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규칙보다 열정·비전이 삶의 질 좌우
<해외칼럼>규칙보다 열정·비전이 삶의 질 좌우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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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버자드(Lynn Buzzard) 한동대 law school 학장
▲ 린 버자드(Lynn Buzzard) 한동대 law school 학장
사회 성숙도는 도덕적 가치에 좌우법에 얽매일 때 인간성 메말라만일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옐로카드, 페널티 킥과 같은 규칙이 없다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축구의 “규칙”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기는 심판이 규율하는 규칙 이상의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 준 위대한 경기들은 축구의 ‘규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축구선수들의 열정과 헌신,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임은 결국 ‘마음’에 대한 것이다. 선수들은 단지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출전하기 보다는 승리를 위한 골을 넣길 원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삶과 문화도 마찬가지다. 규칙과 법은 틀을 제공하지만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국민성을 새롭게 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법’은 전 세계적으로 존중받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부터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 기회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법의 지배’를 옹호하고 있다. 이 ‘법의 지배’란 말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독재자, 경찰,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 임의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법은 출생지, 가족, 인종 등을 차별하지 않는 정의의 여신으로 형상화됐다. 즉, 모든 사람은 법 아래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꿈이다. 법은 존재하더라도 법관이나 검사가 시민을 동일하게 대우하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법의 지배’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단순히 몇몇 문서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공정하고, 지혜로운 것이며, 공평하게 적용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유명한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법적 기준이 없는 사회는 끔찍하지만 법적 기준, 그 이상의 것이 없는 사회는 인간에게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법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는 공식적인 규칙과 법들 이상의 더 높은 비전과 도덕적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의 지배는 행위의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포용하라고 우리를 도전시킬 수는 없다. 인간은 보다 높은 열정과 비전을 위해 창조됐다. 법은 행악자에게 벌을 줄 수는 있어도 영웅과 애국자를 만들 수는 없다. 규칙들이 훌륭한 축구경기를 만들 수 없듯이 법들도 고매한 인격과 꿈을 가진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는 정치 제도에서 ‘법의 지배’뿐 아닌 개개인과 공공의 삶을 위한 도덕적, 영적인 원칙들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영적으로 강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열정과 비전을 주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바로 도덕적인 기초이다. 우리는 법률의 지배와 의욕적이고 열정 있는 검사가 아닌 가치 있는 도덕 기준을 가르쳐서 개인과 공공의 부패를 줄일 수 있다. 이런 도덕 기준은 법률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가정과 교회, 예배처소, 중·고등학교, 성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법의 지배뿐 아니라 우리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지배 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은 질서와 공정함의 기준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 사회의 위대함은 법률의 수가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진실, 정직, 성실 등의 도덕적 삶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1789년에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는 “미국 헌법은 정부가 아니라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민주주의와 자유는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구경기의 위대함은 규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능가하며, 영웅적으로 경기하는 선수들에 의해 이뤄진다. 국가와 사람들의 위대함도 공정함과 평등을 보장하는 법의 지배 뿐 아니라 도덕적 탁월과 위대한 성결,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법률 대학, 법정, 입법기관, 경제·경영계에 있을 때 가능하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이 초기 미국을 보고 ‘미국은 선하기에 위대하다’라고 말했던 것을 한국도 듣기를 희망하다. 국민들에게 법의 규율과 함께 도덕적 탁월함이라는 효능 있는 약이 삶의 질 향상, 동등한 기회 부여, 정의로운 사회형성을 이루는 처방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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