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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l승인2017.12.05l수정2017.12.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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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bskim@futurekorea.co.kr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간이 가진 사랑의 힘을 확인한다. 두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영혼을 거둬오라는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간 세상에 버려진 천사 미하일이 구두 수선공 세몬의 도움으로 사람이 무엇으로 살 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자신을 위한 염려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개인간 구원의 힘이라면 정의(正義)는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다. 문제는 각자의 정의가 다르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정치는 다양성을 통일하는 기획이 된다. 비스마르크가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던 이유다.

100여 년전 톨스토이의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오늘 한국에서 ‘보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되묻는다면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보수의 정체성을 가진 정치인들과 시민들도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활동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롭게 하고자 하는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 섭리에 의해 협력을 이루어 ‘공동의 선(善)’으로 귀결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자유한국당은 탄핵심판으로 인한 정치적 파탄속에서 ‘보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화두로 갖게 됐다. (탄핵심판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 화두를 ‘신보수주의’로 풀어가려 하는 것 같다. 이는 낡은 보수와의 단절일 수 밖에 없으며 보수내 주류세력 교체라는 형식으로 그 내용을 담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저항과 반발은 필연적이다.

지금 보수를 통합하고 재건해야 하는 자유한국당이라는 정치적 집단 안에 어떤 이들이 좀 더 옳고 그른지, 그리고 나아가 누가 선(善)이고 악(惡)인지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선과 악의 판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성찰한 바와 같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무엇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따져보는 이성에 기반한다. 결과가 좋아야 공동의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과’나 ‘공동의 선’은 불완전하고 유한하며 상대적인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성찰은 자유한국당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갈등이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권력투쟁임에도 결국 ‘좋은 결과’를 위한 공동의 선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실패한 정치세력은 책임을 지고 퇴장해야 하며 대안의 세력이 최선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최선으로 만들려는 의지들이 필요하게 된다. 로마의 정치철학자 키케로의 말처럼 ‘정치적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지방선거가 대한민국의 선과 악을 구분할 ‘대(大)심문관’으로 다가오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가 실패한 구 보수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보수,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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