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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홍준표, 그는 미래를 헤쳐갈까

[인물분석]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l승인2017.12.05l수정2017.12.0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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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webmaster@futurekorea.co.kr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큰 승부를 다투는 야구 시합에서 더 이상 교체 후보가 없이 상대 타선을 잡아야 하는 투수 같다. 이닝마다 타자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장타를 얻어 맞기도 하고,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잡기도 하지만 점수를 내주고 있다.

관중들은 상대팀의 타자와 투수에게는 박수를 보내는 반면 홍준표 팀에게는 야유를 보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싸늘하다. 상대방을 쓰러트릴지, 자신이 당할지는 승부 때마다 지켜봐야 한다. 본인도 아슬아슬하지만, 지켜보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는 1954년 12월 5일, 경남 창녕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판표(判杓). 이후 합천으로 이사하여 초등학교를 그곳에서 졸업했고, 중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마쳤다.

서울에 자리 잡은 것은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에 진학하면서부터. 재학 중 사법시험에 몇 차례 응시했으나 기대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1982년, 제24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졸업 후. 병역까지 마치고 나서였다.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에 비하면 비교적 늦깎이 합격을 한 셈이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작은 경험담은 그의 생각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어느 겨울, 사법시험에 낙방한 뒤 허탈한 심정으로 아버지가 일하는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서 충격을 받았다.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고 한다. 홍 대표는 이 이야기를 지난 대통령 선거 유세 때 꺼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공감한다는 뜻이었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북핵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 연합

검사 시절의 소신 돌파

1984년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검사로 임관되고 부산지방검찰청, 광주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였다.

부임 직후 ‘판표(判杓)’에서 ‘세인의 표상’이라는 뜻을 지닌 ‘준표(準杓)’로 이름을 바꿨다. ‘준표’라는 이름에서는 ‘날랜 표범’이라는 뜻도, ‘세상의 표준’ 또는 ‘세상의 기준’이라는 느낌도 스친다.

검사 시절, 물불 가리지 않고 사건을 처리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루된 사건을 처리했고, 조직폭력배 소탕, 외국인 폭력조직 수사 등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보였다.

특히 광주지검에 근무할 당시 지역의 폭력조직이 지역 토호들의 권력을 동원해 압박을 가해오는 데도 흔들리지 않고 단죄한 부분은 홍준표의 성격을 보여준 케이스로 남아 있다.

그의 경력에서 특히 세간에 회자되었던 건은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알려진 권력형 비리 사건. 슬롯머신 업계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관계 인물들을 의법 처리한 내용이다.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비롯해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천기호(千基鎬) 경찰청 치안감, 그리고 대전지검 모 검사 등의 비리, 뇌물수수혐의를 입증하고,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해 화제가 되었다.

당시 그에게 협박과 압력이 가해졌으나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처리했다. 슬롯머신 사건은 널리 회자되어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소재가 되어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이 유명해졌다. 당시 성역 없이 검찰과 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 등을 줄줄이 수사하는 몇 안 되는 소신 검사의 한 사람이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소신껏 밀어붙일 수 있는 경우는 스스로 약점 잡힐 만한 흠이 없고, 주변에 신세진 것이 없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게 많을수록 이런 저런 계산을 하게 되고, 계산이 복잡할수록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쉽다. 주저하는 마음이 들면 정면승부를 하기 어렵다. 검사 시절이 홍 대표의 일생에서 가장 빛났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15,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 대표는 2012년 11월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다. 지사 시절 적자누적에도 불구하고 노조에 휘둘리고 있던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결정은 정치인 행정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정치 무대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정치인 홍 대표에게 전성기의 영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밖에는 적, 안에서도 반대파를 마주하고 있는 사면초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 홍 대표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주변은 모두 부도덕하거나 무능한 집단으로 몰렸다. 여당이었지만, 당은 쪼개지고, 안철수 후보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보수 표를 나누는 상황이었다.

홍 후보는 2위로 선거를 마쳤다. 일부에서는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결국 정권은 좌파로 넘어갔다. 이후 대한민국은 좌파정책으로 전환되면서 정치, 외교, 안보,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대 변혁이 진행되고 있다. 권력의 이동이 아니라 국체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이 해체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한다.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은 국회 안에서 제1야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당을 견제하며 정국의 균형을 잡는 역할에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좌파 정권의 대안, 희망

그나마 홍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탈당했던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을 불러들인 건 가장 최근의 승부로 주목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은 정서적으로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다, 당내 친박 그룹의 반발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출당과 친박 청산 카드를 까낼 때만 하더라도 과연 가능할까, 다시 당이 분열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명분으로 탈당 의원 상당수를 복귀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정국 구도를 만드는 데까지는 파급을 미쳤다.

그렇다고 목표 지점에 이른 것이 아니라 다가올 지방선거, 총선거 등을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열 정비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면 그의 리더십은 더 불안하게 흔들렸을 것이고, 본격적인 전투를 하기도 전에 보수 정당이 자멸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보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홍준표 대표의 대안을 찾기 어렵다. 믿을 만한 투수를 대비하지도 못한 채 투수 마운드에 서 있는 지금의 투수가 최선을 다해 상대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부를 뒤집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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