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촛불 체제’가 가는 길
‘2017년 촛불 체제’가 가는 길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12.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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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굿바이 대한민국
 

지난 12월 9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1년을 맞았다. 이날 촛불 정신의 승리라고 자축하는 사람들과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광화문 거리를 메웠지만 어느 쪽이든 그 열기는 식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8:0 만장일치라는 인용심판을 거쳐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아젠다를 생성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87체제 극복’과 ‘2017년 체제’를 정치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지난 3월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탄핵과 진보 정권의 등장을 ‘이게 나라냐’라는 저항으로부터 시작된 ‘체제 변혁’의 과정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진보와 좌파 진영 전반에 정치적 이데을로거로서 그 영향력이 심대한 손호철 교수의 아젠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핵심들의 지도이념(Regime)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그동안 주류세력은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생겨난 신생국중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게이트는 촛불의 외침처럼 “과연 이게 나라이기나 한 것인가?”를 자문하게 만들고 있다.

촛불혁명은 가장 표층인 ‘사건사’ 측면에서는 박근혜게이트로 표출된 박정희체제가, 중간수준에는 87년 헌정체제가, 심층에는 97년 IMF 사태에 따라 생겨난 헬조선과 흙수저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게이트와 촛불혁명은 해방 70년사와 민주화 30년, 신자유주의 20년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이번 사태가 해방-정부수립 70주년, 민주화 30주년, IMF 경제위기 20주년에 터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박정희신화와 87년 체제, 그리고 “돈 많은 부모를 만난 것도 실력”인 97년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공화국을 구상하도록 만들고 있다. 2017년 체제는 촛불시위에서 한 여고생의 말대로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탈신자유주의체제이어야 한다.>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본문 중)

 

‘새로운 공화국,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로

 손호철 교수는 박근혜게이트와 1500만 시민이 참여한 역사적인 11월시민혁명은 왜 일어난 것인가? 박정희신화는 맞는 것인가? 87년 민주화는 이대로 좋은가? 정권교체가 되면 헬조선은 끝나는가? 헬조선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2017년체제를 규정하려 한다.

그 핵심은 ‘탈신자유주의’라고 결론 내리지만, 이는 수사적인 대답일 뿐, 구체적 현실정치에서 그 양상은 ‘새로운 공화국,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라고 단언해도 무리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2017년체제를 추구하는 현실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의 ‘2017년체제’에는 내부적으로 계급투쟁을 통한 체제변혁의 아젠다도 실려 있다. ‘헬지옥’이라고 표상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에 대한 정책은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12월 12일에 있었던 중소기업연합회 기자회견장은 그야말로 중소기업인들의 분노와 절망의 절규장이었다. 현실을 무시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감축은 600만 자영업자와 300만 중소기업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금도 생존에 허덕이고 있는 영세 기업들은 당장 보름 앞으로 다가온 최저임금 16.4% 인상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면서, “최소한 영세 소기업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문제점과 실태를 충분히 점검하고, 추가 인력공급 대책을 마련한 뒤에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에 읍소하다시피 했지만, 기업을 노동자의 착취세력으로 보는 ‘2017년 체제’의 집행자들로서는 마이동풍일 뿐이다.

기업들의 해외탈출 러시도 더 가속화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기준,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114억2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의 배 이상인 115.2%나 급증했다.

반면 해외 기업의 한국 투자는 95억9600만 달러로 9.1%나 줄어들었다. 해외로 나갔던 국내 기업이 되돌아오는 ‘U턴’ 실적은 따지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지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계속 표류하고 기업구조조정 지연, 노동개혁 무산 등 투자 여건이 갈수록 나빠진 영향을 꼽는다. 각종 규제에 발목 잡히고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평화의 ‘2017년체제’ 아젠다는 동북아 균형외교와 남북연방,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군 철수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비전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담아 일본을 포함한 미국의 동아시아 집단안보 계획을 거부했다.

그 대신 중국에 이른바 ‘3불(不)’이라는 안보정책을 제시했다. ‘첫째, 대외적으로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둘째,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셋째, 한·미·일 군사동맹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중국은 처음에는 환영으로 맞은 후,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에는 공개적으로 ‘약속을 지키라’고 윽박과 모욕에 가까운 의전으로 대했다.

이런 와중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비밀접촉을 했다가 80조 원을 평화회담 조건으로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TV조선의 보도마저 나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문재인 정부가 아니어서 퍼주는 금액 조정만 남게 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제기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시(國是)의 대한민국을 남북연방을 통해 변형된 공화국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예상들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 또한 ‘2017년 체제’에서 중요한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적폐청산과 인권 회복을 위한 양심수 전원 석방 1210 시국선언’을 열고 있다. / 연합

법치 위협하는 ‘위원회’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2017년체제’는 탄핵과 더불어 ‘적폐청산’이라는 갑주를 입었다.

이러한 적폐청산은 대한민국 체제변혁을 위해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악하게도 손호철 교수는 ‘적폐청산 후 개헌’을 우선적 아젠다로 제시한다. 혁명의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지도이념이다.

<87년 체제와 관련해서는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개헌연대에 의해 적폐청산의 기회는 물 건너간다는 점에서 개헌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후 개헌을 하자는 것 역시 개헌을 다시 정치권만의 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광장이 중심이 되어 개헌이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이라는 시각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민주·평등·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은 기본권 강화,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지방분권적 남한 연방제 등 권력분산이외에도 이번 사태가 보여준 대의제의 실패를 보강하기 위해 국민소환제, 시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대대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본문 중)

김윤태 고려대 교수 역시 2017년체제를 촛불에 의한 시민혁명으로 규정한다. 그는 본격적인 체제변혁을 ‘장기적 혁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과거의 ‘열정과 환멸의 정치’가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다른 ‘장기적 혁명’으로 새로운 시민혁명의 역사를 쓸 것인가? 지금 촛불 시민혁명은 단순한 정부의 교체에 그치는 대신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개혁,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하는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 박근혜 탄핵 1년, 기로에 선 ‘촛불 시민혁명’, 프레시안 12.14

대체적으로 진보진영이 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모순의 축적이 불러온 ‘필연’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필연의 방향은 민주주의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사회주의와 결합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방법론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 민주주의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다. 그 대답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2011년 ‘2013년체제’에서 남김없이 했으며, ‘2017년 체제’는 그 연속상의 개정 증보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3년체제’란 무엇이었던가.

2013년 체제는 87년 민주화체제를 넘어 평등과 평화 체제로 나아가자는 주장이다. 2011년 좌파진영의 대부 백낙청이 제안했고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이 선언했다. 노선의 핵심은 평등과 평화의 체제. 이 아젠다의 실천원리는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 폐지, 남북 연방제 실현, 주한미군 철수, 재벌 해체.

레짐 체인지와 개헌

2013년 체제를 위해 민주통합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종북-좌파연합인 야권연대를 실시했고 이석기, 김재연, 임수경 등 종북성향의 의원들을 국회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의석도 확대됐다. 하지만 원래 목표였던 과반수 돌파에는 실패했고 통진당 내 종북 시비가 불거지면서 초기의 전망이 흐려졌다.

이처럼 야권의 2013년체제는 과거 87체제를 사회주의 계급혁명의 전단계인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보고 이를 계급투쟁과 민족통일, 즉 과거 운동권 PD계열과 NL계열의 노선에 따라 대한민국의 체제를 변혁하자는 아젠다였다.

하지만 ‘2013년체제’는 박근혜라는 보수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문제는 체제변혁을 내세우고 도전해 온 야권 세력에 대해, 기술적 승리에 불과했던 2012년 대선 승리감에 도취한 보수 주류 세력들의 안일함이었다. 그들은 체제변혁을 내세웠던 야권이라 하더라도 헌정체제를 인정할 거라 착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2015년 서울신문을 비롯해 각 일간지의 2017년 대선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이 평균 40%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점으로 더 굳어졌다. 당시 서울신문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지율은 9.8%, 박원순 서울시장은 7.4%에 불과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내에서 미래권력을 놓고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새누리당은 분당되어 바른정당이 등장했다. 여권의 반기문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최순실게이트가 터졌다.

다급했던 대통령은 사실상 하야인 임기단축을 국회에 제안했고, 차라리 탄핵심판으로 가자는 주장이 보수 여권 내에서 일었다. 하야 선례도 문제지만, 대통령 하야 후 치러야 할 60일내 대선에서 보수가 승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보수의 엘리트 인사들의 예측과는 달리 국회에서 탄핵은 가결됐고, 또 예측과 달리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 8인의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이 와중에 광화문에 100만의 태극기 시민들이 집결했지만 정치적 대응에 미숙했고 지도부는 단지 박근혜 팬클럽 차원의 메시지에 머물렀다. 헌법재판소와 언론은 이 집회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보수 정치세력의 아이콘이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국민파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수 정치세력의 파탄을 의미했다. 더구나 선거기간 국정원 댓글 문제가 얽혀들면서 탄핵과 대선 패배는 국가안보 전반에 위기를 몰고 왔다.

2017년체제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친북성과 위험한 줄타기 외교로 인해 한미동맹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중국으로부터는 모멸에 가까운 대우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들은 보수 지식인들의 우려와 대안을 거부하고 있다. ‘적폐’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을 이용해 법률과 의회정치를 무시하고 각종 위원회를 통해 위헌적 통치를 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부의장 심재철 의원(자유한국당)은 분명하게 말한다.

“적폐청산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훈령으로 만든 위원회에 민간인들이 참여해서 국정원 서버를 뒤지고 법으로 제한된 국가안보기밀들을 열람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한 일도 아니고 명령계통에 따라서 불법을 했다면 시스템의 문제를 다뤄야지 왜 이를 국정원 개인들의 문제로 몰아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까.” - 2017.12.10.미래한국 인터뷰 中-

심재철 부의장의 지적대로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부의 ‘2017년체제’라는 코드로 국정원을 해체하는 수준의 일을 벌이고 있다. 간첩을 검거하는 방첩업무는 국정원에서 사라졌다.

정치인에 대한 스파이 감시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면서 북의 지령을 받는 고첩들이 국회로 진출하거나 포섭될 경우, 이를 감시하고 적발해 낼 수 있는 기관이 대한민국에는 없어진 것이다.

탄핵을 불러 온 광장의 촛불은 대한민국의 공화주의 법치를 근본적으로 손상시킨 행위의 유발체였다. 떼법에 의한 촛불은 국회로 하여금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게 만들었고 탄핵 심판 역시 하자 있는 탄핵소추의결을 문제 삼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위헌적 심판이 됐다. 그러한 공화주의를 무시한 촛불 민주주의에 대해 탄핵 소추안 가결 1년을 맞았던 12월 9일, 정당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문을 낭독했다.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적폐를 걷어내고 민생을 개혁해야 한다. 촛불민심의 염원을 위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더욱 철저히 복무하겠다.”
-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탄핵의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우리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제대로 된 보수를 재건하는 길을 계속해서 가겠다.”- 유의동 바른정당 수석대변인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해 촛불민심 그대로를 받들 것을 약속한다.”
-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

자유한국당은 이날 탄핵 1주년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2017, 굿바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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