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한국사회 문제, 기독교 정신으로 풀자”
“복잡한 한국사회 문제, 기독교 정신으로 풀자”
  • 이근미 소설가·미래한국 편집위원(10기)
  • 승인 2017.10.11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 탐방

1988년에 태동하여 1989년에 발족한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는 조용하고 진중한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9년째 월례회 때마다 강사를 초청해 강의와 토론을 하며, 한편으로는 심포지엄과 강좌를 열어 한국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왔다.

최근 월례회 주제를 살펴보면 ‘통일한국의 위상과 과제, 이슬람의 한국 침투 실태 및 대책, 한국교회 발전을 위한 크리스천 지도자의 나아갈 방향, 일본의 정치적 변화 속에서의 일본 선교에 대한 한국 교회의 역할, 사회 변동과 그리스도인의 책임’ 등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통일 방안과 선교 해법 등 다양하다.

연구회의 창단 멤버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서울대기독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이들이다. 고대 중근동전문가인 장국원 박사, 한글학자 이응호 명지대 교수, 임한수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 유은상 서울여대 교수, 양병섭 목사, 임정하 목사, 백준선 장로 등 60여 명으로 출발했다.

냉전 해소를 역이용한 사람들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는 출발 때부터 지금까지 사무실을 마련하지 않았고 따로 유급 직원을 두지 않았다.

1989년에 기독교한국사회문제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여 <교회와 한국사회>라는 잡지를 격월간으로 발간했다. 1993년에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로 단체 이름을 바꾸고 잡지명도 <교회와 한국문제>로 변경했다.

매호 2000부씩 발행해 무료로 한국 교회와 여러 기관,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잡지 나올 때를 기다린다. 정책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된다”는 독자들의 호응이 있었지만 1994년까지 총 25호를 발간하고 중단했다.

서울여대 교수와 서울여대 대학원장을 역임한 유은상 회장이 현재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 수장을 맡고 있는데 “단체가 계속 되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해 무리가 가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연구회의 창단 동기는 현 시대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사안들이다. 올림픽 열기도 뜨겁던 1988년, 냉전이 해소되면서 서울올림픽에 역대 가장 많은 국가가 참가했다. 변화를 계기로 우리나라 진보신학자들이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와 해외에서 만나 얼싸안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은상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전부터 동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박해를 함께 이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화해가 아닌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냉전이 끝났는데 버젓이 공산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북한의 대표들과 얼싸안으며 냉전 해소를 운운하는 건 반역사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련은 다른 활동은 금지했지만 1941년부터 예배의 자유는 줬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예수 믿는 사람을 미제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고,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기독교 말살을 위한 도구인데 그 사람들을 만나 화해 운운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하여 모이게 된 겁니다.”

1989년 4월에 발간한 <교회와 한국사회> 창간호에 실린 설립 취지에서 ‘엄연한 교회의 사회에 대한 책임 앞에서 많은 교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고 다른 일부의 교회는 소위 민중신학, 해방신학 등 좌파적 신학체계로 정치적으로 일부 재야세력과 연계할 뿐 아니라 통일운동에도 과격학생운동에도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유은상 회장은 북한의 민족 개념에 남쪽이 동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공산주의의 기본 개념은 계급입니다. 2006년에 북한에 가서 역사박물관을 돌아봤는데 김일성 일가 개인숭배로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개인숭배는 민족주의가 타도해야 할 대상입니다. 민족주의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 계급주의죠. 그런데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하지 않은 가운데 민족이라는 단어가 교회로 들어오는 건 큰 문제였습니다. 교회가 잘못 판단하면 큰 혼란이 발생합니다.”

1989년 설립, 시민대학 개설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지 아래 ‘기독교적 정치권력의 정당성, 나라의 모습, 사회의 상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 모색’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1989년 두 차례의 공개 세미나를 시작한 데 이어 1년에 한 두 차례 학자들을 초청해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2001년부터 시민대학을 개설해 일반인 대상 강좌를 시작했다.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이나 여전도회관 등의 장소를 빌려 현재 7기까지 배출했다. 8주 과정에 매번 60여 명이 등록하여 25명 정도 졸업했다. 앞으로도 강좌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지만 수강생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연구회는 14명의 이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창단 30년이 다가오는 만큼 대부분의 이사가 70~80대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다행히 이재순 목사를 비롯한 40대와 50대 10여 명이 새롭게 참여했다.

유은상 회장은 “우파는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교회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연구회의 목표는 선교센터를 마련해 교역자들의 재교육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시민교육을 고정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유은상 회장은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우파는 기독학생들 밖에 없는데 교회는 절박함과 목마름이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월례회 강사를 초청할 때마다 뜨겁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한다는 유 회장은 영향력 있는 청중이 모여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기독교 정신으로 한국 사회 문제를 풀어나갈 의지를 가진 이들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기독교한국문제연구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지 아래 ‘기독교적 정치권력의 정당성, 나라의 모습, 사회의 상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 모색’을 꾸준히 고민해왔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