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복귀설’ 반갑지 않다
‘히딩크 복귀설’ 반갑지 않다
  • 백길현 생활인재교육연구소 부소장
  • 승인 2017.09.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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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길현의 ‘키스 더 줄리메 (Kiss the Jules Rimet)’

현재 대한민국 축구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거스 히딩크 감독(70. 네덜란드)의 축구국가대표팀 ‘복귀설’이다. 이 소식은 같은 날 달성된 우리 대표팀의 9회 연속 본선 진출 소식을 가볍게 제치고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석권했다.

그러나 한국 축구에 대한 영원한 그의 사랑을 확인받는 이 순간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그 이유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대다수의 언론이 이를 간과했지만 이른바 ‘히딩크 복귀설’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히딩크 감독 본인의 육성 메시지 또는 직접 작성한 서면자료에 관한 확인 절차도 없이 확산된 점에 있다.

단지 국내에서 히딩크의 매니저 역할을 겸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거스히딩크재단’의 한 고위 관계자가 히딩크와 올해 6월에 나눴다는 대화 내용을 얼마 전 언론에 흘린 것이 전부다.

▲ 지난 9월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우즈벡과 0-0 무승부를 거두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왼쪽 히딩크 감독) / 연합

실체 없는 복귀설과 기본을 어긴 언론 보도

해당 관계자는 ‘히딩크는 국민들이 원한다면 다시 대표팀을 맡아 봉사할 의향이 있고 연봉 등의 조건도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대한축구협회와 사전에 교감을 나눠봤느냐는 질문에는 ‘히딩크 감독이 두 경기 후 탈락할 수도 있는 대표팀을 맡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아울러 해당 관계자는 히딩크가 감독직을 구하기 어려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잉글랜드,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물론이고 거액을 제시한 중국 프로축구팀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언론 보도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확인 하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지금의 복귀설은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무차별 유통되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최초이자 세계에서 단 6개국만이 달성한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 기록은 예상 밖의 이슈에 묻혀 총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고 준비 과정 상의 문제점을 복기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 되었다. ‘한국 축구’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히딩크’라는 이름이 가진 영향력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점은 실로 안타깝다.

2002 월드컵, 냉철한 분석 필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역대 사령탑 중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2위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동의 1위는 바로 히딩크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은 한국 축구 최고의 성과이며 그 이후 대표팀이 부진할 때마다 ‘이럴 바에는 히딩크를 다시 부르자’고 주장하던 이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족적은 분명히 위대했다.

그러나 당시 월드컵의 빛나는 성과는 보다 냉철한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도 있다. 히딩크가 우리와 인연을 맺기 이전까지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은 고사하고 단 1승조차도 거두지 못했다.

그랬던 팀이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으니 ‘히딩크 효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성과를 히딩크라는 마법사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미개한 한국인에게 준 선물처럼 여기는 것은 합리적인 분석과는 동떨어진 우매한 발상이다.

결론적으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그와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대한축구협회다. 또한 협상 당시 그의 입지는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고 그의 지도자 인생 최악의 암흑기가 바로 그 당시였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축구협회는 프랑스 월드컵 우승감독인 에메 자케, ‘16강 청부사’로 불리던 밀루티노비치 등 지명도에서 앞서는 경쟁후보군을 확보했지만 결국 무직 상태였던 히딩크를 택했다. 그리고 히딩크의 지명도는 2002년 월드컵 종료 이후 수직 상승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우리 대표팀을 지휘한 것은 지도자 인생을 통틀어 단연 최고의 순간이었다.

히딩크는 당시 우리 대표팀의 가장 큰 매력으로 월드컵 개최국의 이점을 꼽은 바 있다. 본선 자동 진출권은 물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과 이로 인한 심판 판정 상의 이득은 물론 그라운드의 모든 컨디션 역시 홈팀에게 유리하게 맞춰졌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구단들의 협조를 얻어 정규프로리그 일정을 월드컵 이후로 변경했고 히딩크의 임기 1년 6개월 중 절반에 해당되는 274일 동안 대표팀을 소집시켰으며 무려 32회의 A매치를 주선해줬다. 국가대표팀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셈이다.

이는 말 그대로 우리 축구 역사에 두 번 다시없을 전폭적인 지원이었으며 이러한 형태로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북한 말고는 없을 정도이다. 히딩크가 여러 가지 유리한 요인을 결합해 최고의 성적을 낸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감독 하나만 잘 만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식의 논리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그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모범적인 윈윈 관계를 함께 만들었다고 함이 타당하다.

한국의 노장의 요양소인가

히딩크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년 전 우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으로 2002년 당시의 성과가 너무 크고 당시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 대표팀을 다시 맡을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무직 상태였고 그의 발언은 단순한 입장 표명이 아닌 거취 표명으로 읽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발언은 공식적으로 가장 최근의 것이자 신빙성 있는 것으로 통용된다.

안타깝지만 2010년 이후 감독으로서 히딩크의 상승세는 완벽히 꺾였고 터키 대표팀, 러시아의 FC안지,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그가 거둔 성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2016년 6월 이후 감독으로서의 경력도 단절된 상황이며 본인 스스로도 고령임을 이유로 매주 경기가 있는 프로팀보다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중국의 클럽이 거액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수락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히딩크를 원한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사실무근이고 외려 히딩크 측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월드컵 플레이오프로 내몰리며 비상이 걸린 호주 축구협회의 히딩크 영입설도 흘러나왔지만 과거 히딩크 밑에서 코치를 맡은 바 있는 그레이엄 아놀드 현 시드니 FC 감독을 호주 축구협회장이 직접 접촉하며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적어도 호주는 히딩크 감독과 함께 러시아로 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히딩크 복귀를 부르짖는 상당수의 국내 팬들은 최근 그의 지도자 경력과 성적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과거의 기억에만 집착하며 ‘Again! 2002’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의 그는 결코 ‘그 때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 대표팀이 아무리 부진해도 읍소를 하면서까지 모셔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우리 국가대표팀 명예감독직 이상의 직함을 부여하기도 애매하다.

설령 백번 양보를 해서 그에게 우리 대표팀을 지휘할 뜻이 있었다면 지난 6월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될 무렵 논의가 진행되었어야 옳다. 당시에만 해도 감독대행체제를 비롯한 다양한 옵션을 염두에 둔 협상의 진행이 가능했다.

본선 진출이 불투명했을 당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본선행이 확정된 당일 복귀설이 흘러나오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공식적인 채널을 완전히 무시한 언론 플레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의 반응도 당연히 냉담할 수밖에 없다.

히딩크 감독은 이제 입을 열어야 한다

우리 대표팀은 10월 7일, 월드컵이 벌어지게 될 러시아 현지에서 러시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벌이게 된다. 이 평가전을 주선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거스히딩크재단’은 이벤트를 주선한 매치 오거나이저(Match Organizer)로서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게 된다.

그런데 이번 평가전 성사의 전제 조건은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고, 우리는 예상보다 한참 뒤늦은 시점인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통해 비로소 본선행을 확정했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이번 평가전 불발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어수선했으며, 평가전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 스폰서 유치 작업도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사 가능성조차 불투명한 경기를 후원할 한국 기업은 많지 않았을 것이고 평가전을 한 달 앞둔 ‘거스히딩크재단’ 측의 조급한 마음은 6개월 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그리고 ‘히딩크 복귀설’이 왜 하필 이 시점에 흘러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의구심은 증폭된다.

상당수 축구팬들의 주장대로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치자. 만약 히딩크의 근래의 성적이 보여주듯 부진을 거듭하는 경우 그보다 더 유능하고 지명도 높은 명장이 우리 대표팀의 감독이 되고자 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감독을 교체할 것인지 묻고 싶다.

경기 결과가 암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도자 생명을 걸고 최종예선 2경기에 불을 끄기 위해 나선 신태용 감독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를 바라는 것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이 모든 상황은 히딩크 감독의 측근임을 자처하는 인물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이지 감독 본인의 생각을 확인한 바는 없다. 가급적 빨리 자신의 의중을 밝혀야 모든 의혹과 갈등이 명쾌하게 해소된다는 점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더 이상의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러시아전의 매치 오거나이저가 아닌 2002년 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로 대한민국 축구팬들 앞에 나와 자신의 생각을 밝혀주길 권유하는 바이다. 그것이 가장 히딩크다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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