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회사, 스타트업 전설 꿈꾸다
'쓰레기통' 회사, 스타트업 전설 꿈꾸다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12.0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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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수퍼빈 대표이사 [인터뷰]

“식구(食口)의 의미를 알고부터는 가급적이면 만나는 사람들과 무엇이든 함께 나눠 먹으려고 해요” 서울 삼성동 도심공항타워 지하 2층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에서 주문한 토스트를 기다리며 김정빈 대표가 건넨 말이다. 아침 식사용으로 막 구운 따끈한 토스트를 받아든 김 대표와 함께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수퍼빈(Superbin)’ 사무실이 있는 24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바라본 사무실 전망은 근사했다. 인근의 코엑스, 무역센터, 아셈타워, 잠실야구장 등 강남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건물 24층은 이른바 ‘공유 오피스’로 유명한 패스트파이브. 탁 트인 전망과 큰 테이블, 바(bar), 세련된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두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색깔의 인테리어와 공간 활용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딱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 김정빈 수퍼빈 대표이사

“인공지능 기술로 사회와 문화 변혁을”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반으로 자른 토스트를 한쪽씩 들고 먹으며 회사 소개부터 해달라고 하자 “쓰레기통 만드는 회사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정빈 대표가 이끄는 수퍼빈(주)은 2015년 6월에 설립됐다. KAIST 권인소 교수팀에서 개발한 로봇 ‘휴보’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쓰레기의 자원화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설립한 공공기술사업화 기업이다. 단순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쓰레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재활용이 가능함에도 버려지는 자원의 문제에 착안한 것이다.

수퍼빈은 무관심 속에 버려지는 폐기물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폐기물 데이터 구축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CNN(회선신경망) 방식의 딥러닝, 해당 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를 구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 대표가 쓰레기통으로 지칭한 네프론은 수퍼빈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자판기로, 재활용 가능한 빈 병이나 캔, 페트병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품목별로 분류해 수거하고 현금으로 적립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재활용 처리 횟수가 늘수록 인식률도 비례해 올라가는 것은 물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캔도 정확하게 인식하여 캔이나 페트병을 짓눌러 재활용 직전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빈 병이나 페트병, 음료 캔을 투입하면 투입한 만큼 포인트로 돌려주며 포인트는 현금처럼 사용 가능하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쓰레기에 주목했을까? “창업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몇 가지 결심한 게 있었어요. 첫째 제조업을 하겠다는 거였죠. 지금 창업하는 친구들 보면 대부분 앱(App.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거나 게임 관련된 것에 국한돼 있어요. 많은 펀드들도 그쪽으로 가죠. 성공 사례도 거기서만 나오고요.

저는 철강회사 출신이에요. 그 전에는 섬유기술연구소에도 있었죠. 물론 그 전에는 컨설팅을 했었지만. 스타트업으로 프로덕트(제품)를 만들겠다는 게 첫 번째 결심이에요. 두 번째, 사회 문제를 푸는 기업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대기업이나 기존 제품을 흉내 내서 그것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식은 진정한 스타트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뭔가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이슈로 접근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환경 문제를 푸는 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안 거에요. 이거다 싶었죠. 환경 문제를 풀면서 수익을 내는 기업을 해보자, 제품 생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적인 콘텐츠까지 공급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까지 나아간 거예요.”

아닌 게 아니라 김정빈 대표는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연매출 수천억 원 대의 탄탄한 중견회사 코스틸 그룹 대표이사로 발탁돼 일찌감치 이목을 끌었던 전문 CEO 출신이다. 경력도 화려하다.

2001년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를 수료하고 2003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화재와 KOTITI를 거쳐 2011년 코스틸 그룹 경영총괄 부사장, 2013년 코스틸 그룹 대표이사 사장에 발탁돼 탄탄대로를 걸었다.

제조업인 철강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 솔루션을 찾던 그에게 자원 재활용을 소재로 한 아이디얼한 스타트업은 어쩌면 당연한 귀착점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원래는 스타트업 기업들에 투자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우리 후손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조금 오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제가 분명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 청년들은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판검사, 의사, 공무원이 되지 않으면 좋은 삶을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전 그렇게 믿고 있는 그들에게 다르지만 가치 있는 삶,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성공한 삶은 이런 것’이란 어떤 틀에 갇혀 있을 것이라 여겼던 청년들도 그리 만만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코스틸 그룹을 나와 스타트업 투자회사 운영을 꿈꾸던 김 대표는 창업에 뛰어든 젊은 친구들의 당돌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시장에 나와 창업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글쎄 저한테는 투자를 안 받겠다는 거예요. ‘당신이 하버드를 나온 것도 좋고 스물 여섯에 코넬에 들어간 것도 대단하고, 서른여덟이란 나이에 매출 8000억 원 하는 회사의 CEO를 한 것도 훌륭하다. 근데 당신은 창업을 해 본 적이 없지 않느냐, 나는 창업해 성공한 사람한테 투자받고 코칭을 받고 싶지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서 그러고 싶진 않다’는 거예요. 굉장히 정중하게 들려온 메시지였죠.”

이들과의 만남은 김 대표가 스타트업 투자회사 운영에서 직접 창업으로 계획을 바꾼 계기가 됐다. 김정빈 대표가 이끄는 수퍼빈의 ‘똑똑한 쓰레기통’ 네프론은 2017년 미래창조과학부 주관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데모데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인공신경망 분석에 근거한 복합적 물체 인식 시스템 및 방법’으로 특허청 기술특허를 획득했다.

▲ 2016년 11월 18일부터 과천에서 운영 중인 똑똑한 쓰레기통 네프론

제품 생산을 넘어 문화의 전파자로

버리고 치우기 급급했던 재활용 쓰레기를 포인트로 환급받아 현금처럼 사용한다는 점에서 네프론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해 11월 과천시와 MOU를 체결한 뒤 설치·운영 중인 네프론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전망도 밝다.

서울 동대문구, 은평구, 경북 구미시 등으로 확대 보급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제주도 서귀포시, 경기도 의왕시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영화관도 네프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2000여 대의 견적 요청을 받았다.

수퍼빈은 폐기물의 자원화를 넘어 하나의 새로운 재활용 문화를 만들기 위해 네프론이 설치된 ‘숲박스’라는 재활용 문화 스튜디오도 운영 중이다. 과천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숲박스에서는 네프론을 사용하고 자연스럽게 업사이클링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저는 쓰레기 문제가 일종의 문화적 형태의 문제라고 봤어요. 제품으로 푸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거죠. 문화를 바꿔야 해요.” 쓰레기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행동이 바뀐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돈이다”란 슬로건을 내걸고 포인트를 지급하는 아이디어도 그런 생각에서 나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공법으로 행동 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작은 문화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유도하는 현대 기업들이 오염의 주최가 될 뿐 환경 문제를 푸는 선도적 역할을 못 한다고 강조하는 김 대표를 바라보다 문득 그가 환경론자인지 궁금해졌다. “저 환경론자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젓던 그는 “혹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란 책 읽어 보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고전적인 교훈이 스타트업에서도 통용된다고 믿는 김정빈 대표는 창업 2년을 조금 넘긴 현재 놀랍게도 또 다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에겐 성공의 열쇠가 따로 있는 것일까?

“일단 운이 있어야 해요. 창업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경험치도 중요하고요. 사회와 시대를 이해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읽어낼 줄 알아야 하죠. 식견이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 싶은 거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거창한 건 없어요. 다만 우리나라 스타트업계 제조업 분야에서 레전드가 되고 싶은 욕심은 있죠.

물론 스타트업 레벨에서 말하는 겁니다.”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던 김 대표는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이 게임 회사가 아닌 제조업 회사를 창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롤모델을 세상에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은 기술로, 재활용을 쉽게, 세상을 더 이롭게”는 수퍼빈의 모토다.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바꾸고 싶다는 그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한국의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와 같은 청년 창업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이 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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