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문화선동 정치, 文대통령은 안 닮았으면…”
“김정일의 문화선동 정치, 文대통령은 안 닮았으면…”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1.02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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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전 북한 인민군 예술선전대 장교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니,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 울고 계셨습니다. 희생자 한 분 한 분 앞에 대통령은 일일이 엎드리셨습니다.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 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안에서 또 울먹이십니다. 국민을 위해 울어주는 대통령! 국민의 욕이라도 들어야 한다는 대통령! 국민 한 분 한 분에게 엎드리는 대통령!...”

지난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로 29명의 시민들이 희생된 가운데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을 찬양하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낯 뜨거운 SNS 자화자찬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마치 북한중앙TV의 리춘희 아나운서가 김정은의 현지시찰 소식을 보도하며 수령의 인민사랑에 스스로 목 메어 울먹이는 장면을 연상케 해 이를 보는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편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ICBM급 ‘화성-15형’의 성능이 개량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조만간 발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지난 12월 28일 민주평통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독려를 위해 전 세계 각국의 북한 대사관들에 꽃다발을 보내기로 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북한 인민군 문학예술부문에서 작가 겸 정치장교로 근무하다가 1996년 한국으로 입국해서 현재 북한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몸담고 있는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를 통해 문화예술계를 앞세운 선전선동으로 권력을 공고화하고 체제를 유지해 가고 있는 북한 정권의 내부 속사정에 대해 알아보고 문재인 정부의 통치 스타일과 분석·비교해 봤다.

북한에서 유명한 문학가이며 시인이었던 부친의 뒤를 이어 1988년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에서 시를 전공했고 1992년부터 북한군 620군부대 예술선전대에서 북한군 대위로서 문학작가 겸 정치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탈북한 김성민 대표는 남한 입국 후 연세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석사를 마치고 2004년부터 2006까지 탈북자동지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자유북한방송 대표와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 탈북민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을 겸임하고 있다가 올해 3월부터 암 투병으로 치료 중인 김성민 대표의 병상을 찾아 인터뷰 했다.

▲ 지난 2017년 6월 본지 미래한국과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성민 자유북한방송대표 @ 미래한국

문화예술인들에게 처음으로 강요된 ‘2일 생활총화’

- 북한은 모든 체육·문화·예술이 체제와 수령 위대성 선전선동을 위한 도구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1969년에 ‘북한판 문화대혁명’으로 불리는 ‘외국서적 소각사건’이 있었어요. 저는 작가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 수영장이 있었죠. 그 아파트 동네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외국문학서적을 전부 내오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영장 안에 수거한 외국서적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휘발유를 뿌려서 전부 태워버렸어요. 당시에도 한국보다 번역이 더 잘되어 있는 좋은 외국 문학서적들을 모조리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 사건은 1958년 노동당 대회 때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겠다고 하면서 진행한 사업의 일환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외국 장편소설 같은 외국 문학을 번역하고, 북한 사상과 다른 깊이 있는 내용의 책들도 많이 나왔었습니다. 그것을 수령의 유일사상체계와 맞지 않는 것들로 규정하고 모두 태우라고 지시해 없애버렸죠.

1972년경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활총화 제도를 김정일이 처음 개발했습니다. 김정일이 처음으로 문화예술부 소속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실시했어요. 그때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죠. 당시 어린 친구가 알면 얼마나 알았겠나, 영화촬영소에 가서 여배우들에게 집적거리기나 하고 이미 나온 대본, 시나리오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부친을 포함해 이름 있던 작가들이 김정일의 행태에 화를 내며 만년필을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 김정일의 진정한 권력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요?

그때 김정일의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냥 ‘윗분(윗분)’이었습니다. ‘수령의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당시 영화배우들 속에서 말 안 듣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놈들 어디 한번 혼나봐라’는 못된 심산으로 김정일은 ‘2일 생활총화제도’를 도입해 예술인들을 닦달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방식이 잘 통한다고 여겨지니까 가극(뮤지컬)하는 배우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고 허담이 있던 외교부에 가서 통전부(통일전선사업부) 사람들에게도 적용하면서 그렇게 김정일은 전국에 생활총화 제도를 일반화 해버렸죠.

그게 북한체제에서 김정일의 숨은 공로 중 최고 공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때부터 김정일은 문화예술계를 손안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충성의 선서모임’도 그때 김정일에 의해 영화예술인들 속에서 부터 나온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는 데 있어 첫 순서를 문화예술 작품이라든가, 예술인들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출발했어요.

문화예술을 장악하면서 김정일은 권력조직의 내부로부터 사람들을 잡았고 외부적으로는 아버지 김일성에게 소위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빨치산 영화를 만들어 내고 혁명가극을 만들어내고 하니까 김일성이 김정일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전까지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평일에 밀려 김일성의 안중에 없었어요. 김평일이 정일이보다 동생이지만 김평일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김평일의 친모 김성애가 시퍼렇게 살아서 당시 여맹(조선여성동맹) 위원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김일성도 김성애 눈치를 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치고 올라왔어요.

- ‘3대혁명소조운동’도 김정일의 권력 공공화 작업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3대 혁명’ 자체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뜻하는 표현이니까 문화혁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이후에야 진행됐던 일입니다. 그 전에 ‘5대 혁명가극’ 시대를 거칩니다.

외부적으로는 김일성을 신격화 하는 수령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를, 내부적으로는 김정일 자신을 신격화 하는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여기서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지도체제’의 차이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유일사상체계’는 김일성의 사상체계를 말하는 것이고 ‘유일적 지도체제’는 김정일의 지도체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김정일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이 부분을 사람들이 많이 헷갈립니다. 우리 작가가 군부대 내 정치학습 지도도 담당했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부분들을 알려주곤 했어요. 북한군에는 11개 전투군단에 9개의 지도국 내지 훈련소가 있었는데 지도국, 훈련소의 선전대는 일반 군단과 달리 편제가 작아 작가가 정치지도원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정치군인이라고 합니다.

▲ 북한의 5대혁명가극 중 대표적 혁명'뮤지컬'인 '꽃파는 처녀'의 중국어 홍보 포스터

영화와 뮤지컬로 권력을 잡은 김정일

- 결국 예술문화부문과 당 권력을 한 덩어리로 합쳐버린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김형직사범대학에 갔을 때 임명장이 중앙당 선전선동부에서 나왔어요. 사단 대열과(남한의 인사과에 해당)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4년쯤에 김정일이 김일성의 정식 후계자로 확정되었지만 당시 김정일에 대해 문화예술인들만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라고 불렀지 그때까지 체육인들이나 건설 노동자들은 김정일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문화예술계를 통해 금방 떠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은 문화예술인들을 꽉 거머쥐고 북한에서 지도자로서 자기 자신의 조직적 기반을 확보해 나간 것입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중앙대)대학원 때 그러한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는 김일성 때 자료 이후로 다음(김정일 관련)자료는 거의 없었어요. 결국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김정일 때 자료들이 한국에는 없는 게 많이 아쉬운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북한을 연구할 때 북한에서 공식 발표한 원 자료를 참고합니다. 그런데 북한 원자료에는 이런 부분이 없어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김정일이 말하는 문화예술전집만 22권이 있을 뿐이에요. 그 전집은 김정일이 하고 싶은 얘기일 뿐입니다.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모란봉 클럽에 한번 출연했었는데 최근에 왔다는 어떤 탈북민 출연자가 김정일을 문화예술의 영재, 천재라고 치켜세운 적이 있었어요. 아마 북한에서 너무 세뇌돼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바로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우리가 흔히 배운 대로 김정일이 문화예술부문을 지도할 때 바이올린 음절 하나 잘못되었다든지, 노래하는데 노래 가사가 틀려서 하룻밤에도 김정일 자신이 손수 수십 번을 수정해 주고 해서 새로운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 냈다든지, 이런 것을 김정일과 함께 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문화예술 권력을 정말 구체적으로 장악했습니다. 처음에 유부녀인 성혜림을 건드려 영화에 손을 댔고 그리고 ‘5대가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로 인해 혁명 1세대라고 하는 빨치산 참가자들의 마음이 김정일 쪽으로 기울도록 했어요.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피바다>, 등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김일성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후계자가 된 후 김정일이 한 일은 ‘4·15 문학창작단’을 만든 것입니다. 4·15 문학창작단에서는 우리가 북한에서 배운 장편 소설들을 작가 혼자서 쓰는 게 아니라 속도전을 구실로 ‘집체작’으로 만듭니다.

남포의 우산장에 작가들만의 창작실을 따로 꾸려주고 유능한 작가 10여 명을 거기에 몰아넣어 ‘1년 동안 너희들 장편소설 무조건 2~3개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유례 없었던 ‘집체창작’이라는 것이 나왔고 ‘총서 불멸의 역사’가 시리즈로 막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김정일은 4·15문학창작단을 최고로 대우해줬어요. 그러니 당연히 북한 작가들의 선호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 김정일은 ‘백두산 창작단’이라는 것을 또 만듭니다. 이 백두산 창작단은 혁명영화만 만드는 곳입니다.

여기에 김일성 연기하는 배우나 강반석을 연기하는 배우 등 최고 배우들을 몰아넣고 혁명영화를 또 시리즈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또 백두산 창작단에 가는 게 문화예술인들의 최고의 희망 사항이 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놓고 보니 김정일이 놓친 부문이 시문학 쪽이었습니다. 결국 김정일은 조선작가동맹을 찾아가 ‘내가 시를 한 달에 한편씩 무조건 볼 것’이라고 엄하게 지시했어요.

그런데 작가동맹에 그렇게 꼬박꼬박 시를 써 바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과거 지방으로 추방됐던 시 ‘나의 조국’을 쓴 김상호 선생 이라든가 ‘어머니’를 쓴 김철 선생 같은 유능한 시인들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대남문화선동의 전초기지 통일전선사업부

김정일은 수 십 년 동안 농촌에서 썩고 있던 유명시인들을 다시 평양으로 불러다가 몰래 시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김성호 선생은 평양에 몰래 올라와 통전부에서 가명으로 작가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시 부문도 그렇게 건드렸습니다.

김정일은 문화예술계통의 모든 것을 하나씩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모든 작가를 김일성 우상화 전문 작가로 만들어 내면서 이것을 통해 예술인들의 소위 혁명성을 강화시켰고 그들의 혁명성 강화를 통해 자기의 권력기반을 닦아나간 것입니다.

결국에는 북한의 모든 문화예술을 오직 김정일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기쁨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북한이 제일 위험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만수대예술단’이나 ‘피바다가극단’, ‘보천보전자악단’ 등 김정일이 오라고 하면 달려가지 않을 여자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게 말 그대로 최고의 영광이 된 것이에요.

북한 사람들이 수령에 대한 북한식 존경심, 위대성에 대한 감화 감복, 이것이 외부세계에서 볼 때에는 정신 나간 미친 짓이고 전부 기쁨조나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을 북한에서는 아주 교묘하게도 ‘수령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정’으로 섞어놔 버렸습니다.

수령 찬양에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섰기 때문에 북한 전체 주민들이, 특히 여성들이 “장군님과 하룻밤이라도 같이 있어보는 것이 내 평생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말 인민을 미치게 만든 것입니다. 남한말로는 이상한 사이비 교주인 것이죠.

- 통전부는 대남 전문 예술기관이라고 봐야 합니까. 

1973~4년 경 김정일이 중앙당 통일전선사업부 내에 작가실을 새로 신설할 데 대한 지시를 내립니다. 그래서 북한의 이름 있는 작가들, 소설가들과 시인들이 통전부 작가실에 가서 북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면서 자기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남조선 혁명에 이바지하는 시와 소설을 쓰게 되죠. 그렇게 만들어진 시와 소설이 남조선으로 넘어갑니다. 이른바 남북 공통의 ‘통일문학’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북한 사람들에게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남조선 작가 김 아무개가 지은 <여명>이라는 작품을 수령찬양 소설이라고 보여주면 북한주민들은 그걸 보고 “야 남조선 인민들도 우리 장군님과 수령임을 절절히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구나”, “남조선 혁명가들이 조국통일을 위해 이렇게 죽기 살기로 투쟁하고 있구나”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 부분은 남한을 상대 했다기 보다는 남한을 가장한 자작극으로 북한 주민들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이런 기만술이 먹혀들었습니다.

통전부는 ‘통일을 위한 대남 전문 부서’지만 통전부 내 작가실의 목적은 남한 혁명가를 가장한 자작물(自作物)로 북한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외 통전부에서는 남조선으로 보내는 격문(호소문), 남한 청년 대학생들을 계몽 선동하기 위한 대자보들과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해설한 서적들을 보기 쉽게 만들어 보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 역시 문화예술 부문의 하나라고 볼 수 있죠.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과에서도 가장 유능하고 공부 잘한 친구들이 그곳으로 차출돼 갔습니다.

운동권의 정치 스타일은 북한식 통치감각

-그렇다면 1980년대부터 남한에서 유행한 주체사상 열풍은 통전부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지금 청와대가 북한 우상화 방식을 모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때 맹활약했던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이 지금 대거 청와대에 들어가 있어요. 좌익운동을 했던 사람이 비서실장인데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신동호인가 하는 그 친구는 전대협 시절 선전을 맡은 문화국 책임자를 했던 친구입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대부분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든가 사회주의 혁명을 따라 배웠던 사람들입니다. 그 중심에는 김일성이 있어요. 감정적으로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볼 때 그때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70%를 맴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아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에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지지율을 봤을 때 북한의 ‘장군님 현상’과 남한의 ‘문재인 현상’이 유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고공 지지율이 2~3개월 잠깐 일줄 알았는데, 그만큼 운동권 출신 보좌관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과거의 방식대로 받들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현재 남한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많이 동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세뇌됐던 같은 방식으로 남한 주민들이 세뇌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이전 박근혜 대통령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이 무조건 만세를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청와대에서 전략적으로 잘 뒷받침해 주니까 백성들이 계속해서 우러르고 만세를 부르는 것입니다. 전체 10명 중 2명만 만세를 해도 나머지 8명은 그냥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군중심리입니다.

실은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이 군중심리를 잘 이용해서 정치를 했다기보다는 문화예술과 언론이 그렇다고 하니까 인민들은 뭣도 모르고 ‘우리 장군님’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이 스스로 잘 한다는 의미보다는 옆에서 보좌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길을 안내해 주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을 방송에서 잘 포장해 내보내니까 군중이 지금같이 ‘문재인 만세’를 부를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언제까지 사람들이 문재인 만세를 외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쪽으로 적폐청산이라고 사람들을 마구 조이고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자한 모습만 보도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노동자 농민의 정권’은 공존 불가능

-그렇다면 빠른 시일 내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에 역풍이 불거라 생각하는지요.

그건 아닙니다. 이 정권은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을 우려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3개월 즈음에 꺾일 줄 알았지만 높은 지지율이 계속 이어지는 걸 봐선 오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 정부가 싫고 좋고를 떠나서 현재 문 정권은 노동자 농민에게 아주 우호적인 정권임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남한 사회는 시장경제체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기존의 본성과 문 정권이 추구하는 노동자 농민의 사회는 충돌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냥 북한을 경험한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됩니다.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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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에에에 2018-01-08 16:12:06
북에서 오신분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비판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