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④ 나라가꾸기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④ 나라가꾸기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국 55년, 이제는 나라가 할 일 해야
▲ 1975년 월남 패망 직후 나라잃은 베트남인들이 홍콩으로 밀려들고 있다. 연합/사진
‘나라가꾸기’는 우리 운명공동체인 국가의 발전에 관한 소고(小考)다. 국가 발전은 상호작용(相互作用)이다. 국가가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이 국가를 사랑할 때 국가는 발전하고 나라는 가꿔질 것이다.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나라, 나라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국민들의 조화(調和) 속에서 국가는 발전했고, 세계를 제패하며 대륙을 호령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는 극대화되고 욕구와 목표는 현실화됐다. 한 명의 병사도 끝까지 보호하는 국민을 향한 사랑 앞에, 긍지에 찬 얼굴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합창하는 미국인들은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리고 그 부러움. 조국에 대한 열정(熱?)과 긍지(矜持)의 정신(精神)으로 단합(團合)된 부러움을 이제 우리가 받고 있다. 월드컵 16강만 올라도 소원 없다던 대한민국에 23+1명의 태극전사는 4강신화를 만들며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줬다. 대립과 반목이 사라지고 통합과 도약의 발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이 발판 위에 건설할 신 한국은 우리가 가꾸어 가야 한다. 서해 무력도발 순직자 유해, 대통령도 외면애국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에 대한 위로에서 만들어진다. 99년 연평해전 당시 다친 군인들을 찾은 조성태 장관의 위로에, 한 병사는 “지금이라도 달려가 조국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9일 발생한 서해무력도발 이후 영결식에는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등 정부와 군 고위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은 채 화환만을 보냈고 정치권 인사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해군 참모총장이 준비위원장을 맡은 해군 장에는 의전(儀典)상 합참의장 등 윗사람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98년 당시 국방부장관과 육참총장은 천리행군 도중 순직한 특전사 대원 장례식에 참석했고, 96년 강릉무장공비 사건 당시 제1군 사령부장에도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이 자리를 함께 했었다. 해외에서 순직한 전사자가 본국으로 송환될 때, 미국의 대통령은 성조기에 쌓인 주검 앞에 나가 예우를 갖춘다. 그러나 이번 서해무력도발 시 김대중 대통령은 안치된 순직 장병 조문도 하지 않은 채, 월드컵 폐막식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장병들이 안치된 국군수도통합병원과 김대중 대통령이 출국한 서울공항 모두 ‘성남’에 있었다는 사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쓸쓸한 마음을 갖게 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국기 게양식 조차 사라졌다. 작년 3월 학기가 시작되면서 교육부는 ‘규정상의 국기 게양 하강식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령을 개정, 초·중·고·대학 등 학교에서의 국기 게양 강하식를 없애버렸다. 구멍 뚫린 자국민 보호해외에 거주하는 재외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대한민국은 멀기만 하다. 작년 10월 중국에서 마약혐의로 체포돼 사형당한 신 모 씨 사건의 경우, 주 중국 대사관은 사건의 진행 절차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만 해도 탈북자를 돕던 목사와 전도사가 체포돼 6개월 이상 구속돼 있었고 미국의 상 하원에서까지 관심을 표명했지만,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성명 조차 내지 못했다. 6·25전쟁 납북자의 경우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 3월, 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측에 의해 8만 여명의 납북자들이 실명으로 기재된 6·25사변 피 납치자명부가 공개됐을 때도 정부는 ‘이산가족 차원의 단계적 해결’을 주장하는 소극적 대책으로 일관해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전쟁실종자 송환대책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결국 이들 납북자명부의 DB작업도 민간단체인 가족협의회가 직접 나서야 했다. 북한을 떠나 중국 등 제3국을 떠돌고 있는 10만 여명의 탈북자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미온적이다.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이들에 대한 보호는 우리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와 국제사회에 떠맡겨져 있다.국가유공자 인정에 20년지난 6일 행정소송을 통해 국가유공자가 된 김병주씨(76·서울 동대문구)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20여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82년 처음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냈을 때 육군본부에서 돌아온 것은 ‘군 병원에서 치료받은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이후 전우들의 증언과 함께 보훈처에 유공자 신청을 냈지만 또 한번 거절당했다. 이후 김씨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인(知人)들의 증언과 몸 속의 이물질이 폭탄파편으로 인정돼 드디어 20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씨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유공자를 찾아내 위로하고 치하해도 부족할 텐데 오히려 ‘거짓말 하는 것’아니냐는 시선을 보낸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겠는?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