당하고, 이를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표현행위는 가급적 넓게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적인 사안이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는 없고, 표현 내용이 진실이 아니고 그로 인하여 타인에 대한 인격권이 침해되는 정도까지 이른 경우에는 표현행위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채무자 전두환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 지휘권과 국가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인물이고, 그 후 대통령직까지 수행했던 사람으로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채무자 전두환의 발언이나 의견표명 등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한 이상 이를 일반적인 사인의 표현행위와 동등한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사건 쟁점부분이 기재된 전후 문맥을 살펴봐도 채권자들이 자의적으로 이 사건 서적에서 이 사건 쟁점만을 특정하여 채무자 전두환의 진의를 왜곡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이 사건 서적 중 채권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는 이 사건 특정부분만을 특정함으로써 이 사건 서적의 출판 등을 통한 채무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이 사건 쟁점부분 중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이나 그에 기초한 의견 표현 등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장이나 문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이 사건 쟁점부분의 구성, 표현 방식 및 주된 내용과 이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과 효과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부분들은 이 사건 쟁점부분 내에서의 다른 부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채무자 전두환의 서술을 상호 보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쟁점부분 중 특정 문장이나 문구만을 분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결정문을 읽다보면, 재판에 참여한 판사들이 5·18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원고들의 입장을 변론하는 대변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사건의 중요한 책임자이자 당사자이므로(확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어떠한 자신의 생각이라도 드러낼 수 없으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고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해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결정문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든 추론에 의한 것이든 특정한 한쪽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5·18 관련한 주장은 피해자 측에서 나온 것들일 뿐 그것과 균형을 이룰 만한 반론이나 평가를 보기가 어렵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회고록을 통한 자신의 시대를 정리한 것은 대단한 결심과 용기로 보인다. 하지만 회고록 발간 이후에도 이렇다 할 사회적 논란이나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5·18에 대한 언급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도 5·18 관련 단체와 특정 개인은 문제가 많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결국 자서전과 관련해서는 출판, 인쇄, 배포 등의 행위를 일절 하여서는 안 된다고 족쇄를 무겁게 채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차원에서 언론장악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표현의 자유’가 법의 이름으로 막히는데, 언론이 건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만 예외로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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