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14형’은 보조로켓 장착, ‘화성-15형’은 노즐 2개
▲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1월 30일 방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화성-15’형의 전날 발사 영상에서 미사일이 수직으로 들어 올려진 뒤 이동식 발사차량(TEL)이 떠나고 있다. / 연합 |
북한이 지난 11월 29일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한미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9월까지 발사했던 ICBM ‘화성-14’형과는 다른 모습과 성능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화성-15형의 탄두 부분이 뭉툭한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11월 30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한 발사 당시 영상을 본 뒤 1단 로켓 엔진에 큰 관심을 가졌다. 기존의 ‘화성-12형’이나 ‘화성-14형’의 로켓 엔진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이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과 화성-14형 ICBM을 발사한 뒤 미국을 필두로 세계 정보기관은 여기에 사용된 1단 로켓 엔진이 우크라이나에서 제조한 ‘RD-250’ 모델인 것으로 보고,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해당 업체는 “우리는 북한에 로켓 엔진을 판매한 적이 없으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위반한 적도 없다”고 강변하며 “러시아가 꾸민 짓”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와 해당 업체의 주장은 먹히는 듯했다.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화성-15형의 1단 로켓 엔진은 북한이 그동안 어떻게 서방 진영의 예상을 뛰어 넘어 ICBM과 SLBM을 개발할 수 있었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화성-15형 1단 로켓엔진의 특징 ‘짐벌(Gymbal) 타입’
지난 11월 30일 자유아시아방송은 독일 ST애널리틱스의 미사일 전문가 마커스 실러 박사의 분석을 전했다. 그는 “북한 화성-15형은 미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은 분명하지만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과거 구 소련 등에서 입수한 대형 미사일 부품을 활용해 조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마커스 실러 박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구소련제 엔진을 북한이 예전에 구매해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미 미들버리 국제학 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박사의 분석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화성-15형 ICBM의 가장 큰 특징은 1단 로켓 엔진에 달린 2개의 분사구가 움직일 수 있는 짐벌(Gymbal) 방식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이는 화성-14형의 그것에 4개의 작은 보조 로켓이 달린 것과는 상당히 큰 차이점이다.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이를 두고 “이것은 북한에게는 큰 진전이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38노스 또한 화성-15형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38노스는 “화성-15형은 2개의 연소실을 가진 1단 추진로켓을 사용했는데, 이는 구 소련제 ‘RD-251’ 로켓 엔진과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면서 “더욱 커진 크기와 강력한 로켓 엔진으로 최대 1톤의 탄두를 미 본토까지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해외 군사전문가들은 이처럼 북한이 ICBM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성능 개량에 나서고 있다고 본다. 반면 한국 정부는 “설마 북한이…”하는 태도를 계속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1일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현안 자료에서 “북한 화성-15형은 비행 특성과 속도, 각 단의 분리, 외형 등을 고려할 때 정상 각도 발사시 1만 3000km 이상 비행이 가능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판단했다”면서도 “다만 탄두부의 대기권 재진입, 종말 단계에서의 탄두 정밀유도, 탄두 작동 여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청와대를 비롯해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등은 북한의 화성-15형을 ICBM이 아니라 ICBM급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사용하는 로켓 엔진 또한 기존에 드러난 RD-250 모델의 개량형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北 화성-15형 추진 로켓 RD계열은 맞는데…
한국 국방부를 비롯해 국내의 군 출신 군사전문가들은 화성-15형의 1단 로켓 엔진이 RD-250 또는 그 파생형이라고 보고 있다. 그 근거는 지난 8월 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전문가 마이클 엘리먼 선임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다.
마이클 엘리먼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해외에서 새 액체연료 로켓엔진을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화성-12형과 화성-14형에 장착한 1단 로켓 엔진이 구 소련제 RD-250 계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엘리먼 선임연구원이 언급한 RD-250 로켓 엔진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 있는 ‘유즈마슈’社가 제작한 것이다. 유즈마슈사는 구 소련 때부터 2014년까지 RD-250 로켓 엔진을 제조해 러시아에 납품했고, 2014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물러난 뒤부터 경영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유즈마슈사의 RD-250 로켓 엔진은 러시아 포병사령부 제식 명칭이 ‘8D518’로 ‘사산화 질소(N2O4)’와 ‘비대칭 디메일 히드라진(UDMH)’, 액체 산소를 태워 2개의 분사 노즐로 발사하는 액체연료 로켓 엔진이다.
과거 구 소련 ICBM ‘R-36’, 나토 코드 ‘SS-18 사탄’의 1단 추진체로 사용했으며, 현재 러시아가 우주 발사체로 사용하는 로켓 ‘사이클론-2’와 ‘사이클론-3’의 1단에도 사용했다.
RD-250 로켓 엔진은 다양한 파생형이 있다. 원형인 RD-250부터 RD-250P, RD-250M, RD-250PM, RD-252, RD-262가 있고, 부품을 활용해 만든 RD-251, RD-251P, RD-251M, RD-261 등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유즈마슈사가 제조한 로켓 엔진 종류는 훨씬 더 많다. 북한 선전매체가 공개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2개의 추진 분사구에 추진력이 훨씬 더 강한 로켓 엔진으로는 RD-180도 있고, 중국이 YF100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추진 로켓의 원형 RD-120도 있다.
RD-120과 RD-180 로켓 엔진
RD-120 로켓 엔진은 정제 등유와 액체 산소를 사용하는 로켓 엔진으로 비대칭 하이드라진을 사용하는 RD-250보다 발전한 모델이다. 당초 미국보다 더 큰 우주왕복선 ‘부란’의 대기권 진입용 추진체로 개발됐지만 해당 계획이 취소된 뒤 러시아의 우주로켓 ‘제니트’의 2단계 추진체로 사용하고 있다.
RD-120은 RD-8 액체연료 로켓 한 쌍을 묶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또한 8가지의 파생형 로켓 엔진으로 개발됐다. 1976년부터 1985년까지 RD-120의 개발은 러시아 에네르고마쉬 과학자들이 했지만 생산은 우크라이나의 유즈마슈가 대부분 맡고 있다고 한다.
구 소련은 RD-120을 개량해 액체 산소와 하이드라진을 사용하는 RD-0120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로켓 엔진은 세계 최대의 발사체로 알려진 구 소련의 에네르기아에 사용했다.
RD-120의 특징은 2개의 연소 노즐을 갖고 있어 겉모습만 보면 2개의 연소실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고정된 1개뿐이라는 점이다. 연소 노즐 또한 고정돼 있다고 한다. 때문에 북한의 화성-15형 1단 로켓 엔진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델은 RD-180이다.
러시아 우주로켓 제니트의 1단 엔진으로 사용했던 RD-170을 개량한 RD-180은 정제 등유와 액체 산소를 사용하는 로켓 엔진으로, 기존의 액체연료 로켓보다 추진력이 좋고, 연료를 채워놓은 채 장기간 보관을 해도 부식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RD-180은 2개의 출력용 노즐에 4개의 연소실을 결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연료 펌프를 2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노즐은 8도 가량 조절이 가능한 짐벌(Gymbal) 구조다.
RD-180은 내구성이 좋고 유지 보수 및 관리가 용이하며, 추력도 우수한 편이어서, 냉전이 끝난 뒤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릴 때 사용하기도 했다. 2000년 미 록히드 마틴이 만든 아틀라스 Ⅲ 우주 로켓과 아틀라스 V 우주 로켓의 1단 추진체가 RD-180이었다.
이후 미국은 10년 넘게 러시아, 정확하게는 우크라이나 유즈마슈사로부터 RD-180 로켓 엔진을 구입해 우주 발사체용으로 사용했다. 미국에 조립·생산 공장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 “러시아가 설계한 로켓 엔진을 미 정부용 인공위성 발사체에 사용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2017년 초부터는 미국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유즈마슈사가 미국에 로켓 엔진을 수출하지 못하게 되고, 친 러시아 성향 대통령의 퇴임 이후 경영난에 시달렸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거액을 제시하는 북한에 RD-180을 팔지 않았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미국 NASA가 인공위성 발사체에 RD-180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추력이 강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북한이 이 로켓 엔진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면, 사거리 1만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이 “북한의 화성-15형을 보면 1톤 이상의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충분히 띄워 올릴 수 있다”고 평가한다는 점은 이 같은 의심에 더 힘을 보탠다.
▲ 북한이 지난 11월 29일 발사한 2단 형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화성-15형’의 1단에‘쌍둥이 엔진’을 탑재해 추력을 2배 이상 증강시키는 진전된 기술력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은 1단 엔진 부분 / 연합 |
北 화성-15형 사진에 없는 ‘사실’ 파악하려면
현재 국내에서는 화성-15형의 로켓 엔진과 관련해 “기존의 것을 개량한 것”이라는 주장과 “완전 새로운 로켓”이라는 주장으로 갈리고 있다. 문제는 이 논쟁이 “북한이 화성-15형의 1단 추진 로켓으로 RD-250만 사용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 즉 탄도미사일에 대한 한국군 관계자들과 전직 군인들의 지식이 얕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 해외의 북한전문매체나 군사전문매체는 화성-15형의 로켓 엔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로켓 엔진의 성능만 파악할 수 있다면, 최대 사거리와 탑재 가능한 탄두의 무게를 추정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탄두 핵미사일인지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 11월 30일 선전매체를 통해 공개한 화성-15형 발사 당시 사진 42장을 살펴보면 로켓 엔진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다. 로켓 엔진의 분사구가 보이는 4~5장의 사진에도 그 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화성-15형의 1단 로켓 엔진 분사구가 확실하게 드러난 사진은 없었다. 마치 과거 냉전 시절 미국, 영국, 프랑스조차 잠수함 추진기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북한 선전매체의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화성-15형의 길이, 직경, 9축 차륜의 이동식 차량 발사대로 미뤄 화성-14형에 비해 총 발사 중량이 상당히 증가했다는 점, 1단 추진 로켓의 연소 시간 등에 불과하다. 로켓 연소 시간은 연소 챔버와 연료 공급 펌프의 개량으로 바꿀 수 있어 정확한 분석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존의 탄도미사일과 비교해 변하지 않은 점도 있다. 북한 IRBM과 ICBM 모두 구 소련제 탄도미사일용 로켓 엔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개발·생산한 업체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에만 있고 설계를 했던 회사 ‘OKB-456’은 현재 ‘에네르고마쉬’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서 영업 중이며 이런 종류의 로켓 엔진을 면허 생산을 하는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화성-15형의 성능을 파악하려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찾아 현지 정부에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북한 탄도미사일 개발의 ‘비밀’을 찾아내는 데 매우 중요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측에 압력을 넣는다고 먹힐 것인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미국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거쳐 현지 정밀조사를 요청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관련 조치로 유즈마슈사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운이 좋다면, 한미 정부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위장기업’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업체에서 로켓 엔진을 구매할 수 있었는지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운이 없다고 해도 북한이 만든 탄도미사일들의 제원과 장단점 등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군부터 북한 탄도미사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하다.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적이 가진 무기의 성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만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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