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하이 올드데이스’의 저자 박규원 씨
[인터뷰] ‘상하이 올드데이스’의 저자 박규원 씨
  • 미래한국
  • 승인 200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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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産苦끝에 나온 ‘논픽션’ 역작
▲ 저자 박규원 씨.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 대상 수상평범한 주부를 끌어당긴 독립운동가의 삶“중국정부가 제작한 영화연감 ‘중화영성’엔 중국 영화계 역대 최고배우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맨 앞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 진옌, 우리말로 김염, 본명 김덕린.”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평가받은 항일 배우 김염(金焰·910∼1983)의 삶을 조명한 논픽션 평전 ‘상하이 올드 데이스’가 출간됐다. 이 책은 민음사가 주관한 제1회 ‘올해의 논픽션상’공모에서 대상 수상작으로 저자는 주인공 김염의 외손녀인 박규원 씨(49)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박 씨는 95년 김염이 작은 외조부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후 8년여 동안 중국과 미국, 캐나다 등지를 찾아 수많은 인터뷰, 각종 자료를 수집해 한편의 영화 같은 그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6년간 친구도 안 만날 정도로 몰두하면서, 과로한 탓에 건강이 나빠져 큰 수술을 받았고, 한동안 심한 어지럼증으로 하루 두 시간 이상 깨어있기도 힘들 만큼 쇠약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정신이 혼미해질 때를 대비해 돗자리와 양산을 챙겨 갖고 중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그를 끌어당긴 힘은 무엇이었을까. “외증조부 김필순, 작은 외할아버지 김염 두 분이 제 몸을 빌려서 이 책을 쓰신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어떻게 이런 큰 상을 받겠습니까. 죽기 전에 한 가지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이 아파서 두 시간 쓰고 한 시간 쉬고, 다시 두 시간 쓰고, 그런 식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써내려 갔지요.”중국 ‘영화황제’의 불꽃같은 삶김염은 1910년 우리 나라 최초의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필순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부친 김필순은 중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로 결국 일본인에게 독살당한다. 이에 따라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김염은 고모(독립운동가 김순애·1889∼1996), 고모부(상하이 임시정부 초대외무총장을 지낸 김규식 박사·1881∼1950) 집에서 성장한다. 어려운 생활형편 속에서 고학으로 학교를 다니며 영화에 빠져든 김염은 1927년 당시 세계적 금융·무역중심지인 국제도시 상하이에 뛰어들어 1932년 ‘야초한화’(野草閑花)란 영화로 스타덤에 오르고 이후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이른바 ‘영화황제’로 군림한다. “배우는 부자들의 심심풀이 노리개가 아니다. 자기의 예술이 사회에 유용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주로 항일정신을 담은 영화에 출연하고, 실제 삶에서도 조선인교포협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만주사변 때는 항일운동 자금을 조달한다. 해방 후 ‘제2의 조국’인 중국에 남은 그는 마오쩌둥에 의해 일급배우로 임명되고, 중국영화작가협회 이사 등 고위직을 수행하지만 83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공산당에는 가입하지 않는다. “내가 늘 꿈꾸고 소중히 여긴 것은 바로 자유로, 나를 어떤 틀이나 형식 안에 집어넣고 싶지 않다.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그의 사상이었다.개인과 역사의 운명 생생히 전해책은 김염의 파란만장한 삶과 독립운동가 집안의 고난을 통해 일제강점기 격동의 역사와 그 속에 휩쓸리는 한 개인의 운명을 고스란히 전한다. 특히 외할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삶을 더듬어 가는 ‘나’와 어느덧 외할아버지의 김염의 시선으로 바뀐 ‘나’, 이 두개의 시선을 무리 없이 교차시킨 것이 이 논픽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남다른 점이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이로써 한국 문학은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거의 불모에 가까운 장르에 깊고도 넓은 우물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고 심사평을 밝혔다.“그의 아버지 김필순이 그랬던 것처럼 김염 역시 자신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회의를 품지 않았던 진정한 개척자였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인기와 명성을 한몸에 모은 대스타보다 역사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한 지식인의 체취를 느꼈다는 박규원 씨. 그녀는 할아버지 생각에 때때로 눈시울을 붉혔다.신문영 기자 so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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