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덕장과 지장
이용진의 리더십 명상편지 - 덕장과 지장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11.20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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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두 사람의 리더십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유형이며 결과도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만들었다.

진나라 말기, 반란을 일으킨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항우다. 항우의 가문은 장수로 이름난 집안이어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다. 유방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항우와 유방은 군사를 나누어 각각 다른 방향에서 진 나라의 군대와 싸웠다. 이때 유방은 항우보다 한발 앞서 진 나라의 도읍인 셴양을 점령하고 진나라 황제의 항복을 받아 냈다. 이 소식을 들은 항우도 부랴부랴 센양으로 달려갔다.
 

▲ 한국경영인력연구원 원장 이용진

항우는 궁전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항우 부하들은 시황제의 왕릉까지 파헤쳐 보물을 훔쳤다.. 왕을 살해한 것도 항우와 그의 군사들이었다. 또 언젠가는 유방이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방까지 살해하려 고 했다. 이러한 항우의 생각을 감지한  유방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항우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 싸움을 초한전(楚漢戰)이라 한다. 왜냐하면 항우는 스스로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이라 불렀고, 유방은 사람들이 ‘한왕(漢王)’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력으로 보면 항우가 한 수 위였는데 유방을 따르는 무리는 점점 더 많아졌다.. 그것은 유방이 항우와 달리, 정책 하나를 펼치는 데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잘 살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방은 많은 농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군사력이 우세한 항우가 싸움을 이겼지만, 나중에는 유방이 유리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방을 돕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마침내 항우를 따르던 제후들도 유방을 따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항우가 유방에게 쫓겨 달아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방에게는 지략가인 장량이 큰 활약을 했다. 또 막판에는 명 참모 한신의 작전으로 북방 제국들을 공략해 분위기를 승세로 바꾸며 한·초의 흥망이 결정되었다. 기원전 202년,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파부침주(破釜沈舟) 등의 숱한 고사성어를 역사에 아로새겼으나 사면초가를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영웅이었고 유방은 천하를 평정했다. 


항우와 유방,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리더십을 비교해 본자

첫째 비전과 목표 달성에서는 항우는 단기적인 목표와 승리에 집착하여 지나치게 성급하게 전쟁을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판단을 잘 못하게 되는 패착을 많이 저질렀다. 그러나 유방은 어차피 자신은 항우와는 능력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단기적인 승리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을 펼쳤다.

두 번째 인재등용에서 항우는 그 사람의 능력을 안 보고 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평가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신이다. 이력이 바닥이고 낭인 같은 한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와는 반대로 능력이 있으면 신분 따위는 가리지 않았다. 한신이 항우를 떠나 유방의 수하가 된 것은 이 같은 이유다.

셋째 부하들과 백성들을 동기 부여하는 데에서는  항우는 자기 능력을 과시하며 부하들이 무조건 따라 오기를 명령했다. 그러나 유방은 부하들이 스스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판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 참여하고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동기부여 했다.

넷째 부하와 관계에서는 항우는 엄격한 상하관계로 상명하복의 인간관계를 맺었으며 후기에는 이런 것이 더욱 심했다. 그러나 유방은 동반자적인 관계로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했으며 왕이지만 군사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할 정도로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다섯째 영향력은 항우는 자신의 영향력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했으나 유방은 자신의 영향 밖이나 자신이 모르게 되면 솔직하게 말하고 부하들이 상호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시너지를 최대한 발휘하여 처리하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항우는 조직과 부하들을 통제하고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리더십의 발휘였다면 유방은 부하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일하게 하고 마음으로부터 울어 나오는 자발성과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심복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항우는 포상에는 너무 인색해서 왕의 직인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찍지 않아 직인이 다 닳아 없어 졌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물론 항우와 유방 중 어느 리더십이 좋으냐 나쁘냐 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제반 조건들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디지털 시대고 자율의 인공지능 시대라는 것을 고려 하고 창의력 발휘가 더욱 긴요하다면 유방의 자율적인 리더십이 더 유효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리더는 부하들의 성과로 평가받고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고 조직의 성장과 발전의 기반을 이루어 간다면 더 이상의 바램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덕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장(智將)과 용장(勇將)은 덕장(德將)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이런 사례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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