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지도자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 미래한국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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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유능하게 보이는 지도자들이 마치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찬바람을 맞아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검찰에 의하여 속속 수감되는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렵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아직은 시련과 연단을 받아야 할 기회인데, 벌써부터 누리려고 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윗은 BC 1000년경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에 당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차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명되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는 그의 아버지 이새의 여러 아들 중의 막내아들이었다.

선지자 사무엘조차도 그 외모에 반할 만큼 준수하고 잘난 여러 형들을 제치고 그가 왕감으로 지목이 되고 기름 부음을 받게 되었을 때에, 그 순간의 감격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 끊임없이 살해의 위협을 느끼며 이리저리 도피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이 시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게 된다. 왜 무엇 때문일까? 하나님이 계시고, 그에게 능력이 있으시고, 그가 다윗을 사랑하신다면, 왜 다윗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쉽지 않은 그 기간이 다윗이 차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제대로 왕으로 빚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 나라의 왕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왕이 아니다.

자신을 세운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으며, 그 통치를 받는 가운데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유익하도록 잘 섬기는 그런 왕이라야 한다. 그 때문에 다윗이 겪은 일련의 시련과 연단은 부당한 권력에 의한 압제가 얼마나 가혹하고 힘든 것인지 몸소 겪도록 하여 왕이 되어서도 백성의 입장이 되어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도록 연단해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눈을 들어 우리 주변을 보면, 한 번 받은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여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결코 유익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큰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더 연단을 받고 시련을 받아 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할만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어가야 할 기회임에도 마치 누릴 기회인 듯이 잘못 생각하여 자신에게도 해를 끼치고, 연관된 다른 사람들에게도 누를 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목사의 직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빚어가며, 사람들을 유익하도록 섬기는 직분이다. 의사의 직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전수받은 의술로서 병든 사람들을 낫도록 섬기는 직분이다. 더욱이 판사나 변호사나 공직자의 길은 더욱 그러하다. 공인이 되어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그들을 위하여 변호하며,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길이다.

젊은 시절 목사나 의사나 판사나 변호사나 공직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그 길로 향한 걸음을 걸어오다가 어느 날 때가 되어 그 자리에 앉게 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그 일을 통하여 헌신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리려고 하는 순간 이미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기회는 결코 누리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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