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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을 도와 조선의 틀을 만든 재상 하륜(河崙)

조선시대 명재상을 찾아서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미래한국 편집위원l승인2017.08.28l수정2017.08.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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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webmaster@futurekorea.co.kr

정도전과 하륜은 상극(相剋)이었다. 조선 500년 현실 역사에서 하륜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수록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내려갔다. 정도전이 이상주의 경세가였다면 하륜의 현실주의 경세가였다. 그래서 정도전은 실패한 사상가였던 반면 하륜은 성공한 경세가였다. 현실 속의 조선은 정도전의 길을 버리고 하륜의 길을 따랐다.

그래서일까? 오늘날에는 정도전은 알아도 하륜은 모른다. 두 사람의 평가는 역전돼 버렸다. 조선에서는 하륜이, 대한민국에서는 정도전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어쩌면 정도전의 ‘실패한 꿈’이 주는 묘한 매력 때문에 정도전에 이끌리는 경향은 앞으로 더 강해질지 모른다. 반면 하륜은 현실정치에 깊이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학계 풍토가 만들어낸 학문적 천박성의 한 단면이다.

하륜을 망각의 늪에 빠트려놓고서는 조선(朝鮮) 탄생의 온전한 비밀을 알 수 없다. 반쪽도 안 되는 사실(史實)에 허구를 집어넣는 팩션이 우리의 역사일 수는 없다. 역사는 역사로 보고 상상은 그저 상상으로 그쳐야 한다.

7년간의 조선왕조실록 읽기를 통해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큰 인물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었다. 임금의 경우 이미 6명에 대한 조명 작업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국가를 이끈 재상(宰相)에 주목하고자 한다.

뛰어난 재상이 존재했다는 것은 그런 인재를 알아보고 중용한 임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륜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곧 태종의 인사(人事)를 살피는 길이기도 하다. 하륜 없이 태종 때의 치세(治世)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황희 없이 세종 때의 치세를 설명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하륜이 조선 이라는 새로운 배에 올라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륜이 문과에 급제한 것은 공민왕 14년(1365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19살 이었다. / 2014년 10월 6일 경희궁에서 ‘과거 시험’을 재현 하고 있다. / KBS 영상캡처

하륜을 통해 보는 조선 탄생의 비밀

하륜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배에 올라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륜이 문과에 급제한 것은 고려 공민왕14년(1365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전형적인 소년등과(少年登科)였다. 그런데 시절이 녹록지 않았다. 마침 그 때는 신돈(辛旽)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이존오(李存吾)와 정추(鄭樞)가 정식으로 상소를 올려 그를 비판하다가 관직에서 축출당하고 유배를 가야 했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개혁성향의 신진사대부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신돈에 맞섰다. 하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춘추관검열, 공봉(供奉)을 거쳐 1368년(공민왕17년) 관리 3년차이던 하륜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어 신돈의 문객을 규탄하다가 좌천을 당하게 된다. 감찰규정이란 조선시대의 사헌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종6품직이다. 이 때 그의 나이 22살이었으니 혈기왕성할 때다. 이 때 외삼촌 강회백(姜淮伯)은 조카 하륜을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너는 장래에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이니, 결코 시골에 묻혀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하륜은 공민왕에서 우왕으로의 정권 교체기 때 아무런 시련을 겪지 않았고 오히려 우왕 때에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능력과 품성 외에 하륜에게는 든든한 ‘빽’이 있었다. 그의 처삼촌 이인임(李仁任)이 당대의 권세가였다. 이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을 보자.

‘을사년(1365년)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좌주(座主) 이인복(李仁復)이 한 번 보고 기이하게 여기어 그 아우 이인미(李仁美)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였다.’

즉 배경 자체가 이성계와는 다른 쪽에 있었던 인물이다. 결국 1388년 이인임이 죽으면서 하륜도 유배를 떠나 1391년에야 풀려났다. 그리고 조선 개국 후에 관직에 나아갔으나 정도전과 남은의 견제로 요직에 나아가지 못한 그는 ‘흥미롭게도’ 풍수지리학을 통해서 여러 번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하륜은 이색의 문생(門生)으로서 정도전과 함께 정통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으나,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과 관상학(觀相學) 등의 잡설(雜說)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권력을 향한 그의 노력은 집요했다. 하륜은 사람의 관상을 잘 봤기 때문에, 처음에 이방원을 보고서 장차 크게 될 인물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방원의 장인 민제(閔霽)를 만나서 간청하기를 “내가 사람의 관상을 많이 보았으나 공의 둘째 사위만한 인물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 그를 만나보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 민제는 사위 이방원에게 권유하기를 “하륜이라는 사람이 대군을 꼭 한번 뵙고자 하니, 한번 그를 만나보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이리하여 이방원과 하륜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한다. 하륜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실질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한 인물이다.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정도전과 남은 일당을 불의에 습격하여 죽이고, 세자 이방번과 이방석을 제거했다.

또 제2차 왕자의 난에서도 박포(朴苞) 일당을 죽이고,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 부자를 유배시켰다.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준비 작업이 그의 손에 의하여 추진되었던 것이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기획·지휘

태종 즉위와 더불어 하륜은 오랜 기간 좌정승으로 있으며 왕권 강화를 추진하던 태종을 지근거리에서 도왔다. 관제(官制) 개혁을 통해 새로운 국가의 관료제도를 확립했고 의정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육조직계제를 추진하던 태종의 구상을 앞장서 실현시켰다. <태종실록>은 네 차례나 좌정승에 있으며 국정을 이끌었던 그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정승이 되어서는 되도록 대체(大體)를 살리고 아름다운 모책과 비밀의 의논을 건의한 것이 대단히 많았으나 물러 나와서는 일찍이 남에게 누설하지 않았다.”

사실 이 대목은 <서경(書經)> 군진(君陳)편에 나오는 재상의 바른 도리와 그대로 일치한다. 주나라 성왕(成王)은 군진이라는 신하에게 정사를 맡기며 여러 가지를 부탁했는데 그 중 한 대목이다.

“너는 아름다운 꾀와 아름다운 계책이 있거든 들어와 안에서 네 임금에게 고하고 너는 마침내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 꾀와 이 계책은 우리 임금님 덕분이다’라고 하라.”

훗날 하륜이 세상을 떠나고 다른 신하들이 태종에게 하륜을 그토록 총애했던 까닭을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태종은 말했다.

“하정승의 귀로 들어간 일이 그의 입으로 나오는 것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에게도 결점은 있었다. 태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인사 청탁을 많이 받고 통진 고양포(高陽浦)의 간척지 200여 섬을 농장으로 착복해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이라 하여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구를 이끌고 함경도에 있는 왕실 조상들의 능침(陵寢)을 돌아보던 중 그곳 정평군아(定平郡衙)에서 죽었다. 충신다운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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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퍼니 2017-09-14 13: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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