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주권’ 법제화할 때
‘시청자주권’ 법제화할 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11.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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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공영방송 독립 어떻게 할 것인가

수신료는 준조세가 아니라 공영방송 서비스의 대가여야 한다

무엇이 공영방송이냐 하는 문제는 언론학자들 사이에서도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크게는 공영방송의 재원이 공공적일 때 공영방송이라고 보는 입장과, 방송의 콘텐츠가 공익지향성을 가질 때 공영방송이라는 입장이 있다.

많은 나라가 공영방송 또는 국영방송체제를 운영한다. 그 이유는 방송이 보편적 서비스로서 모든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과거 전파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방송의 공익적 사용에 방점이 찍힌 까닭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송 캐리어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다매체, 다채널의 시대에 공영방송의 당위론은 그 소구력을 크게 잃었다. 다만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본다는 입장에서 공영방송의 존재론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흔히 ‘1공영 다민영’의 방송시장 질서가 옹호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도 사실 그 정당성의 소구는 빈약하다. 무엇이 공영방송이길래 1공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왜 2공영, 3공영은 아니라는 것인가.

우리는 KBS를 공영방송이라 칭하지만, EBS는 공영방송이라기보다는 교육방송이라는 타이틀로 부른다. 수신료의 일부는 EBS에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수신료의 정체에 대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법상 수신료는 TV 수상기에 대한 특별 부담금으로 책정되어 있다. 즉 모든 국민과 법인은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신료를 내야 한다. 이는 수신료가 TV 수상기에 대한 ‘특별 소비세’나 ‘보유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의 수신료가 TV 수상기 보유세라는 입법 취지는 한마디로 코미디와 같다.
TV 수상기로 TV보다 주로 VOD 영화나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황당하기 때문이다. 이 법의 논리를 학교급식에 적용한다면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모든 학교급식은 유상급식을 의무로 하되, 의무 급식료의 정당성은 학생에게 ‘숟가락이 보유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게 된다.

영국도 이러한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그 해법은 ‘인두세’에 속한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최근 모바일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로 TV를 보는 이들에게 수신료를 걷을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면서 BBC의 수신료의 법리적 정당성도 흔들리게 됐다.

이러한 문제로 공영방송의 수신료는 공영방송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다시 말해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영방송 시청을 포기하는 대신 수신료를 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방법론으로 어려웠지만, 앞으로 지상파 디지털이 자리를 잡게 되면 시청자 댁내 셋탑박스를 통해 KBS 수신 거부자는 설정을 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시청자에게는 수신료를 걷지 않는 옵션이 주어지게 된다.

수신료-전기요금 합산 징수 폐지, KBS는 자기경영 책임의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사실 KBS는 유선방송과 위성방송 IT채널 등을 통해 콘텐츠 사용료를 받아가고 있다. KBS 드라마는 재방송으로 유선채널에서 유료로 서비스된다. 또 광고수입도 있다. 이렇듯 KBS는 자신의 재원 조달의 루트를 방송시장에 의지하는 것이 정상이다.

왜 KBS는 자회사들을 상장시키지 않는가? 왜 KBS는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기책임의 원리로 재정을 운영할 생각은 않고 국민부담에 의존하려 하는가. 한국방송공사법이 그렇다고 하면 한국방송공사법을 개정해서라도 KBS의 재원 조달에 자기책임 비율을 높여야 한다.

더구나 지금처럼 한국전력공사에 위탁해 수신료를 걷고 체납하면 전기료를 끊는 행위는 KBS의 권리남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는 그러한 부당한 업무계약을 존속하면 안 된다. 모든 공사는 자기경영책임의 원리로 운영되어야 하며, KBS 역시 공사로서 그러한 의무가 요구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 등이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공영방송은 죽었다는 의미로 근조 리본을 달고 참석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면 민영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그 콘텐츠에서 ‘보편적 서비스’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보편적 서비스란 시청자들의 시청에 기술적, 환경적, 법적 차별이 없는 상태와 함께 시청자 일반이 지지하는 도덕적, 정치적 입장과 충돌하지 않고 중립적 상태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다만 사실에 근거해서 진실을 알리려는 저널리즘적 태도는 언론의 자유와 편성권의 독립 차원에서 지지된다. 다시 말해 방송 제작자가 진실을 보도한 결과, 그것이 국민들의 도덕적, 정치적 가치와 충돌한다고 해서 그러한 공영방송이 비난받거나 제제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KBS는 종종 이러한 원칙에서 일탈한다. 여기에는 KBS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이념노조와 KBS내 각종 직능협회의 특정 이념편향적인 정치적 활동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은 특정 정치적 이념을 표방하라는 것이 아님에도, 이념형 노조와 정파적 협회들의 KBS에 대한 사유화 현상은 심각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KBS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요구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영국 BBC가 총선에서 노동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캐머런 정부로부터 1조원의 복지예산 삭감과 BBC의 인사, 예산 거버넌스를 자율에서 오프콤이라는, 우리의 방송위원회로 이관시키는 결정이 이뤄진 것은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면 정치적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공영방송의 운영과 지원’이라는 법적 개념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은 법적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공영방송’이라는 법률적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이라는 법적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의 자체가 연목구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공공의 자격에는 법적 규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방송법은 KBS는 한국방송공사법, EBS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같이 개별 방송공사법 등이 존재하며 MBC, YTN과 같은 방송사들은 민간 자본도 함께 주주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아리랑TV나 국회TV, 국방TV와 같은 방송사들은 정부 산하 소속이다.

심지어 홈쇼핑에도 정부기금 출연의 ‘공영 홈쇼핑 TV’도 존재한다. 서울시는 자체 방송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은 공영방송이고, 무엇은 국영방송이며, 또 무엇은 민간방송인가.

TV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경우, 이 TV 수신료를 누구에게 얼마나 걷어서 어떤 방송을 지원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바로 공영방송의 핵심적 의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TV 수신료의 이용을 결정하는 자가 해야 한다.

지금같이 KBS가 공영방송의 독자적 주체가 될 이유가 없다. 어떤 방송사든 공영성에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겠다면, 이를 심사해서 수신료를 지원하면 된다. 그것이 오히려 공영방송의 가치를 방송사에서 콘텐츠로 옮기는 바람직한 결정이며 다매체, 다채널시대에 공영방송의 사회통합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효율적이다. 그러한 ‘공영방송에 대한 운영과 지원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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