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내가 겪은 북한, 통일은 북한 주민 마음 얻는 데서 부터”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l승인2017.08.23l수정2017.08.23 11:4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  webmaster@futurekorea.co.kr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지난 6월 석방 후 곧 사망하면서 북한에 억류돼 있는 외국인 포함 억류자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가 약 31개월(2년 7개월)만에 자유의 몸이 되면서 억류자들에 대한 북한의 인권 탄압 현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임 목사는 2015년 1월 북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북한 나선시를 방문하고 이튿날 평양에 들어갔다가 적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체포돼 그해 ‘국가 전복’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억류 생활을 해왔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2012년 11월부터 2014년 11월 9일까지 735일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 자유의 몸이 된 케네스 배 선교사를 미래한국TV가 만났다. 그 역시 오토 웜비어, 임 목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었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현재 한국에 체류하면서 북한인권단체 서빙라이프(Serving Life)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손문경 세이브엔케이 사무처장이 진행했다.

▲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오토 웜비어, 임현수 목사 억류 사건 이후로, 몇 년 전 같은 경험을 하신 케네스 배 선생님으로부터 북한 억류기와 인권 상황 등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독자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5년 하와이 코나 열방 대학에서 제자훈련학교 DTS를 마치고 2006년부터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2010년에 북한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11, 2012년에 관광객들을 북한에 데리고 들어가 그 곳 삶을 경험토록 하는 과정에서 억류돼 북한에서 735일 동안 갇혀 있다 풀려나 집에 돌아온 지 2년 반이 되었고요. 지금은 서빙라이프라는 북한 NGO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북한은 몇 번을 방문하셨나요.

총 18번을 방문했습니다. 저희가 여행사를 설립해 23번에 걸쳐 300여 명의 관광객을 데리고 갔는데요, 그중 18번을 제가 인수해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 보통 북한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 여행객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저희는 북한 방문에 있어 선교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전 세계 기독교인 중에서 북한에 가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방북했습니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북미 등 세계 17개 국가, 다양한 국가 출신의 여행객들이 북한에 들어갔지요. 열 명, 스무 명 단위로 들어갔는데요, 짧게는 3~4일 길게는 10일까지 그곳에서 체류하며 북한의 문화를 체험하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을 한 것이죠.

- 북한 여행객들은 주로 외국 국적의 한국인이나 미국인 위주라고 생각했는데, 17개국의 다양한 사람들이란 게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관심 내지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인가요.

북한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데리고 간 분들은 북한이란 땅에 자유가 없고, 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없기 때문에 그분들(북한 주민)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예배를 드릴 목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는 그것이 문제가 되어 제가 억류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지요.

- 억류됐을 당시 구체적 상황이 궁금합니다.

제가 2012년 11월 3일 18번째 방문했을 때 억류됐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실수로 컴퓨터 외장하드를 반입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요. 외장하드 드라이브 안에는 서방 언론이 북한을 취재하고 만든 다큐멘터리들이 들어 있었는데요, 북한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들, 예를 들어 꽃제비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진다든지, 국수를 집어먹는다든지 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던 것이지요.

북측이 깜짝 놀라면서 ‘이런 불순한 것들을 무슨 목적으로 가져왔느냐’고 했고, 그것으로 제가 억류됐습니다. 그 외에도 외장하드 안에는 제가 6년 동안 사역했던 선교편지와 보고서, 사진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를 여행사 사장으로 알고 있었다가 나중에 선교사라는 신분을 알게 되었고, 저의 방북 목적을 알고는 국가전복음모죄라는 타이틀을 붙여 기소하고 형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긴 겁니다.

- 억류됐을 때의 심정이 말이 아니었겠습니다.

억류 당시에는 그 심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혼자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같이 여행을 온 사람들이 무사할지 두려웠거든요. 외장하드에 들어 있는 선교편지에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초조하고 걱정됐어요.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선교사님의 활동지역은 단동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쪽에서는 어떤 루트로 북한에 들어가게 되나요.

단동은 신의주 앞에 있기 때문에 신의주를 통해서 평양을 가는 게 제일 쉽지만, 당시 저희한테 열린 문은 나진선봉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21시간 기차를 타고 연길로 이동해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나진선봉으로 들어가는 코스였어요. 그래서 기차로 왔다갔다 이틀이 걸리고 연계해서 1박을 하게 되니까 4박을 해도 7박8일 정도 되는 여정이었지요. 주로 차로 이동했고 가끔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 케네스 배 선생님은 2년 반이라는 세월을 갇혀 있다 다시 돌아오셔서 지금 저희와 말씀을 나눌 수 있는데요, 오토 웜비어와 같은 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저를 북한에서 데리고 나왔던 백악관 고위직에 있는 분을 작년에 만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하는 말씀이 ‘당신이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기적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억류돼 있던 당시 2년 반 동안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다 허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맨 마지막 저를 데려올 때도 당시 그분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제가 집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분들도 제가 비행기에 타기 30분 전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막판에 통보를 받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당시 상황이 2012년 3차 핵실험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인질로 붙잡혀 있는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은 제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했지만 제가 실질적으로 한 일이 관광객들을 데리고 들어간 일 등 경제적으로 북한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었기에 석방에 반영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협조를 잘했다는 이유 등도 참작된 것 같아요. 그 당시 관광객들이나 억류됐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집에 돌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제가 최장기 억류자가 되었고, 교화소로 보내진 첫 번째 케이스였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암담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웜비어의 경우 아마도 어떤 우발적인 일이 벌어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웜비어를 보내주지 않을 목적은 아니었다고 봐요. 다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 어떤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서 결국 북측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그런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북한이 외국과 서방세계를 상대로 많은 사람들을 억류해 인질외교에 이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는 아직도 억류돼 있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등이 여러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그분들은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제가 돌아왔을 때만하더라도 상황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전쟁하겠다는 이야기들이 2013년에 많이 있었지요. 2014년을 지나가면서 조금 수그러든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저를 보내줬을 때는 또 다른 미국인 2명이 억류돼 있었습니다. 한 명은 저보다 한 달 먼저 북한에 들어왔고, 또 한 명은 저와 같이 온 사람이었고요. 지금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세 분이 억류돼 있고, 캐나다 시민권의 임현수 목사님, 또 한 분은 한국 국적을 가진 분까지 해서 최소한 여섯 분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임현수 목사는 지난 8월 10일에 석방되었다. 이 인터뷰는 임 목사의 석방 전에 진행되었다)

한국 국적의 억류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최대한 노력을 통해 그분들의 생사와 안위를 알아보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미국 국적의 억류자 두 명은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상황이라 석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다시 미사일 시험 발사하고 미국과 관계가 최악이라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오토 웜비어 사건 때문이라도 북한 측이 남은 외국 시민권자들을 조건 없이 석방한다면 그것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카드가 될 수도 있겠지요.

- 북한에 억류 중이던 임현수 목사가 최근 석방됐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기도하고 구명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굉장히 기쁩니다.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가족들과 좋은 안식의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국 국적을 가진 억류자들과 미국 시민들도 돌아오기 바랍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구명운동을 해 나가겠습니다.

▲ 케네스 배 선교사(왼쪽)와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오른쪽)이 미래한국 TV 스튜디오에서 대담하고 있는 모습 /

전 세계인들에 북한 주민 위한 기도 촉구 운동

- 선교사님이 계셨던 교화소가 어떤 곳인지 상상이 잘 안 갑니다. 계셨던 곳은 주로 외국인들이 있던 곳이라고 들었는데, 어떠셨습니까.

제가 있던 교화소는 평양 근교에 있는 외국인특별교화소로, 북한 주민은 수용하지 않고 외국인만 수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당시 30~40명 정도의 간수와 스태프가 있었고 제가 유일한 죄수였습니다. 제가 있는 기간 동안에는 저 혼자였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나가서 농사일도 하고 돌과 석탄도 나르고, 땅도 파는 등 중노동을 하루 열 시간씩 주6일을 해야 했습니다. 독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혼자 생활했는데, 방마다 카메라가 있어 감시를 받았지요. 일요일은 하루 쉬게 해주는데 방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하루 종일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 고문도 있었나요.

저의 경우는 고문이나 구타가 없었습니다. 첫 며칠 심문받을 동안은 잠을 두 세 시간 정도밖에 안 재우고 하루 종일 방 한가운데 세워놓는다든지, 무릎을 꿇게 해서 몇 시간을 고생시킨다든지 하는 일들은 있었지만 구타는 없었지요.

- 서빙라이프라는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서빙라이프는 2006년 재미교포 서승원 목사님에 의해 시작된 단체로, 탈북민들을 구출하고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다시 세움’이라고 해서 정착만이 아니라 뿌리내리고 자리 잡도록 도와 북한 땅이 열리면 돌아가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무료 한인 영어학교를 운영하고 있고요, 원어민들이 탈북민과 만나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영어통일캠프도 있고요. 남과 북, 해외동포가 탈북민과 함께 영어도 배우면서 통일을 기원하며 서로 함께 먹고 자고 하며 가까워지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빠른 통일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탈북민 구출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한 사람을 구출하는 데 한 200만 원이 드는데요, 후원금을 통해 한 분 한 분 구출해 정착시키는 과정도 함께 하고요. 그 외 예레미야 기도회라고 매주 화요일에 한 번씩 통일과 북한을 위한 기도회가 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전 세계인들이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서명을 받는 서명운동으로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북한 땅이 열리면 100만 권의 성경을 준비해 나눠주자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대북방송도 시작하게 되어 북한 주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어떤 비전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북한에서 2년간 억류돼 있으면서 느낀 것은 제가 북한을 너무 몰랐다는 점입니다. 저는 앞으로 통일이 되면 평양에 가서 살고 싶다고 주변에 말을 하는데요,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돼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여러 시민단체가 연합해 함께 나누고 있지요. 지난주에는 워싱턴DC에 가 미국 의회에서 통일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국무부 방문도 하면서 탈북민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북한 주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려 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삶이 풍족해지고 자유로워진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야 그것이 통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탈북민을 잘 섬기고 도와드리는 것,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통일을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일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 후 북한은 임현수 목사를 석방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미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135-726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129, 4층 (논현동 거평타운)   |   413-120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155(문발동)
Tel : (02)3446-4111  |  Fax : (02)3446-7182  |  사업자 번호 : 220-86-23538  |  상호 : (주)미래한국미디어  |  대표자 : 김범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범수
Copyright © 2017 미래한국.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