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사립대 도입하자
자율형 사립대 도입하자
  •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 승인 2017.12.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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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재와 대학 혁신 [제언]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은 연구와 지식탐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류 문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여 왔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개발해 학문과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을 발전시켜 인류공동체의 문화를 융성하게 만들었다.

특히 대학은 보편적인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널리 확산시켜 학문과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문명을 이끈 사회제도의 정립과 새로운 사조(思潮)의 형성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대학의 사명과 역할도 시대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의 많은 과학적인 발견이나 사회사상의 주창은 개인의 독창성이나 우연한 발견으로 이뤄진 것이 많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대학은 집단지성을 형성한 조직으로서 개인이나 소규모 연구로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의 다차원적인 발전과 더불어 융합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대학은 미래 국가의 발전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다.

특히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많은 경제활동도 지식을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형태로 전환하면서, 전문화된 고도의 지식을 창출하고 교육하는 대학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17세기 이후 산업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가장 중요한 생산의 근원이 되었고,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부가가치 창출의 원친이 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경제성장은 인적자원의 질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고도로 전문화된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대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국가발전과 대학교육

이와 같이 대학은 학문연구를 통해 인류의 문명과 정신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의 산실이 되며, 국가의 번영을 위한 사상과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그 어떤 국가에서보다 더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갖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선도하는 주체로서 혁혁한 공헌을 해 왔다. 또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교육 중시의 풍토에서 대학은 가장 중요한 사회 진출의 교두보가 되어 왔고, 대학이 곧 인생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많이 확산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은 세계 어떤 나라에서보다도 더 치열하며, 대학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엄청난 준비와 경쟁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학문의 발전은 물론 전문 인력의 양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선진화에 큰 공헌을 해 왔다.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 등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대학은 항상 사회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해 왔고, 대학에서 양성된 엘리트 집단의 사회적 공헌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높이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여건의 변화로 한국의 대학은 사면초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면초가의 한국 대학

첫째는 급속한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국내의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는 18세에서 21세까지의 학령인구는 1990년 366만 명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2025년 대학학령인구는 2013년보다 36%나 감소한 178만 명 내외로 추정되며, 향후 몇 년 후부터는 입학생의 절대부족으로 모든 대학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설상가상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저하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비율 자체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학령인구 중에 대학 재학생의 비율을 나타내는 취학률은 2007년 70.2%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2013년 68.7%로 감소했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도 2008년 83.9%에서 2013년 70.7%로 5년 사이에 무려 10% 이상 감소했다. 학령인구와 대학진학률 감소를 동시에 감안하면, 향후 10년간 대학진학인구는 40% 이상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 한국의 대학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환경에 다가오고 있다. 둘째는 취약한 재정 구조로 인해 수준 높은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기에 한계에 이르고 있다.

2011년 대선공약으로 등장한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지난 8년 이상 등록금이 인하되거나 동결되어 한국의 대학들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지원이 취약하고 외부로부터의 모금도 부진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재정 압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최하위 수준이며, 민간의 고등교육비 부담은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 또한 사립대학은 등록금 의존율이 매우 높아 정원감축과 ‘반값 등록금’은 곧바로 사립대학의 재정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로 인한 연구와 교육 수준의 질적 저하는 한국 대학의 하향평준화로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대학들은 교육당국으로부터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규제를 받고 있으며, 때로는 사회 여론도 대학에 호의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립대학도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정부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연구의 중점과제나 입시, 학사제도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고유 업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규제정책이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한국의 대학들은 일관성 있고 안정적인 학사 운용을 수행하기 어렵고, 학교마다 특성화를 통해 자율적인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셋째, 대학의 세계적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어 해외로부터 인재를 유치할 여건도 취약하며, 오히려 국내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인재도 적지 않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물론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학 경쟁력의 강화와 유학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인재 유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자율과 경쟁을 통해 혁신을 유도하고, 규제와 간섭보다는 연구와 교육활동에 대한 막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역시 1990년대 초반부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우수 대학의 집중 육성 정책을 시행해 칭화대, 베이징대, 푸단대 등 10여개 대학을 집중 지원하고, 한편으로는 과감한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ICT 기술의 발전으로 고등교육 영역에서 시·공간의 제약 없는 무한 경쟁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양질의 강의를 동시에 수강할 수 있는 MOOCs (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보편화는 그 한 예로, 대학은 지금 교육과 연구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엇보다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시대 변화에 적합한 전문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지식 기반 경제에서 국가 경쟁력은 전문 인재에 의한 첨단 지식의 창출과 기술 혁신의 비교우위에 달려 있고, 고등교육은 이를 지원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로 개방적이지 못하고 거버넌스 시스템이 선진화되지 못해 전문인력 배출을 위한 내부 혁신이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시대적 흐름에 맞춰 전공과목을 개편하고, 사회적 수요에 맞춰 학과를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거버넌스가 안정되지 못해 학생과 교수, 직원, 동문 등이 모두 이해관계자로서 행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실제로 총장 선출 때마다 선출 방식에서부터 임명 과정이 항상 논란이 많으며 선진화된 제도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미래 - 아시아 교육의 허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우수한 연구자와 학생의 수준이 매우 높으며, 최근 연구 역량도 크게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높은 교육열, 대학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상당하다.

정부가 자율성과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 같은 인구 규모와 교육에 대한 관심, 입시경쟁제도의 해소, 대학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보다 많은 수의 국내 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에 포함한다.

한국의 인구 규모나 경제력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10개 내외는 100대 대학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 많아져야만, 좋은 대학을 찾는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어 국내의 입시 경쟁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이 아시아 교육 허브를 구축할 수 있는 수준의 명문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을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우수한 교육과 연구 성과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연구 역량이 탁월한 교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며, 세계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여건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바로 연구를 뒷받침하는 시설과 지원 인력을 말한다. 세계적인 명문은 흔히 교육보다는 연구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학의 사명은 교육과 연구에 있고, 의과대학의 규모가 큰 대학은 임상과 의료연구 수준의 고도화도 중요한 사명이 된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연구 못지않게 교육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교육을 통해 세계적 인물을 배출해야 하고, 미래사회를 선도할 엘리트를 양성해야 한다.

둘째, 교육은 연구와 달리 작은 규모의 투자와 시설만으로도 세계적인 경쟁력 달성이 가능한데, 대학의 설립정신과 교육철학을 공고히 하고, 인재상을 설정한 후에, 자질 있는 교육자가 성실하게 사명을 다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과 교수자의 열정, 교육을 지원하는 시설과 행정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가 교육 경쟁력을 좌우한다.

미국의 Williams, Amherst College 등 Liberal Arts 대학들은 규모는 작지만 교육 중심으로 특화해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의 규모보다는 탁월한 교수와 우수한 학생, 활발한 학술, 연구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량이 명문교육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셋째, 명문 교육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도 중요하다. 교육 정책은 물론 문화와 인구 구조, 대학을 보는 사회의 눈, 진학률 등 주변 여건이 그것이다. 미국은 대체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자율성과 시장의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대학정책을 시행해 왔다. 반면 유럽은 국공립대학이 중심을 이루고, 재원도 대부분 정부에서 부담하고 있다.

어떤 모델이 바람직한가는 획일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기초연구는 정부가 지원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제고시키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 제고에는 필수적이라고 본다. 자율성은 항상 사회적 책무와 함께 주어지므로, 대학은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기회의 확대와 사회적 배려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넷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연히 재정 여건도 중요하다. 대학교육의 결과는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가 창출하는 연구 결과와 사회적 기여는 특정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명문교육을 받은 인재가 위대한 발명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발전시킴으로써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재의 성격 때문에 국공립, 사립을 불문하고, 정부가 대학에 투자해야 할 당연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에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줘 재정 부문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자율권이 엄격하게 규제받고 있고, 민간의 기부문화도 열악해 등록금 이외에는 재정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있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등록금이 엄격하게 규제를 받고 있어 재정 압박이 더 심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명문대학으로 도약하려면 대학 내부의 혁신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학생과 연구진의 유치에서부터 대학 행정과 거버넌스 등이 선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한국의 대학은 아직도 명문 교육을 실시하는 선진 대학으로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면 재정과 정책 환경, 그리고 거버넌스는 대학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개선시켜나갈 수 있는 과제이기 때문에 대학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이 스스로 앞장서서 내부의 혁신을 시도하고, 정책 환경을 바꾸기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하며, 적극적인 기부활동 등을 통해 재정역량도 강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선 소수 분야에서 부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특성화하는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UIC)은 이미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준하는 경쟁력 있는 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세계 수준의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을 표방하면서 출범한 UIC는 100% 영어로 진행되는 교육과정, 국제적 교수진(100% 외국인 교수) 및 기숙사 등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 60여 개국으로부터 인재들이 찾아 오는 교육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교육 허브로서 세계적인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수준의 대학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본적으로 ‘자율형 사립대학’을 허용해 정부의 규제 없이 독자적으로 특성화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대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함께 이뤄진다면 아시아 교육 허브 전략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지만, 획일적이고 형평지향적인 교육정책의 기본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재정 지원보다는 사회적 책무를 부과한 자율성의 확대가 더 용이하게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율형 사립대학은 글로벌 시대에 외국 명문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자율을 주는 반면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배려하여 교육기회 불균형을 해소하고, 우리 사회의 갈등해소와 신뢰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책무를 부과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과 연구의 세계적 수월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학이 10개 이상 만들어진다면, 한국은 아시아의 교육 허브로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대학행정의 비효율성과 전근대적인 인사제도와 지배구조의 개선, 교수와 직원, 학생, 동문간의 전문적인(professional) 역할 분담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한국의 대학은 아시아 교육 허브로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코넬대 경제학 박사 / 전 한국비교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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