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신 元老> 임병직 대사의 마지막 외교
<내가 모신 元老> 임병직 대사의 마지막 외교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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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태 鄭址泰
▲ 故 임병직 전 대사(우)와 정지태 이사
83세 노구로 WACL총회 진두지휘나라에 도움될 인사 자비로 초대내가 임병직 대사를 가까이 모신 것은 1976년 4월부터 작고한 9월 21일까지 6개월이 못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당시 한국반공연맹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임대사가 세계반공연맹총회(WACL) 의장으로 선출되어 대규모 국제회의를 치르기 위해 비서실을 보강할 때 비서실 책임자로 임명되었다.1976년은 유신체제 2기가 시작되는 해였다. 2년 전에 광복절 행사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쓰러지는 등 불행한 일이 겹쳐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여론은 한국의 유신정권에 대해 매우 냉담하였다.이런 상황에서 열린 세계반공연맹총회는 거국적인 행사였다. 총회 개막식 등 중요회의장이 개관된 지 얼마 안 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던 것만 보아도 얼마나 중요한 행사였나 짐작할 수 있다.임대사는 평생 쌓아온 모든 역량을 WACL총회의 성공에 쏟았다. 대표단 이 동시에 수백 명의 대표단 중 마지막 한 사람이 승차할 때까지 83세의 노구를 무릅 쓰고 승용차 옆에 서서 기다렸다. 노외교관의 세련된 매너와 능숙한 회의 진행솜씨 그리고 세심한 배려는 각국대표들을 매료해서 의장이 등장하면 모두들 “닥터 림”을 연호하곤 했다. 회의결과는 성공이었다.그는 타고난 외교관이었다. 건국초기에 외무부장관을 역임하였으나 모두들 “임대사님” 또는 그냥 “대사님”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한번 장관을 지낸 분은 아무개 장관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상례인데 임대사만은 유독 대사로만 불렸고 그 호칭이 그분을 가장 높여드리는 호칭으로 들렸다. 서대문 적십자병원 뒤에 있던 평동 자택과 을지로 6가 중앙의료원 내 ‘스칸디나비아 클럽’ 그리고 종로구청 근처의 요정 ‘장원’에서 임대사가 주최하는 크고 작은 연회가 자주 열렸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입지가 옹색했던 나라 형편을 걱정한 나머지 임대사는 조금이라도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외교사절이나 방한인사들을 초대하였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을 맡은 부인께서는 어려움이 많았을 터인데 늘 즐거운 마음으로 내조하였다.한번은 터키 상원의원이며 백만장자로 알려진 닥터 카심이 방한했다. 임대사가 지극한 정성으로 그를 대접했음은 물론이다. 닥터 카심이 한국을 떠나던 날 비행기 시간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어서 전송하는 사람이 없는 눈치였다. 닥터 카심이 비행기 시간이 너무 늦어 배웅 나올 필요가 없다고 극구 사양하였으나 임대사는 굳이 호텔에서 그를 픽업하여 공항에 나갔다. 당시는 귀빈실을 거쳐도 비행기까지 마이크로버스로 이동하였는데 임대사는 비행기트랩까지 가서 닥터 카심의 가방을 그의 좌석에 갖다 놓을 것을 내게 지시했다. 작별의 포옹을 푼 임대사는 문득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어 닥터 카심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우리나라를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반지는 얼마 전 나주 임씨 화수회에서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그 해 8월 중순 이승만대통령의 정치 고문을 지낸 닥터 올리버 부부가 국제문화협회 홍성철 회장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닥터 올리버는 임대사의 오랜 친구로 당시 어려운 우리 정부의 입장을 국제 사회에 홍보하는 저술을 하기위해 방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임대사 주최 닥터 올리버 부부 환영 만찬은 8월 14일 저녁 ‘스칸디나비아 클럽’으로 정하여 참석자 명단 확인과 좌석배치까지 완료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날이 육영수 여사 추모음악회와 겹쳐 부랴부랴 만찬을 16일 저녁으로 연기하게 되었다.오래전에 예정하였던 만찬을 하루 전에 번복, 다음날로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난처하고 민망한 일인가! 더구나 평생 외교관으로 예절을 중시해온 임대사에게! 평소 침착하던 그도 몇 번이나 비서실로 쫓아 나오기까지 했다. 8월 14일 저녁 육영수 여사 추모음악회를 관람하기 위해 세종호텔에서 닥터 올리버 부부를 픽업한 임대사는 이들 부부와 팔짱을 끼고 국립극장 계단을 오르다 쓰러졌다. 다음날 오후 순천향병원 중환자실에서 겨우 의식이 깨어난 임대사는 깨어나자마자 만찬의 진행상황을 묻더니, “…치영이”하고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나는 그 말이 윤치영씨를 당신 대신 호스트로 하여 만찬을 차질없이 하라는 지시임을 알아차렸다. 8월 16일 저녁, 닥터 올리버를 위한 만찬은 내가 본 중 가장 침통한 만찬이었다.그 후 임대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으나 마침내 9월 21일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을 떠났다. 떠나기 며칠 전 창 밖으로 보이는 교회당을 바라보며 교회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젊었을 때 교회를 다녔는데 그동안 교회를 멀리 했다고 하면서 내게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완쾌되어 퇴원하면 교회를 나가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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