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베를린 한인회장 정동양 교수(한국교원대)증언..."송두율은 독일에서 왕따의 대상"
前 베를린 한인회장 정동양 교수(한국교원대)증언..."송두율은 독일에서 왕따의 대상"
  • 미래한국
  • 승인 2003.10.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포사회에서 송씨 학문적 성과 인정하지 않아”국정원 등에서 송두율씨를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에서는 여전히 그가 남한과 북한의 중립지대에서 민족문제를 성찰해온 뛰어난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문제다. 이와 관련 前 베를린(在獰)한인회장을 지낸 한국교원대 정동양(鄭東陽) 교수는 “최근 한국의 친북적 성향을 띤 학계와 언론에서 송씨를 마치 제3국에서 학자로서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조국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수구초심(首丘初心) 해온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며 학계와 언론의 편향된 시각을 비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송씨의 공식 신분은 Ausserplanmaessiger Professor로 Ausser는 영어의 beyond, planmaessiger plan에 해당한다”며 “한국어로 번역하면 특임교수(비정규직)“라고 밝혔다. 이는 독일 대학의 경우 학교가 이미 정한 수를 넘어 교수를 채용하고자 할 때 특임교수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특임교수는 대학 안에서 다른 교수들과 똑같은 권한과 의무를 행사 할 수 있으나 임금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독일 대학의 경우 교수의 등급을 C1, C2, C3, C4의 네 단계로 나누며 이 중 초임교수인 C1이 가장 적은 임금을 받고 특임교수는 C1의 절반 또는 1/3정도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송씨는 베를린에 살며 뮌스터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C1교수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임금으로 매일 출근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그간 송씨의 행적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에서 뮌스터까지 독일의 고속열차를 이용하더라도 4시간 가량 걸린다는 점도 매일 출퇴근을 하며 강의를 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특히 C4급 교수는 그 대학의 종신교수이지만 나머지 교수들은 교육당국이 수시로 바꿔 정해주는 임지에서 해당 지역의 대학과 일정기간 동안 계약을 하며 자주 대학을 옮겨 다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독일에서는 한 대학에서 너무 오래 강단에 설 경우 자신과 같은 학풍의 교수만 초빙하게 되는 이른바 ‘학문 간의 근친상간’ 때문에 대학과 학문의 발전이 지체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송씨가 자신의 말대로 뮌스터 대학에서만 20년 정도 교수로 근무했다면 독일 사회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송씨가 뮌스터 대학에 20년가량 재직하고 있었다는 점도 의혹의 대상이다. 정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그가 독일에서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교수와는 거리가 있고 세계적인 학자라고 평가하는 한국 학자들의 발언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말해 송씨의 학문적 업적이 독일 사정에 어두운 친북성향의 국내 학자들에 의해 과대평가 됐음을 지적했다. 재독한인사회에서 송씨의 입지와 관련 정 교수는 “그가 그 동안 독일에서 뭘 했는지에 대해 한인사회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송두율 씨의 경우 학문적 성과도 미미했으며 그 동안의 친북적 성향으로 인해 교포 사회에서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송두율씨와 관련해 의혹이 커지는 배경에 대해 “당초 해외민주인사로 알려졌다가 친북인사로 지목되기까지 송 씨가 수시로 말을 바꾼 점도 한 몫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