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場 무시, 국가개입 폭주
市場 무시, 국가개입 폭주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7.08.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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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입주의’의 인습적 사고

케인즈적 ‘국가개입주의’ 인습적 사고의 뿌리는 깊다. 그 기저에는 일반 대중의 ‘개인의 자유보다 전체나 국가의 의지를 더 중시하는 이념’에의 매료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식적으로 ‘큰 정부’를 견지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는 일반 대중에 대한 좌파 정부의 ‘화답(和答)’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대의 고용자는 국가’이며,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정치에는 임기가 존재하지만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자신의 책임 하에 내각이라 불리는 새로운 진용을 짠다. 하지만 경제는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인수 받는다.  ‘이념적 지평을 떠나’ 경제운영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론’은 ‘국가는 선하고 전지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다가 이제는 세계평균 경제성장률을 쫓아가기도 바쁜 ‘저성장국가’로 추락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취약해졌다. 신(新)성장동력을 찾는 데 실패했으며 구조조정에 실기했다. 그리고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이념적 지평을 차치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과제는 ‘고갈된 성장동력을 재충전하고 지연된 구조조정의 시동을 걸고 가계부채 연착륙을 꾀하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구조개혁, 신(新)성장동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지적 편견’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는 수용하지만 이에 반하는 증거는 배척하는 심리적 경향을 ‘확신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확신편향이 위험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함으로써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확신편향에 ‘도덕적 잣대’가 결부되면 세상은 선악(善惡)과 피아(彼我)로 환원된다.

‘소득주도 성장’은 ‘마차로 말’을 끌게 하는 인과도치

문재인 정부는 ‘큰 정부’에 확신편향을 갖고 있다. 시장을 믿지 않는다. 낙수효과를 부정하고 양극화를 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분배를 통한 성장’을 굳게 견지하고 있다. 국가(정부)가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불평등으로 붕괴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인식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그들의 현실 인식’을 진리로 굳게 믿고 있다, ‘오류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이론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정책적으로도 그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론’(income led economic growth)으로 모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에 모든 것(all in)을 걸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가계가처분소득을 높여 가계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줘야 소비가 늘고 경제가 선순환 한다는 논리다. 소득주도성장을 격발시키는 방아쇠는 가계소득 증가다. ‘재정을 통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모두 같은 맥락이다.

납품단가 부당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역시 중소기업이 임금인상 여력을 가질 수 있도록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넉넉히 쳐주라는 주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한마디로 ‘분배를 통해 성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을 이끌 분배할 그 무엇(소득)은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논리 전개는 역진적이다. ‘문제(성장)를 푸는 것이 아니고 해(분배)를 먼저 제시하고 거기에 맞춰 문제를 내는 식’이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지속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분배를 통해 창출된 소득이, 다음 기(期)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분배 요구량보다 작으면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구조를 갖지 못한다. 분배, 즉 소비를 출발점으로 경제를 돌게 할 수는 있지만 소비가 늘어난다고 ‘경제의 생산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일 뿐 원천일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마차로 말을 끌게 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의 논리적 기반이 무너지면 여기에 연계된 모든 정책은 자동적으로 와해된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악의 경우에는 모든 정책 오류의 원천, 즉 ‘근원적 오류’(mother fallacy)가 될 수 있다.

정책은 크게 ‘왜 (why), 무엇을(what), 어떻게(how)’로 구성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를 예측하고 정책 내용을 사전에 조정한다.

국민이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독단에 빠진 정책 추진

문재인 정부는 ‘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 자신을 지지하고 정권 창출에 기여한 국민이 원하면 한다는 식이다. ‘무엇을’도 치열한 고민이 없다. 전임 정권의 행적을 모두 ‘적폐’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정책 어젠다를 고르면 된다. ‘어떻게’도 마찬가지다. 밀어 붙이면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여론조사로 마무리한다.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는 아예 생각조차 안한다. 문 정부의 정책 추진 행태에서 신중함과 사려 깊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지지를 받을 때 하지 않으면 추진 동력이 상실된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다. 정당한 논거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무리한 정책 집행은 후일 문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 정부 들어서 이미 적폐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근거는 이러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지는 인천공항공사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첫 방문지에서의 발언은 정책적으로 큰 상징성을 갖는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오히려 비정규직의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문 정부의 정책 첫 작품은 ‘11조원의 추경’을 편성한 것이다. 추경 편성의 경제적 논거는 그리 설득적이지 않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이니 추경 편성으로 밀어달라는 식이다. 초과세수를 추경 편성으로 소진할 필요는 없다. 세계잉여금으로 돌려 2019년도 예산 편성을 통해 정식으로 정책추진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최저임금 7650원도 무리한 결정이다. 상당수의 영세한 자영업자가 문을 닫을 판이다. 알바 자리는 가족노동과 무인기계가 대신할 것이다. 탈(脫)원전도 장기 에너지 수급계획, 에너지 가격, 안보에 미치는 변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회 등을 통해 책임 있게 논의하는 것이 정석이다.

원전 폐쇄는 핵 관련 인프라를 우리 손으로 파괴시키는 것이다. 국가 계약에 의해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를 중단시킨 것은 법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기연체채무 100% 탕감도 신중해야 한다. 채무조정, 부채경감 등은 필요하지만, ‘100% 부채 탕감’은 차원이 다르다. 국가가 굳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장기연체자, 금융기관, 추심기관 간’ 밀고 당기면서 나름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굳이 관여한다면, 소멸시효채권을 쉽게 살리지 못하게 규제를 강화하고 추심기관의 무리한 추심행위를 단속하는 정도의 개입이 적정하다. ‘포용적 부채탕감’은 국가가 나서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IMF 위기 관련해 부채를 경감해주는 것은 나름 명분이라도 있지만, 지금 정부가 부채 100% 탕감을 외치는 것은 인기 영합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한 도덕적 해이 그리고 도덕적 해이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슈퍼리치(super rich)에 대한 핀셋 증세’도 무리수다. 초대기업, 초고소득자로 대표되는 슈퍼리치는 저널리즘 용어일 뿐, 세정 용어일 수 없다. 슈퍼리치에 대한 과세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했다면 논리 비약이며 선동이다. 증세와 관련한 원내대책회의(7월 25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기관 OOOO에 따르면 정부 여당이 계획하고 있는 조세개혁에 85.2%가 찬성하고 자유한국당 지지자조차 70%의 찬성률을 보였다”며 이는 “세대, 지역, 이념, 성별을 초월해 모든 계층에서 법인세와 소득세율 조정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0.01% 초대기업, 0.1%의 초고소득자 등 슈퍼리치 적정 과세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증세의 당위를 아전인수식 해석과 여론에서 찾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증세의 물꼬를 텄다고 판단해서인지, 8월 들어서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복지정책들이 문 대통령 발언을 빌려 연일 정책화되고 있다. 노인기초연금 인상,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 등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국고(國庫)가 무제한일 수 없다. 재정 건전성이 무너지면 종국적으로 경제가 무너진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8월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최저임금 위반은 강제조항을 만들어야 하고 미지급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치권과의 교감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되며 실제 입법화될 개연성이 높다.

국고(國庫)는 무제한인가? 정부 곳간 비우는 정책

문 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남용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의도를 갖고 행동하고 그 결과를 은폐하려 했으며 상대방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줘야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미지급을 은폐할 수는 없다.

지불능력 부족으로 인한 미지급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다. 갑·을은 계약관계에 있는 당사자를 의미한다. 깁·을 관계를 착취관계로 보면, 계약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사업을 쏟아냈다. 청와대는 지난 7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 178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8월 들어서는 하루걸러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대형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표-4>는 최근 발표된 ‘대선공약 이외’의 주요사업 및 소요 예산을 정리한 것이다.

그 중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문재인 케어’로 명명되었다.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모든 치료를 급여화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30.6조원의 소요재원은 의료보험 흑자누적액과 의료보험료 인상으로 조달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료를 올려 수지를 맞추겠다고 것은 의료서비스의 특성에 대한 무지를 들어낸 것이다. 예컨대 MRI를 급여로 하면, 수요는 무한 팽창할 것이다. 2006년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전액 의료보험에서 지급하자 가짜입원소동이 벌어진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의료보험 보장성 확대를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는 2023년 이후 건보 지출 추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건강보험은 ‘그해 걷어서 이듬해 쓰는’ 단기보험이어서 2023년 이후 추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과거 건보 재정의 고갈을 예측한 연구 결과들이 모두 틀렸다는 점이 그 근거다.

하지만 복지부는 중장기 추계를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 추계치 공개의 목적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추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정부가 끝나는 ‘5년 후는 알 바 아니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막대한 재정이 소유되는 정책을 쏟아내면, 문재인 정부는 ‘YOLO 정권’(You only live once, 내 임기만 관심 갖는 산타 정권)이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큰 정부론은 정부의 지출 규모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상 GDP 성장률 이상으로 재정지출을 늘리겠다고 한다. 이는 재정적자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재정적자는 정부부문의 적자를 의미한다.

국민 저축이 줄어들면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이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 투자가 위축되고 그 결과 장기적인 성장이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국채 발행은 이자율을 높여 투자를 위축시킨다. 투자를 저해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이 더뎌지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낮추게 된다.

국가는 선(善)하지도 전지(全知)하지도 않다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론’은 ‘국가는 선하고 전지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국가가 박애주의의 실천자가 된다면 모두들 입법을 통해 특혜를 받으려 할 것이다. 국가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추가하지 않고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다른 손으로 나눠줘야 한다.

바스티아는 일찍이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명명했다. 복지의 본질을 천착해야 한다. 복지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주체는 같을 수 없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의 유익을 침해하는 것은 정의에 반(反)한다. ‘국민개세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득세 면제비율 46.5%는 응당 시정돼야 한다. 소득을 버는 사람은 단 돈 1만원이라도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래야 복지를 청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확신편향에 빠져 있다. 유연한 정책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도그마에서 빠져나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큰 정부’가 시대정신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국가개입주의는 전체주의를 부를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활력을 살리지 못하면 그 경제는 ‘노예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 신시내티대 경제학 박사 / 바른사회 시민회의 공동대표 /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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