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입국, 北 對南부서 한국상륙”
“송두율 입국, 北 對南부서 한국상륙”
  • 미래한국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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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 70년대 초부터 매년 방북한 북한 비밀노동당원”
‘친북인사’로 분류돼 귀국할 수 없었던 재독철학자 송두율씨가 지난 22일 입국한 데 대해 한국사회공안질서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2003 해외민주인사 초청 한마당’행사에 참석키 위해 귀국한 송씨는 30일 ‘한국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세미나에 이어 다음달 10일 ‘세계화시대의 민족개념’이라는 세미나에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송씨의 간첩혐의에 대한 사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는 송씨의 자유 활동에 대해, 85년 송씨 등의 제의로 입북한 뒤 86년 독일로 탈출했던 오길남 박사는 “송씨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황장엽씨의 주장은 사실이고 이는 북한의 대남사업본부인 평양의 칠보산연락소에서 근무하는 중 확인했다”며 “송씨의 입북은 단순히 대남공작을 하던 한 개인의 고국방문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사업본부가 남한 내에서 직접적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의미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공안당국,“송씨는 김철수”>실제로 송씨는 권영해, 강인덕, 이종찬,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 등 공안담당자들에 의해‘조선노동당 서열 23위의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임’이 계속 확인됐다. 지난 1999년 8월 국정원장에서 퇴임한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송씨의 간첩혐의와 관련, “북한측 중요 인물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왔으며, 황장엽씨의 주장은 분명히 맞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11월3일 국정감사에서 김은성 국정원2차장은 “송두율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임이 분명하고 김일성 장례위원 명단에도 올랐었다”고 증언했다.지난 2001년 4월10일 국회대정부질문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당시 통일부장관이 “송씨가 김철수인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4월23일에는 신건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국정원은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신건 국정원장은 “송씨가 김철수라는 증거는 굉장히 많다”며 그 예로 오길남 박사에 대한 입북권유,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의 진술, 86년 서경원 전 의원이 헝가리에서 밀입북할 당시 김철수의 여권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지난 99년 이래“송두율이 김철수이며 자신이 송두율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송씨는 황장엽씨의 증언을 부인하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2001년 8월23일 당시 서울지법민사16부(재판장 하광호)는 최근 언론의 보도처럼 “황씨의 증언이 허위임”을 밝힌 것이 아니라“황씨의 증언만으로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사실이 입증되기는 어렵다”고 밝혔고“황씨의 증언은 공익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지난 22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당시 판결이 나온 이유에 대해 “국정원이 보안을 위해 중요한 핵심자료는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댈 곳은 북한”오박사 입북유도>오길남 박사 역시 이러한 황장엽씨의 증언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85년 8월 당시 송두율은 70년대 초 독일유학시절부터 반유신투쟁을 하며 가깝게 지내온 오박사가 경제난과 아내의 병으로 어렵게 생활하자“기댈 곳은 북한밖에 없다”며 입북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길남 박사는 그의 저서‘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을 통해 “송씨의 입북권유 이후 재독작곡가 윤이상은 ‘이제 민족통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북한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썼으면 하오’라는 편지를 써 보냈고, 거듭 ‘고생하지 말고 북한으로 가시오. 거기 가면 오박사는 대접을 받으면서 학문을 이룰 수가 있소’고 권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오길남 박사는 1985년 12월 송두율, 윤이상, 김종한 등의 입북권유로 북한공작원을 소개받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입북했고 이후 1986년 11월 평양의 칠보산연락소에서 ‘한민전’ 대남흑색선전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宋씨 만든 프래카드, 北에 전시돼>그러나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 와서 그곳의 처참한 현실을 깨달았고 아울러 송씨의 실체에 대해서도 확인하게 됐다. 오박사는 평양 칠보산연락소 이창균 고문 등 대남사업본부 고위 인사들로부터 “송두율이 70년대 초반부터 1년에 북한을 1~2차례씩 왕래해 온 북한의 비밀노동당원이었음을 확인했다”며 “북한방문은 평소 유럽 외딴 곳으로 휴가를 간다는 외양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박사는 “86년 2월 평양 용성구역 남조선혁명박물관에 갔을 때 1975년 송두율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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