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영상으로 정리하는 것은 역사적 과제”
“한국영화 100년, 영상으로 정리하는 것은 역사적 과제”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7.10.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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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한국영화역사연구원 이사장
▲ 정중헌 한국영화역사연구원 이사장

매년 10월 27일은 ‘영화의 날’이다. 지난 1963년부터 기념일로 정해 각종 기념행사를 진행해왔으나 영화인협회에서 대종상 시상과 연계하여 날짜를 변경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날을 잡아 행사를 진행한 경우가 많아 ‘영화의 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바래지는 느낌이다.

당시 정부와 영화인단체가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삼은 것은 연극에 영화 장면을 끼워 넣은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1919)를 단성사 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날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연쇄극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의 형태이지만, 일부나마 영화 장면을 사용한 것이 한국영화의 시발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날을 한국영화의 시작일로 삼은 데 따른 것이다. 더불어 내후년이면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다.

그러나 한국영화 중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 대부분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의리적 구토>에 사용한 필름은 물론 무성영화시대를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아리랑>(1926),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 등 한국영화 역사에서 나름대로 획을 그을 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소실되어 어떤 모양과 수준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1950-60년대 등장한 주요 감독들의 데뷔작이나 대표작 중에서도 흔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영화 역사를 영상으로 정리하겠다는 취지로 사단법인 한국영화역사연구원이 설립되었다. 영화역사를 연구하는 교수, 평론가, 관심 있는 영화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사장은 정중헌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정 이사장은 조선일보의 문화부 기자,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서울예술대학교 부총장을 거치며 문화예술계와 학계에 두루 발을 넓혔다.

- 내후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영화 연구 분야에서는 그에 대해 이견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일제시대였고, 영화제작 기술들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일본인들이 영화제작에 나선 경우도 있었고요.

그러다보니 ‘한국영화’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가 논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국(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무엇이든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속지주의, 인력과 자본이 한국 것으로만 이뤄진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혈통주의적 시각이 혼재하는 상태입니다.

<의적 구토>는 영화 장면을 사용한 연쇄극

‘영화의 날’ 제정의 근원이 된 <의리적 구토>는 연극 중에 영화 장면을 넣은 연쇄극입니다.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의 양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보면 영화 장면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독립적인 형식을 갖춘 ‘영화’로 보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춘 <국경>(1923)을 한국영화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일본인들이 만들었고, 일본의 조선통치를 홍보하는 선전 요소가 강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인이 만든 식민통치 선전영화를 한국영화의 효시로 본다는 것은 명쾌하지가 않습니다. 감성적인 요소가 작용한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형식적인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의리적 구토>를 한국영화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 역사 속에도 나라 잃은 아픔이 묻어 있는 것이지요.

- 한국영화역사연구원을 설립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지난 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배우 안성기 씨의 활동을 정리한 ‘한국영화의 페르소나-안성기 회고전’이 열렸을 때 감독, 배우, 평론가 등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해 안성기 배우의 60년을 축하했습니다.

그때 배창호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서 안성기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떤 연기 변화를 보여줬는지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기억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행사 말미에 안성기 배우가 출연한 120여 편의 영화에 등장했던 이미지를 5분 정도의 길이로 편집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설명보다 선명하게 안성기 배우의 연기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자주 보면서도 역시 영상의 힘은 강렬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한국영화 역사도 영상으로 정리하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옛날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 같은데요, 영상자료원의 상영도 있고, 여러 행사를 통하거나 유튜브 같은 곳을 통해서도 접근 가능하지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유통 채널이 그만큼 다양화되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반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원형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저 ‘지나간 옛날 한국영화를 보았다’는 정도의 기억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보다는 연대별, 주제별로 정리하면 한국영화의 지나온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만추>(1966), 아만희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지만 원본 필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작으로 꼽는 <아리랑>(1926)의 일본 상영 광고.

- 구체적 생각을 정리하고 계신 듯합니다.

영화필름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영화와 관련된 여러 기록이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원로들이 정리한 한국영화 역사서들도 있고 뒤이은 후속연구, 원로들의 구술, 당시 신문이나 잡지 등에 남은 기록 등 편린으로 남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한국영화사를 복원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영화 100년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늦어지면 오로지 옛날 기록으로만 살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첫 사업으로 한국영화 역사를 정리하는 영상 다큐멘타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위대한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을 했고 이미 초창기 내용을 다룬 1부의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1부는 이석기 감독이란 분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정리한 내용입니다만, 한국영화 역사를 정리하는 문제를 특정 개인의 희생과 열정만으로 밀어두기에는 영화연구자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체계적인 자문과 지원을 통해 계획하는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힘을 합치겠다는 것입니다.

- 젊은 영화인들이 한국영화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보십니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영화는 유례없는 호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작 규모나 기술 수준도 높아졌고, 흥행 규모도 대단합니다. 외형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 시스템, 영화의 수준도 함께 높아졌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영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관객들도 공감하고 있고,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배우나 감독, 기술팀 중에서 외국에서 활동한 사례는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요. 한국영화는 세계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고 봐도 과장은 아니지요. 한국영화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당수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의 수준이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과거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없는 탓이겠지요. 한국영화의 역사는 지독한 가난과 억압,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옛날 기록이나 회고를 보면 대부분 뭔가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가득합니다.

근대의 외래문물로 소개된 영화가 사회.문화적으로 동화되는 과정이 험난했고, 경제적 기반이 미약한 탓에 제작자본을 구하거나 흥행 유통을 통해 제작비를 환수하는 문제도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정치적 격변을 거치는 과정에서 영화가 사상적, 이념적 갈등의 요소가 되는 일도 잦았고요. 지금의 한국영화는 그런 여러 과정을 헤치며 이룩한 성과라고 봐야 합니다.

-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노력과 시간, 비용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가가 어려운 과제입니다. 설득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한국영화 100년을 의미 있게 맞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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