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안민의 조건은 지도자, 이념, 제도
부국안민의 조건은 지도자, 이념, 제도
  • 최 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 승인 2017.12.15 18: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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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이 각계의 지식인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미래한국은 이에 우리 사회 각 계 전문가들이 집필 편찬한 ‘오래된 새로운 비전’의 주요 논제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각성 운동 차원에서 발췌 소개한다. (편집자 注)

어떻게 하면 국가가 번영하고 국민이 잘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에 이미 나와 있다. 불완전하더라도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다르더라도 과거의 역사만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 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며,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이전에 누군가가 고민했던 문제이다. 고민했기에 선현(先賢)들에 의해 이미 답이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지도자도 전문가도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부국안민(富國安民)에 이르는 길의 세 가지 요체(要諦)는, 첫째 역사적 통찰력에 바탕을 둔 비전과 확신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갖는 것이고, 둘째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구성원이 확신하며, 그 원리가 국가정책의 중심에 작동하는 것이며, 셋째 좌파적 가치의 덫에서 벗어나 (고전적) 자유주의 우파 이념이 사회의 지배 이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부국과 안민’은 언제나 위대한 지도자와 함께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확고한 신념 하에 국가정책을 추진할 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

국민은 소통하는 지도력(leadership)을 가진 지도자(leader)를 원한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에 주목하며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이 어떤가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판단한다. 반듯한 심성의 리더의 언행에 신뢰를 보낸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보다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 줘야 한다. 국민들은 영악하며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 지도자의 심성이 불순하면 즉각 마음을 거둬 민심이 이반(離反)한다.

레이건(Ronald Reagan)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 중 한 분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성공을 거둔 핵심 요인은 아웃사이더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원하는 바에 대해 비전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능력이 있었고, 대중에게서 정치적 지지를 끌어낼 정도로 간결하고 힘 있게 비전을 전달하는 소통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레이건 재임 시절 하원은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감세와 세제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그가 기존의 정치적 실세를 뛰어넘어 곧바로 대중에게 호소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누구보다 확신에 찬 이념의 소유자였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소통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리더십의 힘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혼란기나 위기 때 리더십이 더 빛난다. 리더 스스로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추종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고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세계적 칼럼니스트인 부크홀츠(Todd G. Buchholz)는 20세기의 가장 성공한 경제정책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일련의 경제정책을 든 바 있다. 그 정책의 주인공이 에르하르트(Ludvig Erhard) 수상이다.

전쟁 직후의 참혹한 폐허와 엄청난 혼란 속에서도 에르하르트(Ludvig Erhard) 수상은 가격통제를 과감히 해제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등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일련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여타의 선진국들이 연 1~2%씩 성장하는 데 반해 독일 경제는 연간 6~7%씩 성장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 기적을 창출한 지도자가 에르하르트였다.

건국 이래 박근혜 대통령 전까지 모두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들 중 위대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필자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라 확신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 살 수 있게 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이고, 경제 번영으로 우리가 잘 살 수 있게 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왕 중 성군(聖君)이 있었는가? 세종대왕이란 한 명의 성군을 가졌던 것과 비교할 때 지난 65년 동안 두 명의 훌륭한 지도자를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은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덕분이다. 유신체제로 대표된 굴곡된 비(非)민주적 통치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 불러왔으며, 이 과정에서 ‘닭장’과 ‘철장’을 오간 사람들을 ‘민주화 투사’라 부르고 이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이뤄진 것으로 생각들 한다. 민주화에 대한 민주투사들의 기여를 인정하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의 일등 공신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초로 해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자체가 우리의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큰 민주화 작업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정점(頂點)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그 극심한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위업(偉業)이 없었다면 1980년대 민주화가 가능했겠는가? 정부 수립 후 3년이 안 된 시점에서 공산세력이 무력 도발을 했을 때 이를 격퇴시킨 그 고군분투가 어쩌면 건국 이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두 번째 초석이 아닌가? 80년대의 민주화는 세 번째 방점에 불과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도 매우 흥미롭고 훌륭한 사례이다. 그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했는데도 지지율이 대단히 높았고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기는 하지만 긍정적이다.

이는 그가 추진한 정책이 경제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그 자신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안보관 아래 박정희 대통령이 성취한 ‘한강의 기적’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산업화를 달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영명한 지도자 주변에는 인재가 모인다

영명한 지도자의 등장과 그 주위에 뛰어난 인재의 집결이 나라의 융성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임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천하의 인재를 지도자가 어떻게 찾아내고 활용하느냐가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책사(策士)가 있었다. 

경제위기 속에서 안정화 정책을 성공시킨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김재익 수석이 있었고, 춘추시대 첫 패권의 위업을 달성한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는 관중(管仲)이 있었고,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뤄낸 당나라 태종 곁에는 위징(魏徵)과 방현령(防玄齡)이 있었다.

지도자 주위에 능력이 있는 특히 역사적 혜안이 있는 참모들의 포진이 중요함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책사를 찾아내 곁에 두는 것은 지도자 자신의 몫이다. 참모는 지도자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정치력을 활용해 자신의 구도와 생각을 세상에 펼쳤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덕목은 첫째 절제, 희생력, 신뢰이고, 둘째 카리스마, 조직 장악력, 비전, 목표 달성력, 네트워크 능력이다. 지도자가 모든 국사의 내용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많은 경우 모든 내용을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

본질적으로 현명한 판단이 가능한 기본적 소양을 갖추면 된다. 대통령의 말은 불가역적(irreversible)이고 최종적이기에 특히 주요 정책과 관련해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禁忌) 사항이다.

대통령이나 후보자가 7-4-7 정책, 비핵 개방 3000달러, 경제성장률 몇 % 달성, 일자리 몇 만 개 창출 등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수치는 반드시 달성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왜곡이 초래되기 마련이며 달성되지 못하는 경우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의 장(場)’과 ‘정책의 장(場)’

국가든 정당이든 그리고 개인이든 그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개인의 경우 자아의 상실, 정당의 경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패거리들의 끝없는 이합집산, 사회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추구해야 할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가치의 부재 등으로 요약되는 정체성의 위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根源)이다.

이념은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국가 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념과 관련된 중요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체계적으로 진화해 온 좌파[진보]·우파[보수]의 역사적 경험이 없다.

따라서 서구에서 전개된 이념들을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으며 각 이념의 신봉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분명히 하면서 이념과 정책 간에 정합성(整合性)을 유지해야 한다.

이념은 개인 차원에서나 정당 차원에서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고 각기의 존재 이유와 결부된다. ‘정치의 장(場)’과 ‘정책의 장(場)’의 연결고리가 이념이라는 사실이 인지되고 있지 못하다.

국가의 중요 정책의 우선순위와 구체적 내용을 두고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간의 극명한 대립은 각자가 착용하고 있는 이념 안경의 색깔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념의 차이에 따라 야기된 정책의 대립을 과학적 논의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정책에서 이념의 중요성을 모르고, 또한 이념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정책을 논의하다보니 정책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

사실 국가정책 특히 복지정책에 관한 논쟁의 대부분은 가치판단이나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다. 주어진 어떤 문제에 대한 공청회에서 두 사람의 전문가가 완전히 다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많은 경우 이들의 견해 차이는 그들이 알고 있는 정책의 원칙과 이론에 대해서 합일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보다 가치와 이념을 중시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슈보다는 가치와 이념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정책보다 가치의 전달과 이념의 설득을 더 중요시 한다. 확신하는 가치와 이념을 바탕으로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 결과 그 지도자는 대중에게 진실한 사람으로 각인된다.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보일 때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다고 느낀다. 가치와 인간적 유대, 진정성, 신뢰, 이 네 가지가 함께 할 때 대중은 스스로를 지도자와 동일시하며, 그 지도자가 자신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정책 이슈는 이차적이다. 즉 정책 이슈가 부적절하거나 사소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차적이라는 것이다. 정책 이슈에 대한 견해는 당연히 사람의 이념과 가치에서 나오며, 선택된 이슈와 정책은 그러한 가치와 이념을 상징한다.

따라서 지도자는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가치와 이념을 옹호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자신이 말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그들의 정체성에 근거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좌파 진보주의자들이 정치적 논쟁의 프레임(frame)을 구성해 자신들의 이념을 대중에게 조직적으로 제시하면서 정책 입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주도권을 상실한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의 정책에 반응할 때 진보의 프레임과 가치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보수 고유의 가치를 보수 고유의 언어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자들은 앞을 내다보는 일련의 정책과 의사소통 기법을 필요로 한다. 우파 지도자들은 어떤 당파에서도 벗어나 계속되는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전국 캠페인에서 단결해 오늘의 구체적 이슈가 무엇이든지 경우마다에 보수의 가치를 정직하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념에 중도가 있고 중용이 좋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다. 결코 이념에는 중도가 없다. 이는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믿는 종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이념이 이중적일 수는 있다. 즉 삶의 어떤 측면에서는 우파적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좌파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한 과제에 대해 동시에 우파적이고 좌파적일 수는 없다.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진보주의자들은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고 보수주의자들은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자신의 가치의 반대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상대방의 가치를 더 활성화시켜 주고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중개념주의자’를 ‘중도주의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념과 정책은 같은 맥락이다. 이념을 떠나 정책이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 각기의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불완전하나 역사에서 답이 구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좌파(진보)의 공상적 사회주의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 모두 실패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보·좌파 이념이 그 자체로서 틀린 것은 아니다.

감성의 측면에서 보면 진보·좌파의 주장이 보수·우파의 주장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부국안민의 길을 놓고는 우파의 정책은 성공한 경우도 있고 실패한 경우도 있으나, 좌파의 정책은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사상과 지성의 위기

지금은 학문과 지성의 정도(正道)가 망각되고 사이비와 속설(俗說)이 판을 치고 있다. 정도를 벗어난 학문으로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지성들의 기개가 죽고 학자들이 도리(道理)나 의(義)보다 사리(私利)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던 적이 예전에도 있었던가? 2류 학자들이 오늘날 같이 선동적이고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를 하는 경우가 또 있었는가?

시대 상황에 맞게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올바른 처방을 더 이상 고민하는 지성인도 찾기 힘들며 설사 내면적으로 그러한 지성인이라 하더라도 이를 내놓고 공론화하는 용기 있는 지성인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좌파 사회주의 사상은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설계하면 인민이 다 같이 잘 사는 지상낙원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기록이 사회주의가 20세기에 발흥하고 20세기에 멸망한 것인데도 21세기 대한민국에 그 망한 사회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사회주의의 유일한 잔존 세력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조하고 협력하려는 세력들이 활개를 펴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일시 충격을 받았던 국내 좌파 세력들이 잡았던 권력을 내준 후 절치부심해 권력을 다시 쟁취하려 똘똘 뭉치고 있다.

▲ 최 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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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가 유일한 위대한 2017-12-17 00:33:40
아,,,, 정말 성균관대 교수님 정말 부끄ㄴ럽네요,,,,,,, 이승만 박정희가 유일하게 위대한 지도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정희 시대에 공부해서 너무 세뇌당하셨나봐요. 한강 끊고 혼자 도망가고 둘 모두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고 아등바등 이익만 챙기려다가 쫓겨나듯(한명은 총맞고) 내려왔는데 뭔 소리예요,,,

이승만박정희? 2017-12-16 00:58:23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산하고 6.25 전쟁 때 서울은 안전하다 말해놓고 한강 다리 끊고 지 혼자 도망간거는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해외에서 공부하시느라 근현대사 공부는 안하셨나보네요. 아님 친일파 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