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의 변화편지 - 노를 예스로 바꾸는 불편한 방법
김용태의 변화편지 - 노를 예스로 바꾸는 불편한 방법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10.2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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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랍비를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기도할 때 담배 피워도 되나요?” 대답은 물론 “야, 안돼.” 다른 사람은 랍비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담배 피울 때 기도해도 되나요?” 랍비가 무어라 대답했을까?

두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한 사람은 ‘노’라는 대답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예스’라는 대답을 들었다. 단지 말의 순서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랍비에게 물어본 첫 번째 사람은 디폴트값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두 번째 사람은 담배피우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그것이 예스와 노를 나누는 결과를 가져왔다. 상대방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 김용태연구소 소장 김용태

저 사람은 영업하려는 사람이야, 내 돈을 가져가려는 사람이야 라고 인식된다면 어떤 제안에도 ‘노’라는 답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 사람에게는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을 제안해 주려는 진정성이 보여 라고 인식된다면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예스’라는 답을 얻을 것이다.

기업들은 모두 자기 제품이 잘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제 고객들의 지식이 많아지고 파워가 세지면서 내가 잘났다고 하는 과거와 같은 마케팅방식으로는 ‘노’라는 대답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또 살아가면서 계속 ‘노’라는 대답에 부딪힌다면 한번 거꾸로 가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즉, 역발상이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의심해보고,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부정해보고 몸을 낮춰야 한다. 이 좀 불편한 방법이 ‘예스’라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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