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노석 편집국장이 만난 사람...미술가 전광영씨
최노석 편집국장이 만난 사람...미술가 전광영씨
  • 미래한국
  • 승인 2004.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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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
최노석 편집국장이 만난 사람미래의 창세계적 미술가 전광영 화백미래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21세기 문턱. 한지작가 전광영 (全光榮·60) 화백의 등장은 한국미술사적 가치를 높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문화적 측면에서 세계를 이끌 수 있다는 한 단초로 눈여겨봐야 할 ‘사건’이다. 직함과 경력이 아닌 작품성으로 세계 속에 이미 승부를 판가름 낸 전 화백. 그래서인지 지금도 경기 분당의 한적한 산속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로 세계 유명 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들과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세계 유수 회사 오너들의 작품구입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미술계를 대표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에 이어 서구에서 이미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전광영 화백을 새해 들어 첫눈이 내리던 12일 그의 화실에서 만났다. 한국의 옛 이야기 들리는 듯한 수만번 손길거친 ‘집합시리즈’로 명성얻어내년말 영국 세계 10대화랑에서 회고전 초대받아외국에서 작품 진가 알려져 국내로 수입된 이색화가호주 미술교과서에 3페이지 작가이야기 소개돼최노석 : 영국에 있는 세계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되셨다면서요?전광영 : 예. 세계적 작가가 되려면 세계적 딜러가 작품을 알아봐야 합니다. 제 작품은 데이빗 주다라는 세계적 딜러가 7년에 걸쳐 보아오다 선정됐습니다. 데이빗 주다가 작년 9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일할 생각이 있다”고 내 비친 후 마지막 11월 3~7일 마이애미에 있었던 전시회에서 제 작품을 끝까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지난 주 9일 한국에 와선 “당신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전시회를 갖게 될 화랑은 영국의 ‘어널리 주다 갤러리’ 란 곳으로 전세계 10대 갤러리 중 하나입니다. 2005년 12월 회고전을 열 예정인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현대미술사에 유일무이한 일인데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최노석: 그럼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 전광영 : 내년 영국전시회를 위해 신작도 하고 그동안의 역사적 작품을 골라 대작으로 30여 점 전시 할 계획입니다. 지금 시리즈인 ‘집합(Aggregation) 시리즈’ 그대로 나갈 겁니다. 60세 작가의 눈빛에서 품어져 나오는 열기는 창밖으로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녹일 듯 강렬했다. 눈발이 점점 강해지자 전 화백은 나갈 길을 염려하며 찾아온 기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급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말의 속도와는 다르게 그 목소리의 울림은 깊이와 힘이 담겨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자리 뒤로 그의 대표작인 한지로 만든 ‘집합 시리즈’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최노석 : 한지작가로 세계에 알려질 만큼 한국적인 소재(오브제)를 가지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어떻게 그 같은 소재를 택해 작품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전광영 : 64년에 대학을 입학하고 71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원에서 서양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아 80년대 말까지 유화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더라도 미국미술계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뉴욕 소호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보는 것은 모두의 꿈입니다. 어찌 보면 전 예술인의 꿈이죠. 그런데 100% 한국인으로 그 높은 벽을 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 꿈을 포기하고 한국에 왔을 때, 너무나 좌절이 되어 한 때는 차라리 아버지가 그렇게 소원하시던 사업을 이어 할 걸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집사람과 함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80년 대 초였습니다.최노석 : 아, 그러시군요.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라… 그 속에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전광영 : 6개월 간 우리땅 구석구석 여행하며 지방 강원도 골짜기 미술관도 가보고 온양민속박물관은 30번도 더 가봤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이며 우리 조상들이 과연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게 됐죠. 그러다 문뜩 어릴 때 고향(강원도 홍천) 큰 아버지 한약방에서 보았던 약봉지가 떠올랐습니다. 그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한지로 싼 약봉지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풍경이야말로 그것 자체가 한국의 현대적 오브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양은 규격화된 박스문화라면 우리는 보자기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박스는 10개 넣는 박스에 1개만 더 넣어도 모양이 이상하지만 보자기는 11개를 넣어도 들어가죠. 그러면서도 이상하지 않단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나눔의 따뜻한 문화를 가졌다는 증거죠. ‘바로 이 이야길 서양사람들에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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