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 더 기울까
‘기울어진 운동장 ’ 더 기울까
  • 전동욱 변호사·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10.05 0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과 사법개혁 전망

문재인 대통령의 김명수 16대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은 그 자체가 사회 각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김 신임 대법원장은 사법부 초창기의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3·4대 조진만 대법원장을 제외하고는 48년 만에 대법관 경력이 없는데도 대법원장이 된 최초의 인물이고,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회장이며, 우리법연구회의 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청와대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김 후보자는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 온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배려하는 한편, 대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틀을 다진 초대회장으로서, 국제연합이 펴낸 ‘인권편람’의 번역서를 출간하고, 인권에 관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법관으로서 인권을 구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은 25일 취임에 대한 소감으로 “제가 대법원장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사법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기대에 부응하고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하에서는 취임 자체가 시법개혁을 상징하는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추진할 사법개혁의 방향과 그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점검해보도록 한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법원의 전문성이나 민주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독립성이 중요하다”면서 “사법부 외부로부터의 독립 뿐만 아니라 내부의 독립성도 중요한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된 내용까지 모두 살펴 사법행정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사법행정에 대해서는 “사법행정이 재판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사법행정시스템을 참모습으로 되돌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는 오직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으므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국민의 사법 신뢰 제고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처럼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관예우 근절과 사실심 충실화 등을 통한 사법부 신뢰회복을 사법개혁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강도 높은 사법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전망

법원행정처의 역할 축소

김명수 대법원장은 춘천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법관들의 사무 분담을 판사회의에서 직접 정하도록 했었는데, 그는 이를 ‘작은 법원에서의 실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권한을 내려놓고 적정하게 행사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대법원에서도 사법행정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기간 사법부를 관료화시킨 원인으로 비판을 받았던 법원행정처의 역할이나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장의 ‘비서조직’으로 불리는 법원행정처로 사법행정권이 집중되는 바람에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법관의 독립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비대화와 권력기관화는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며 뚜렷한 개혁 의지를 드러낸 바 있기에 사법개혁 과제 중 법원행정처의 역할 축소가 가장 먼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관 인사제도의 개선

지난 2011년 법원은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 인사를 이원화해 운영하고,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2018년까지 점진적으로 폐지키로 결정한 바 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뒤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가 되는 고법부장 승진제는 법원 내 유일한 승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로 인해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비대화되고, 일선 판사들이 승진을 위해 대법원의 눈치를 보고 판결하게 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해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유지해 이른바 ‘사법 관료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고등법원(2심)과 지방법원(1심) 중 하나를 택해 계속 근무하도록 하는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반드시 정착시키겠다고 하면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는 법조일원화나 법관의 내부적인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법관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법관 인사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도록 예측가능한 원칙에 따라 공정·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형식적인 서열·기수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상고허가제

김명수 대법원장은 연간 4만여 건에 이르고 있는 상고심 적체 문제 개선 역시 중요 과제로 꼽으면서, 1990년 폐지된 상고허가제를 가장 이상적인 제도로 꼽으면서, 현실적 대안으로 고등법원 상고부 혹은 상고법원 설치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고법원 법안은 2016년 5월 19대 국회 만료와 함께 폐기되었는데, 정치권에서는 ‘고위법관 자리 늘리기’라는 비판을, 법조계로부터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의 침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점에서는 상고심 적체 문제를 비교적 유연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념적 편향성 논란 및 코드인사

김 대법원장이 고강도 사법개혁 추진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과거 판결들에 따른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과거 재판에서 개혁적인 성향을 드러낸 사실이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근무하던 2015년 삼성 에버랜드가 직원 개인정보를 외부 이메일로 전송했다는 이유로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을 해고한 사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라며 해고무효 판결을 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사건에서도 “전교조는 이 처분으로 교원노조법 등에 따른 노조 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됐고, 대내외적 법률관계에서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으며, 조합원은 다양한 법률적 분쟁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면서 전교조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이 제기한 과거사 관련 민사사건에서는 배상액을 축소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는데, 특히 2011년 일명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국가가 위자료로 150여억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200여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1심보다 배상액이 줄어든 것이었다.

또 같은 해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계엄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에게 국가와 전두환 전 대통령 및 이학봉 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이 총 3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 판결 역시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1심에 비해 배상액을 줄였다.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저에 대한 우려는 알고 있지만,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경력이 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아니다”라며 “재판만 해온 사람에게 이념적인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8월 21일 법무부는 신임 법무실장에 우리법연구회 판사 출신인 이용구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검사가 아닌 사람이 법무실장이 된 것은 1967년 법무부에 법무실이 설치된 지 50년 만에 처음이다.

이용구 실장은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연공서열식 대법관 인선에 반대해 젊은 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린 4차 사법 파동 때 이를 주도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국회 측 소추위원단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낸 김형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5월 판사직 사표를 내고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됐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 때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승승장구했던 점에 비춰 현 정부에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 내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연구회가 아닌 국민의 대법원장이 되려 한다”면서 능력대로 인사를 할 것임을 천명했다. 또 대법관 인선 과정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뜻이 다를 때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겠다고도 했다.

일단은 그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운영을 실질화해 대법원장 개인이 자의적으로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한다는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이후 대법관회의 심의를 거치는 방안도 고려해보겠다고 한 만큼 ‘코드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심화 가능성

요즘 의뢰인들이 재판장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명예훼손·모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같은 정치적 사건, 기업 관련 사건 그리고 노동사건에서 그 목소리는 더 커진다.

그러나 필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인사라고 하여 사법부의 이념적 편향성이 더 촉진될 것이라는 것은 과한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과거 사법시험 3차 시험에서 ‘이념적 편향성’을 이유로 불합격시키는 필터링을 멈춘 순간부터 사법부는 사회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다수의 국민이 친사회주의적인 정부를 선택한 시점에서 사법부만 과거의 이념적 성향을 고수할 것을 기대하는 자체가 애초에 무리인 것이다. 새뮤얼 스마일즈가 말한 것과 같이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반영하며, 국민보다 수준이 높은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국민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사법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전 사회가 기울어지고 있는데 사법부만 탓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야 할 때다.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MBC 시청자위원회 위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