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타버린 법치
촛불에 타버린 법치
  • 이인철 변호사·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12.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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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적폐청산을 내세운 촛불시위로 출발해 공영방송사 이사 및 사장의 퇴출로 이어지는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으로 마무리 되었다.

2008년 MBC 광우병 보도에 관련된 자가 MBC 사장에 선임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진행되는 적폐청산을 2008년의 촛불시위와의 관계에서 바라보게 한다. 10년 전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인데, 적폐청산이란 구호의 진정한 의도를 보여준다.

촛불시위와 태극기집회, 헌재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보수 정당의 분열과 보수 시민단체의 몰락,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의 정치적 실험의 좌충우돌은 한국 사회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현실을 보여주면서 체제 변화가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촛불시위에서 출발한 적폐청산 주장은 미디어에 의해 확산되고, 변덕스러운 여론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JTBC의 태블릿 PC 왜곡 보도 논란 등 끊임없는 가짜뉴스 논란은 여론형성 과정에서 미디어에 의한 왜곡을 말해준다. 미디어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시류에 영합하고, 여론을 오도해 왔다. 한국 사회는 미디어에 의해서 끌려가는 형국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하의 검찰수사와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계속 지켜본 한 해였다. 사실상의 인적 청산을 목적으로 하여 법치주의와 절차적 정의에 의문을 남긴 채 무리하게 진행되는 재판절차는 사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처벌과 단죄를 목적으로 한 사법적 심판에 경도된 인적 청산은 의도적인 정치보복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온갖 흠집내기와 강압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이사 사퇴와 사장 퇴진 요구는 인민재판식 린치다. 다양한 형태의 소위 적폐청산을 한다는 조직들이 이곳저곳에 근거 없이 세워져 사실상의 수사와 재판을 행함으로써 폭력과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사실과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진행되고 반대편을 몰아내기 위한 목적의 적폐청산은 폭력이며 약탈행위다. 곳곳에서 사람들을 분류해서 쫓아내는 홍위병이 발호하는 시대다.

여론과 재판 및 불법적인 방법에 의한 인적 청산이 진행되고 있다. 책임을 담당한 기관에 의하지 아니하고 정책이 결정되는 이상한 상황이 전개된다. 친환경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힌 원전 건설 중단 선언과 뒤를 이은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통해서 숙의민주주의를 실험한다는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하에 무책임한 요구가 권력을 배경으로 난무함으로써  사회의 균형을 잡는 수단들이 흔들리고 공식적인 제도와 절차가 형해화 되고 있다.

2017년의 한국 사회는 ‘적폐청산’의 소용돌이에 잠겨 있다. 과거의 폐단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정치보복과 체제전환의 전단계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법과 절차가 무시되고 헌법질서에 기초한 제도가 무너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꺾이지 않는 지지율로 드러나는 적폐청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작금의 상황은 세대교체라는 현상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블랙리스트’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2월 14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

법치 붕괴, 자유대한민국 붕괴

보수 정권이 집권했다는 시기인 2008년 일어난 광우병선동사건과 이어지는 대통령 퇴진운동은 80년대 386운동권 세대들이 성장해 사회의 주류로 진입하면서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건으로서 세대교체의 전야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10년이 흘러 적폐청산이라는 구호에 의해 달성된 정권의 몰락과 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80년대 386세대가 30년이 지나 이제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 잡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청와대의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포진에 대해 전대협 정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세대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세대가 사회에 대해서 갖는 관점과 지향은 그들의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다. 80년대의 운동권세력의 의식화 작업은 한국 근대사와 한반도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전제로 한 이론의 수립으로 형성되었고, 학교와 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그 이론을 실천함으로써 한 세대의 마음속에 공유되는 의식을 형성했다.

사회주의, 폐쇄적 부족주의, 이론을 앞세우는 지식 지향성, 민주집중제와 같은 자기정당화의 궤변들로 결합된 결코 진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러한 성향들도, 실천이라는 경험의 지형 하에서 한 세대를 이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90년대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도하고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급격한 현실 변화에서도 위와 같이 확보되고 정서적 유대로 공유된 이들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80년대 운동권 세대는 이념의 공동체를 넘어서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체험을 함께 하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세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이 사회의 주력층이 되었을 때 이들 세대는 자연스레 이들의 경험 속에 녹아든 자기들의 정체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2008년 광우병사건 이후 10년이 걸친 보수의 붕괴를 이끌게 되는 이들의 도전이었고, 이제 그것이 실현되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80년대를 조명하는 잇단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회 주도층이 된 기성세대의 경험에 호소하는 잘 팔리는 복고풍 영화의 유행이다. 2008년 MBC 광우병보도 당시의 촛불의 현장은 80년대 세대에 의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도전이면서 이들의 시대를 열기 위한 시도였다.

2008년 이후 10년, 이 세대가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다. 각종 시민단체와 특히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이 세대가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현실화 작업이 적폐청산이다.

2018년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2008년의 광우병사건 후 10년이 되는 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함께 헌법 개정이라는 주요한 정치 일정이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10년 전 촛불의 추억으로의 회귀이며, 80년대의 사유로의 퇴행이고, 80년대 사유의 공동체가 현실에서 자신의 사유를 구현하려는 목적의 방향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2018년은 2008년 이후 2017년까지의 역사를 지우고 80년대의 사유에 바탕으로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 체제를 재고하고 새로운 체제를 고안하려는 시도가 예상된다. 지금의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하에 진행되는 많은 작업들이 이러한 시도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건국된 공화국이 확고히 서는 데는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17년 마지막 달, 2018년을 준비해야 한다.

▲ 이인철 변호사·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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