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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지도자의 길 슈뢰더 리더십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l승인2017.09.28l수정2017.09.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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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kooup@naver.com

오늘날 ‘독일’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인정한다. 그러한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밑그림을 그리고 초석을 다진 리더십을 가진 전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리더십을 탐구, 정리해 본다. 자료들은 신문 지상에서 인터뷰한 내용과 그 외 여러 가지 자료들을 종합해서 그의 리더십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이 시점에서 왜 그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독일을 개혁하고 혁신 할 당시 독일의 모습과 우리의 현상이 너무도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우리 보다 먼저 개혁의 길로 이끌어 성공을 거둔 리더십 착안점을 통해서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 한국경영인력연구원 원장 이용진


1. 통찰력

지도자는 상황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통찰력은 리더로서는 아주 기본적인 능력이다. 그는 1998~2005년까지 7년간 독일 총리로서 재임했다. 그가 취임할 당시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왜 독일이 유럽의 병자인가? 그는 독일이 유럽의 병자가 된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고 국가가 적극 추진해야 될 아젠다(정책 과제)를 설정한다.

2002년 당시 독일의 실업률은 14%에 달했고 경제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1990년 10월3일에 통일된 독일은 통일 이후 1800만 명의 동독인이 새로 독일 국민에 포함되면서 당시의 여러 가지 사회보장적 정책과 고용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지속한다면 독일에 다가올 암담한 미래를 먼저 인식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혜안이나 안목을 지도자는 가져야 한다. 상황의 본질을 통관하는 형안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자기의 개인적인 사익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부분보다는 나라 전체를 , 현재보다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2. 비전과 아젠다 설정 능력

슈뢰더 총리는 독일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나라의 비전과 아젠다를 설정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2003년 3월에 7년 후인 2010년에 나라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가의 모습을 정리하여 발표한 ‘아젠다 2010’(하르츠개혁)이다. ‘아젠다2010’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째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서 실직자들이 신속하게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해고 요건을 완화하여 기업들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 하고 실업 수당을 받는 기간을 32개 월에세 12개월로 단축하고 둘째는 사회보장 제도를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연금을 받는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높였다. 셋째는 정부 예산을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R&D와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보장제도 축소, 세율인하 등의 정책들은 자신이 소속한 정당의 정책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들을 과제로 설정하고 개혁 과제들을 확실하게 추진했다.

3. 확고한 국가관에 기반한 정책과 시책

슈뢰더 전 총리가 자신을 지지해준 기반인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 시장 유연화 등 반 노동자 정책을 펼친 것은 단순히 정파적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장래를 위하고 전체 국민을 위한 국가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그는 2005년 선거에서 당장의 자기 지지기반인 노조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뒷쳐 중도우파에 패해 총리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다음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전임자의 정책 과제들을 이어 갔고 그 덕으로 독일 경제가 다시 부활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아젠다2010’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게 해 준 전임 슈뢰더 총리께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최근엔 독일이 이렇게 부흥한 출발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슈뢰더의 개혁 정책 ‘아젠다2010’이라고 다시 한 번 더 찬사를 보냈다. 슈뢰더는 “개혁은 당연히 필요하고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독일이 오늘날 유럽의 최대 경제대국이 됐다. ‘아젠다2010’만이 그 요인이라 할 수 없지만 분명 큰 기여를 한 건 사실이다. 지금은 누구나 그걸 인정한다. 개혁을 추진하는 시점과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사이 선거가 치러지면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던 정치인이 패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더라면 시대의 과제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4기 연임을 하는 메르켈 총리는 독일 경제가 살아 나자  “오늘날 독일이 유럽의 리더로 떠오른 것은 슈뢰더 전 총리의 용기 있고 과감한 개혁 덕분”이라고 공을 돌리고 있다. 독일 경제의 부활은 확고한 국가관이 확립된 지도자의 결단으로 가능한 것이다.

4. 과감한 결단력의 리더십

2000년 대 독일의 실업자는 500만 명에 달했다. ‘아젠다2010’을 추진하면서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탈파해서 더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보장제도 중에서 연금과 실업 수당을 개혁해야 하는데 독일도 네델란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었지만 노사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시대를 앞서 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 먹힌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에 “여론 조사를 해보면 ‘우리나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90%가 응답한다. 그런데 막상 개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90%가 반대한다. 이게 인간들의 본성이다.

특히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또 개혁의 성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또 국민들은 개혁의 부정적 측면을 보지 긍정적 측면은 외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지도자라면 반드시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도자는 결단을 내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정치인도 선거에 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직책을 잃어버릴 위험 부담도 감내하고 개혁을 추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5. 설득과 공감력

슈뢰더 총리는 최종 결단을 내리 전에 충분한 토론을 했다. ”독일의 의회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집권당이 절반이 넘으면 어떤 개혁 법안도 가능하다. 그러나 설득과 공감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관련 다른 정당들도 설득해야 하고 자기 정당 내부의 설득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지역 별 콘퍼런스를  비롯한 수많은 회합에서 ‘아젠다2010’을 몇 시간씩 설명했다. 노조도 설득했지만 그들은 이념적으로 교조화되어 있어 설득이 쉽지 않았다. 총리를 향해 격렬한 시위도 벌여졌다. 노조와의 대화에서 “이 개혁은 결국 관철시킬 것이다. 이것이 상황 끝’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슈뢰더 총리의 별명이 ‘상황 끝 총리’가 됐고 자신도 총리로서 상황 끝이 되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잘한 ‘상황 끝 총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대화와 설득 과정은 탈 원전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탈원전의 국가의 에너지 정책들을 입안하면서도 관련 대기업들과 토론을 통해 언제, 어떤 시점에서  탈원전을 할 것인가를 합의한 뒤 법안을 마련했다. 에너지 기업과는 총리가 직접 토론에 참여했다.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정도 힘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는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합의를 해가는 힘은 특유의 서구 학습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정리해 가는  합리적인 사고가 어릴때부터 체드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6. 자기 관리 능력

그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에 독일 서부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생후 6개월 후 전사했다. 어릴 적에는 축국장 한 구석의 가건물에서 살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철물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야간 직업학교를 다녔다. 일과 학업을 병행해 괴팅겐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슈뢰더의 젊은 시절을 보면 정말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가난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부족하고 궁핍한 것이 그가 성공하는 에너지로 작동이 된 것이다. 자기 절제와 자신에게 엄격하게 자기를 관리한 것이다. 그리고 18세에 중도 좌파 정당에 가입하고 1990년 니더작센주에서 8년간 주 총리를 지내고 1998년 총선에서 연정을 이뤄 집권했다. 2002년 총리로 재선됐지만 ‘아젠다1020’으로 지지률이 급락해 2005년 조기 총선에서 패했다. 그리고 정게를 은퇴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삶은 독일을 부흥시킨 위대한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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