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權勞) 유착 금융노조 위험수위 넘었다
권노(權勞) 유착 금융노조 위험수위 넘었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7.11.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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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나비효과는 ‘미세한 나비의 날개 짓이 시차를 두고 폭풍우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초기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감에 따라 좁혀지기보다 확대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공식 방문지는 인천공항공사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임기 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의 첫 공식 방문지에서의 발언은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왜 인천공항공사 청소용역 근로자인가’는 의문이 남는다. 그가 언급한 청소근로자는 ‘무기직’(無期職)이다. 비정규직이지만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다. 그리고 급여 등에서 처우가 열악하다고도 볼 수 없다. 친노(親勞) 정권의 친노 정책은 이렇게 예고되었다.

나비의 날개 짓은 폭풍우로 연결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노사정(勞使政) 대화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사회적 합의인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허용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은 여지없이 폐기됐다. 사(使)에 대한 노(勞)의 완승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근로자의 능력 부족’ 등 해고 사유가 폭넓게 인정되지만 한국에서 정규직 해고는 불가능하다.

결국 양대 지침에 합의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은 매몰비용이 되고 말았다. 양대 지침 폐기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구조개혁은 더 어려워졌다. 또 다른 폭풍우는 친노 정권을 등에 업은 도를 넘는 금융노조의 경영간섭이다. 금융지주회사 회장 선임을 둘러싼 노사 간의 기 싸움은 가뜩이나 낙후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 정지원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이 2일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부산 남구 문현동 국제금융센터 (BIFC)를 찾았지만 노조의 저지로 입장하지 못하 고있다./ 연합


금융노조의 경영권 개입

지난 10월 청와대의 노동계 초청 행사에 참석한 금융노조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셀프 연임’ 문제와 각종 인사 비리 문제를 일으킨 KEB하나은행 문제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갖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조가 공개적으로 금융 CEO들을 손봐달라고 요구한 셈이 됐다.

11월 3일 경찰이 KB국민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은 지난 9월 KB 노조가 윤종규 회장의 연임 찬반을 묻는 직원 설문조사에 사측이 개입했다며 은행 인사담당자 등을 고발한 데 따른 조치이다. 압수수색을 할 정도의 위중한 사안인가도 그렇지만 그 시기가 금융노조가 대통령을 만난 뒤 이뤄졌기 때문에 노조가 내부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경찰의 ‘외풍’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금융지주회장 선임 등을 위해 11월 20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KB금융지주 정관을 개정하고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는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다.

KB금융지주 회장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데 참여하고, 선임된 사외이사가 다시 차기 회장을 선임하면 ‘회전문 인사’가 된다는 것이다. 정관 개정을 위한 구체적 주주제안은, KB금융지주 회장이 이사회 아래 리스크관리위원회, 평가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위원을 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노사가 대등한 자격으로 협상할 수 있는 ‘별도의 채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 몫의 사외이사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KB금융 노조는 현재 0.18%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16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지분 요건이 완화돼 0.1%의 지분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노조 출신 관료와 정치인들이 노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금융노조 부위원장 출신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용득, 정재회 민주당 의원도 금융노조 출신이다. 노조 출신은 아니더라도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노동이사제 도입은 대통령 공약에 포함돼 있으며 국정과제에도 담겼다”면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앞당겨야 한다고 엄호사격을 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노동자 대표로부터 추천받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지난 9월 KB금융 소속 노조연합이 윤종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개최한 것도 대단히 상징적이고 또 이례적이다. 노사 간에 운동장이 노조에게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노조의 연임 반대는 꽃놀이패

노조는 정관개정의 명분으로 ‘회전문 인사 방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지주회사 회장이 연임되지 못하도록 지주회사 회장의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한 사람은 없다. 회장 연임은 주주가 결정하는 것이고, 연임이 되기 위해서는 경영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경영성과가 좋고 주주가 원한다면 회장의 연임을 사전에 배제해서는 안 된다.

KB금융지주의 회장 선임 절차를 보면 특정인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확대지배구조위원회(확대위)는 지난해 마련한 경영승계규정에 따라 내부 출신 18명, 외부인 5명 등 총 23명의 후보군을 대상으로 후보를 좁혀 왔다. 확대위는 복수의 위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현직 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임될 수는 없다.

지주회사 회장 선임에 노조가 관여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하지만 노조에게 CEO 연임(신규선임 포함) 반대카드는 ‘꽃놀이패’이다. CEO와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노조의 투쟁성을 과시할 수 있고, 연임을 앞둔 경영진의 양보를 얻어내 실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노조원의 평균 연봉이 8000만~9000만 원임을 감안할 때, 그들의 ‘도덕적 해이’는 금도를 넘었다고 봐야 한다.

ISS 반대의견 표명

KB금융지주 경영진과 노조의 내홍은 급기야 글로벌 의결권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를 끌어들였다. ISS는 모건스탠리의 계열사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바라’의 자회사로 기관투자자 1700여 곳을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 등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는 기구이다.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의결권자문사이다. ISS는 KB금융지주 노동조합협의회의 주주제안 안건 2건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노조가 추천하는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에 대해 “추천된 이사 후보의 과거 이력을 볼 때, 그리고 기존 이사회에도 법률 전문가가 있어 전문성이 중복되는 점을 고려할 때 주주가치 증진에 기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주사 정관을 바꿔 회장이 이사회 아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지배구조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안건도 반대했다. 회장의 영향력을 인위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주주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KB금융지주의 지분구조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9.79%)이고 JP모건체이스(6.65%)가 뒤를 잇는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외국인투자자가 KB금융 전체 주식의 68.91%를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결권 행사 때 ISS 의견을 상당 부분 참고한다.

KB금융 노조는 사측과 표 대결을 벌이기 위해 의결권 모으기에 나섰다. 주주제안은 노조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를 튼실하게 하고 소수주주를 대표해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많은 주주들의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대마진에 의존하고 있는 금융산업

금융권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커진 배경에는 친(親)노조 성향의 정부 출범이 있다. 하지만 노조가 외부 지원 세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근로자 이사제’가 법제화되지 못해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이 막히자 상법이 아닌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소수주주권을 활용해 사외이사를 추천하려는 움직임은 공감을 받기 어렵다.

그리고 최고경영진을 노동청에 고소해 사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전술은 품위와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외부의 지원세력을 등에 업어 노조의 이익과 영향력을 챙기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야를 좁혀 독배(毒杯)를 마시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의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금융CEO 선임에 노조가 개입해 판이 흔들리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낙하산 인사를 요청하는 꼴이 된다.

지금도 우리의 은행산업은 예대마진을 주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미래형 고부가가치 생산을 위해서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담보대출 같은 손쉬운 자산운영에서 벗어나 ‘생산적 금융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없고 미국에 있는 것이 대형투자은행(IB)이다. 모험자본을 공급할 금융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투자은행(IB) 업무가 활성화되면 기업의 성장주기에 따라 맞춤형 자금공급이 가능해진다.

기업의 ‘창업, 성장, 성숙, 구조조정의 단계’에 따라 크라우드 펀딩, 지분투자, 기업공개, 자산유동화, M&A, 부실채권인수 등의 토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스타트업 등 창업기업이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넘지 못하는 것은 창업 과정에서 자금조달과 시장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종합 금융지주회사를 만든 것은 바로 이 같은 토털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뜻이다.

굳이 투자은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터넷과 모바일 뱅킹의 활성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도전,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 등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은행이 조금만 방심하면 생사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부 지원 세력의 도움을 받아 사(使)를 이긴들, 은행의 경쟁력이 제고되지 않아 생존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이 내놓은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구조개혁’으로 좁혀진다. 이 같은 권고의 기저에는 노조권력의 과잉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숨어 있다. 금융노조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노조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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