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또다른 왜곡 <택시운전사>
5·18의 또다른 왜곡 <택시운전사>
  • 이용남 영화평론가·청주대 영화학과 객원교수
  • 승인 2017.08.22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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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 영화, 과연 좋은 영화인가
▲ 광주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지난 8월 2일에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천만 관객=좋은 영화’란 항등식이 언제나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을 키우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 천만 관객 모두가 영화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3일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뒤 “아직까지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밝혔다. 이것이 팩트다. 5·18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객관적 성찰 없이 과장되고 왜곡된 영화를 역사의 진실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저급한 메시지 정치이며, 영화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갈등 해소는 대통령의 기본 책무다. 영화관에서 눈물만 흘리는 정치적 쇼맨십이 아니라 5·18이 안고 있는 산적한 갈등을 공론화해 객관적 관점에서 역사의 눈물을 닦아내야 하는 것이다.

5·18 영화들이 재현하는 라쇼몽 효과

5·18 소재 영화들은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에 빠져 있다. 라쇼몽 효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에서 유래된 것으로 같은 사실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영화다.

김환표의 저서 <트렌드지식사전6>에서는 라쇼몽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로도 쓰는데, 그래서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재구성하는 기억이라고도 한다.”
대선 기간에 등장하는 선거용 기획영화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 <택시운전사>(2017) 같은 영화들의 공통점은 실화를 극화하거나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문제가 있다.

역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말을 들어 봐야 한다. 한쪽만의 말은 진실의 반쪽이며, 편견의 시작이다. 우리는 양쪽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들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5·18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성찰은 곧바로 감정 싸움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의 저자 마거릿 맥밀런 교수의 말을 인용해보자.

“나는 민족주의 집단들이 불만이나 복수심을 불러 일으키려고 역사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과거의 한쪽밖에 보여주지 않는 왜곡된 역사죠.”

라쇼몽 효과에 빠져 있는 5·18 소재 영화들은 미래 세대에게 왜곡된 역사를 유산으로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 기자의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항쟁을 기록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 / 연합

왜 ‘프로파간다의 악령’이 필요한가?

최근 대한민국은 왜곡된 역사영화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에서 쏟아내고 있는 편파적인 역사해석이 대중의 사고와 행동에 여과 없이 침투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프로파간다의 악령이 부활한 것이다.
5·18 소재의 영화는 다분히 프로파간다 적이다. 목적은 명확하다. 첫 번째는 운동권 정권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정권의 안정적 유지와 재창출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외피를 둘러 쓴 프로파간다의 악령이 5·18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판타지를 믿으려면 현실 세계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대중들은 이런 프로파간다를 냉정히 해석하고 분석해야 한다. 역사의 현실과 상식을 배반하는 왜곡의 실체를 구체화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합의된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페리아고게(periagoge)를 시도해야 한다

더 이상 5·18 소재 영화들이 프로파간다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영화가 역사를 어떻게 악용하는지 정확히 성찰해야 한다. 역사는 분노와 증오를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미래의 거울로 삼으려면 역사를 올바르게 알려는 실천을 해야 한다. 아직도 동굴 속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가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들. 이제 동굴의 그림자만 보지 말고 뒤를 돌아보는 ‘페리아고게’를 시도해야 한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때 시작된다.

마거릿 맥밀런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이것이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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